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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리콘 디코드] 대만 TSMC, 글로벌 확장 가속…'실리콘 방패' 전략적 균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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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리콘 디코드] 대만 TSMC, 글로벌 확장 가속…'실리콘 방패' 전략적 균열

美 압박 속 생산기지 다각화…'기술 방패' 억제력 약화 우려
에너지·인구, 섬(島)의 한계 봉착…'3중 과제' 직면한 대만
세계 반도체 공급망의 핵심인 대만 TSMC가 미국, 일본 등으로 글로벌 생산기지 확장을 가속화하고 있다. 이러한 움직임이 미국의 압박 속에서 '기술 방패'로서의 억제력을 약화시킬 수 있다는 우려와 함께, 에너지와 인구 등 대만 본토의 구조적 한계에 봉착하며 '3중 과제'에 직면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사진=오픈AI의 챗-GPT5가 생성한 이미지이미지 확대보기
세계 반도체 공급망의 핵심인 대만 TSMC가 미국, 일본 등으로 글로벌 생산기지 확장을 가속화하고 있다. 이러한 움직임이 미국의 압박 속에서 '기술 방패'로서의 억제력을 약화시킬 수 있다는 우려와 함께, 에너지와 인구 등 대만 본토의 구조적 한계에 봉착하며 '3중 과제'에 직면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사진=오픈AI의 챗-GPT5가 생성한 이미지

전 세계 전자 칩의 3분의 2 이상을 생산하며 대만을 지정학 강국 반열에 올린 '실리콘 방패(Silicon Shield)'에 균열이 가고 있다. TSMC가 세계 반도체 산업에서 압도적 점유율을 차지하며 지정학 전략자산 역할을 해왔으나, 최근 전례 없는 해외 확장과 대만 내부의 에너지·인구 문제 등 구조적 한계 때문에 그 방패에 금이 가고 있다고 푸투라-사이언스가 지난 28일(현지시각) 진단했다.

미국의 압박과 대만 내부의 구조 한계로 시작된 생산기지 다각화가, 반대로 대만의 독보적인 전략 이점을 약화시킬 수 있다는 심각한 우려가 섬 전체를 뒤흔들고 있다. 첨단 칩 패권을 둘러싼 기술 경쟁이 대만의 안보와 직결되는 지정학 핵심 변수로 부상했다.

실리콘 방패, 대만의 독보적 생존 전략


1949년 이래 중화민국(대만)은 중국의 군사적 위협에 맞서 독특한 방어 전략을 구축해왔다. 단순한 군사력 증강이 아닌, 세계 경제에서 대체 불가능한 존재가 되겠다는 '기술 불가결성'에 집중한 것이다. '실리콘 실드'란 이처럼 핵심 반도체 공급자인 TSMC와 대만의 기술 독점이, 군사력만이 아닌 필수 전략자산으로서 중국의 잠재 위협을 억제하는 방패 구실을 한다는 핵심 개념이다.
TSMC는 이 전략의 완벽한 상징이다. 1987년, 모리스 창(장중머우)은 AMD나 텍사스 인스트루먼트 같은 당대의 거대 종합 반도체 기업들과 경쟁할 수 있는 전문 파운드리를 설립한다는 대담한 비전을 실행에 옮겼다. 이 구상은 대만을 세계 마이크로일렉트로닉스의 심장부로 탈바꿈시켰다.

TSMC가 확보한 기술 패권은 숫자가 증명한다. 현재 TSMC는 스마트폰, 노트북은 물론 인공지능(AI) 모델 훈련의 핵심 부품인 AI 가속기 등 전 세계 고성능 반도체 시장의 90% 이상을 장악하고 있다. 전 세계가 TSMC에 의존하는 이 구조는 폭발적인 성장으로 이어졌다. 2014년 240억 달러(약 34조 원)였던 매출은 2024년 880억 달러(약 126조 원)로 3배 이상 급증했다.

성장의 그늘…에너지·인구 '내부 한계' 봉착


역설적이게도 TSMC의 눈부신 성공은 대만이라는 섬의 물리적 한계와 정면으로 부딪히고 있다. 약 36,000km²의 면적을 가진 대만은 TSMC의 거대한 산업 인프라를 감당하는 데 점차 버거움을 느끼고 있다.

