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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점] 미국, 중국 대두 불매에 '식용유 교역 중단' 맞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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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점] 미국, 중국 대두 불매에 '식용유 교역 중단' 맞불

트럼프 한마디에 뉴욕증시 '출렁'…농산물 관련주는 급등
'폐식용유'가 지핀 갈등, 희토류·해운으로 번지나…보복의 악순환 우려
사진=오픈AI의 챗GPT-5가 생성한 이미지.이미지 확대보기
사진=오픈AI의 챗GPT-5가 생성한 이미지.

미국과 중국 사이의 무역 갈등이 또다시 격랑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중국의 미국산 대두 수입 거부에 대한 보복 조치로 '중국산 식용유 거래 중단'이라는 초강경 카드를 꺼내 들면서다. 양국 간 협상 타결 기대감에 잠시 진정되던 금융시장은 즉각 요동쳤고, '보복 관세의 악순환'이 재현될 수 있다는 우려가 최고조에 이르고 있다. 불과 몇 시간 전만 해도 백악관 고위 당국자들이 협상 지속 가능성을 내비쳤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예측 불가능한 행보가 모든 낙관론을 집어삼키며 전면적인 무역 전쟁의 공포를 다시 불러왔다.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14일(현지시각) 소셜미디어를 통해 중국의 대두 불매 행위를 의도적으로 "미국 대두 농가에 어려움을 초래하는 경제 적대 행위"라고 규정했다. 그는 이어 "우리는 보복 조치로 식용유와 기타 무역 품목과 관련해 중국과의 거래를 종료하는 것을 고려하고 있다"며 "예를 들어, 우리는 식용유를 쉽게 자체 생산할 수 있으며, 중국에서 살 필요가 없다"고 경고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이번 경고는 중국의 핵심 아킬레스건인 농산물 시장을 정조준해 고통을 주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트럼프 대통령의 강경 발언이 전해지자 뉴욕 증시는 즉각 반응했다. 기준 지수인 S&P 500은 하락세로 돌아섰다. 당일 오전만 해도 트럼프 대통령 자신과 미국 무역대표부(USTR)의 제이미슨 그리어 대표가 "진행 중인 무역 협상을 통해 마찰이 완화될 것"이라며 시장을 안심시켰던 터라 충격은 더욱 컸다. 투자자들은 트럼프 행정부 출범 이후 계속된 미·중 관계의 급격한 변화에 또다시 불안감을 감추지 못했다. 다만 식용유 거래 중단 가능성에 세계 최대 유채 가공업체인 번지 글로벌 SA와 경쟁사인 아처-대니얼스-미들랜드(ADM)의 주가는 장 초반 하락분을 만회하고 급등하며 업계의 희비가 엇갈렸다.

'폐식용유'가 뭐길래…재생연료 둘러싼 해묵은 갈등

이번 갈등의 도화선이 된 '식용유'는 지난해부터 미·중 통상 마찰의 잠재적 뇌관으로 꼽혔다. 특히 재생연료인 재생 디젤의 원료로 쓰는 중국산 폐식용유(UCO) 수입이 급증하면서 미국 농가의 불만이 컸다. 미 농무부에 따르면 2024년 중국산 폐식용유 수입량은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으며, 이로 인해 미국산 대두를 원료로 하는 바이오연료 시장이 잠식되고 있다는 우려가 커졌다. 이에 바이든 행정부는 외국산 식용유가 재생연료 세액공제를 받지 못하도록 제한한 바 있으며, 트럼프 행정부 역시 국내 농업계의 압력에 따라 수입 억제 정책을 강화하고 바이오연료 사용 할당량을 늘리는 조치를 추진해왔다.

트럼프 대통령의 이번 조치는 낮은 농작물 가격과 중국의 대두 불매 운동으로 이중고를 겪는 농가를 달래기 위한 정치적인 뜻도 짙다. 트럼프 행정부는 농가 피해를 줄이기 위한 농가 지원책을 약속했지만, 연방정부 셧다운 탓에 예산 집행이 늦어졌다. 이러한 가운데 많은 농가에서는 일시적인 보조금보다 중국과의 항구적인 무역 협정을 더 바란다는 목소리가 꾸준히 나왔다. 이번 강경 발언은 핵심 지지층인 농가 여론을 의식한 정치적인 뜻도 강하게 담고 있다.

말뿐인 협상 약속…'강 대 강' 대치에 살얼음판


문제는 양국 간 협상이 한 치 앞을 내다보기 힘든 안갯속이라는 점이다. 미국 무역대표부(USTR)의 제이미슨 그리어 대표는 "월요일 워싱턴과 베이징의 고위급 관리들이 논의를 가졌다"며 "트럼프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이달 말 한국에서 열리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서 만날 예정된 시간이 여전히 유효하다"고 밝혀 협상의 불씨를 살리기도 했다. 최근 중국이 미국의 해운 제재에 맞서 한국 한화그룹의 미국 법인을 제재하고 추가 조사에 나서자, 이번 트럼프 대통령의 식용유 카드는 사실상 '보복의 보복' 조치로 해석된다.

양국은 이미 무역 분쟁의 핵심인 희토류와 반도체에 대한 수출 통제를 주고받으며 협상 우위를 차지하기 위한 힘겨루기를 벌여왔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은 최근 중국의 조치에 맞서 11월 1일까지 모든 중국산 제품에 100% 추가 관세를 물리겠다고 위협하며 시 주석과의 APEC 회담을 취소할 수 있다는 초강수를 두기도 했다. 그리어 대표는 100% 추가 관세의 현실화 가능성을 두고 "전적으로 중국의 행동에 달려있다"고 공을 넘겼다.

그는 "우리의 합의는 중국이 희토류를 계속 공급하면 우리가 관세를 낮게 유지하는 것이었는데, 그들은 이제 더 많은 희토류와 후방산업 제품을 통제하겠다고 말하고 있다. 따라서 우리가 관세를 올리는 것이 타당하다"고 주장했다. 미국과 중국이 최고 145%에 이르는 관세를 주고받다 올해 초 가까스로 타결한 관세 휴전의 연장 시한은 오는 11월 10일 끝난다.

이번 식용유 무역 분쟁은 단순한 통상 마찰을 넘어, 대두·재생연료·관세·희토류·농가 보조금 등 여러 경제와 정치 문제가 복잡하게 맞물린 미·중 통상 전략의 단면을 보여준다. 시한이 다가올수록 양측의 수 싸움은 더욱 치열해질 전망이며, 앞으로 열릴 트럼프-시진핑 회담의 성사 여부와 그 결과가 무역 전쟁의 방향을 결정할 중대 분수령이 될 것이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