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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유럽 관세 폭탄"... ASML 3.3% 급락, 반도체 '검은 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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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유럽 관세 폭탄"... ASML 3.3% 급락, 반도체 '검은 월요일'

美, "그린란드 매각 거부 시 2월부터 나토 8개국 관세 10%" 초강수
ASML 장비 도입 비용 급증 우려... 인텔·마이크론 등 美 기업에 '부메랑’
인피니언·ST마이크로 동반 약세... 韓 기업도 공급망 불확실성 고조
‘그린란드 리스크’가 현실화할 조짐을 보이자 ‘슈퍼 을(乙)’로 불리는 ASML을 비롯해 인피니언, ST마이크로일렉트로닉스 등 유럽 주요 반도체 기업 주가가 일제히 급락했다. 이미지=제미나이3이미지 확대보기
‘그린란드 리스크’가 현실화할 조짐을 보이자 ‘슈퍼 을(乙)’로 불리는 ASML을 비롯해 인피니언, ST마이크로일렉트로닉스 등 유럽 주요 반도체 기업 주가가 일제히 급락했다. 이미지=제미나이3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덴마크 자치령인 그린란드 매입을 협상 카드로 꺼내 들고 네덜란드와 독일 등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8개국에 고율 관세 부과를 위협하자 글로벌 반도체 시장이 요동쳤다. 이른바 그린란드 리스크가 현실화할 조짐을 보이자 슈퍼 을()’로 불리는 ASML을 비롯해 인피니언, ST마이크로일렉트로닉스 등 유럽 주요 반도체 기업 주가가 일제히 급락했다.

블룸버그 등 주요 외신은 지난 19(현지시간)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 측의 그린란드 매입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을 경우, 오는 21일부터 해당 8개국 수입품에 대해 10%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선언했다고 보도했다. 협상에 진전이 없을 경우 관세율은 오는 61일부터 25%로 상향 조정될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그린란드 딜불발 시 관세 폭탄... 유럽 반도체 휘청


트럼프 대통령의 이번 발언은 안보 동맹인 나토 회원국을 대상으로 한 전례 없는 무역 압박이라는 점에서 시장에 큰 충격을 안겼다. 특히 네덜란드와 독일이 타깃이 되면서, 이들 국가에 본사를 둔 세계적인 반도체 장비·부품 기업들이 직격탄을 맞았다.

지난 19일 유럽 증시에서 네덜란드의 ASML 홀딩은 전 거래일 대비 3.3% 하락 마감했다. 독일의 차량용 반도체 1위 기업인 인피니언 테크놀로지스는 3% 떨어졌으며, 테슬라 등 주요 완성차 업체에 칩을 공급하는 ST마이크로일렉트로닉스는 4.8% 급락했다. 시장 참여자들은 이번 관세 조치가 현실화할 경우 유럽 반도체 기업들의 가격 경쟁력 약화는 물론, 글로벌 공급망 전체의 비용 상승으로 이어질 것으로 우려하는 분위기다.

ASML 독점 체제, 美 기업에 부메랑되나


문제는 이번 관세 조치가 미국 IT 기업들에게도 심각한 부메랑이 될 수 있다는 점이다. ASML은 최첨단 반도체 미세 공정에 필수적인 극자외선(EUV) 노광장비를 사실상 독점 생산하는 기업이다. 대당 가격이 4억 달러(5900억 원)를 웃도는 이 장비 없이는 5나노미터(nm) 이하의 첨단 칩 생산이 불가능하다.

시장조사업체 팩트셋(FactSet)에 따르면 2024년 기준 ASML 전체 매출의 약 16%가 미국 시장에서 발생했다. 만약 ASML 장비에 10~25%의 추가 관세가 붙는다면, 인텔이나 마이크론 테크놀로지 같은 미국 반도체 제조사들의 설비투자(CAPEX) 비용은 천문학적으로 늘어날 수밖에 없다. 미국 애리조나 등에 공장을 짓고 있는 대만의 TSMC 역시 비용 압박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업계 전문가인 번스타인 리서치의 스테이시 라스곤 분석가는 “ASML은 대체 불가능한 기술을 보유하고 있어 관세가 부과되더라도 미국 기업들이 구매를 멈출 수 없다결국 관세 비용은 고스란히 미국 칩 제조사와 최종 소비자에게 전가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차량용 반도체도 타격... 무역 전쟁 확전 공포


ASML뿐만 아니라 차량용 반도체 시장의 강자인 인피니언과 ST마이크로의 주가 하락도 예사롭지 않다. 지난해 기준 차량용 반도체 시장 점유율 13%대를 기록하며 1위를 수성한 인피니언과 상위권인 ST마이크로는 미국 전기차 및 자동차 시장 의존도가 높다.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 장벽이 높아지면 테슬라를 비롯한 미국 완성차 업체들의 부품 조달 비용 상승으로 이어져 전기차 시장의 가격 경쟁력을 훼손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월가에서는 이번 조치가 단순한 엄포를 넘어 실제 무역 전쟁으로 확전될 가능성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오는 211차 관세 발효 시점까지 남은 기간은 2주 남짓이다. 이 기간 내에 유럽 각국이 미국의 그린란드 매입이라는 파격적인 제안을 두고 어떤 외교적 해법을 내놓느냐에 따라 글로벌 반도체 시장의 향방이 갈릴 것으로 보인다.

韓 기업에도 불똥’... 삼성·SK 美 공장 장비 반입 차질 우려


미국과 유럽 간의 무역 갈등은 국내 반도체 투톱인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에도 적지 않은 파장을 미칠 전망이다. 반도체 산업은 전 세계 공급망이 거미줄처럼 촘촘히 연결된 한 몸과 같아, 어느 한 곳에서 문제가 생기면 전체가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당장 미국 테일러시와 인디애나주 등에 수십조 원을 들여 공장을 건설 중인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장비 수급에 비상이 걸렸다. 미국 정부가 네덜란드산 장비에 고율 관세를 부과할 경우, 현지 공장에 반입해야 할 ASML 장비 가격이 폭등하거나 통관 절차가 까다로워질 수 있어서다. 이는 곧장 투자 비용 상승과 공장 가동 지연으로 이어질 수 있다.

더 큰 문제는 전방 산업의 위축이다. 무역 전쟁으로 글로벌 경기가 침체하면 스마트폰이나 자동차 소비가 줄어들고, 완제품에 들어가는 한국산 메모리 반도체 수요도 급감하게 된다. 미국과 유럽의 힘겨루기가 단순한 강 건너 불 구경이 아닌, 우리 기업의 생존과 직결된 문제라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시장 관계자는 반도체는 이제 단순한 산업재가 아니라 국가 안보 자산이자 외교 협상의 볼모가 됐다미국과 유럽 간의 무역 갈등이 고조될수록 삼성전자나 SK하이닉스 등 한국 기업들도 글로벌 공급망 재편 과정에서 불확실성에 노출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