공간적 제약보다 더 심각한 것은 에너지 딜레마다. TSMC는 이미 대만 전체 전력의 8%를 소비하고 있다. 세계적 신용평가사 S&P 글로벌은 이 수치가 2030년까지 최대 25%에 이르러, 대만의 에너지 균형을 심각하게 위협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인구 구조 역시 발목을 잡고 있다. 여성 1인당 0.9명에 불과한 세계 최저 수준의 출산율은 급격한 인구 고령화로 이어지고 있다. 여기에 숙련 엔지니어 부족과 제한적인 이민 정책이 더해져, 하이테크 칩 생산 공정을 유지하는 데 필수적인 전문 엔지니어 인력 풀이 고갈될 위기에 처해있다.

지정학 압박과 1900억 달러의 '탈(脫)대만'


이러한 내부 한계에 더해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한 공급망 충격과 미중 지정학 갈등은 TSMC의 전략 변신을 가속화했다. 특히 트럼프 행정부는 미국이 대만 칩에 과도하게 의존하는 상황의 위험성을 노출시켰고, 이는 생산기지의 '지리 다각화' 요구로 이어졌다.

미국 애리조나는 TSMC의 새로운 세계 전략의 중심지다. 당초 2020년 발표했던 120억 달러(약 17조 원)의 13배가 넘는 총 1650억 달러(약 236조 원)라는 천문학적인 투자를 바탕으로 6개의 첨단 공장(팹)이 이곳에 들어설 계획이다. 이러한 투자 규모 확대는 대만이 가진 최고 수준의 제조 우수성을 해외에서 복제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방증한다.

TSMC의 다각화 전략은 전 세계로 뻗어 나가고 있다. 일본(구마모토)에는 아시아 시장 공급을 위한 신규 파운드리를, 독일(드레스덴)에는 유럽 시장을 위한 시설을, 싱가포르에는 동남아시아 허브를 구축 중이다.

2025년 한 해에만 대만 타이중과 가오슝을 비롯해 미국, 일본, 독일 등지에서 총 9개의 신규 팹이 착공되거나 가동될 계획이며, 2026년까지 세계 직원 수는 10만 명 이상으로 늘릴 방침이다. 그러나 이러한 해외 진출은 현지 설비와 인건비 부담 증가, 복잡해진 공급망 관리, 핵심 기술 이전에 대한 위험을 동반한다.

'방패' 약화와 TSMC의 '3중 딜레마'


TSMC의 세계화는 대만의 '실리콘 방패'의 미래에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생산기지의 부분적 이전이 현실화할수록, 중국을 상대로 대만이 가질 수 있는 지정학 지렛대, 즉 독점적 억제력이 약화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일부 생산 능력의 이전이 본토의 전략 보호막을 희석시키는 효과를 낳아, 오히려 지역 불안정 요소로 작용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미국의 강력한 대중(對中) 수출 규제는 이 방정식을 더욱 복잡하게 만들었다. 미국 정부가 TSMC의 특정 AI 칩 중국 공급을 금지하면서, 과거 대만의 침략 억지력 역할을 했던 미묘한 상업적 균형이 깨지고 있다. 이러한 상황은 TSMC에도 상업적, 지정학 균열을 동시에 초래하고 있다.

TSMC는 '3중 과제'에 직면해 있다. △공급망 다각화를 요구하는 미국의 요구 충족 △세계 기술 패권의 지속적 유지 △대만의 전략 보호막 역할 보존이 그것이다. 이 아슬아슬한 균형 잡기는 앞으로 대만과 지역 지정학의 핵심 조정 변수가 될 전망이다.

현재의 실리콘 실드는 TSMC와 대만의 동반 성장의 산물이지만, 최근 급격한 해외 확장과 내부 구조 한계, 그리고 세계 지정학의 급변 속에서 "방패의 보이지 않는 균열(Crack in the Shield)"이 발생하고 있다. 이 같은 변화는 앞으로 대만과 세계 반도체 공급망 안정성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사안으로 평가된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