닫기

글로벌이코노믹

EU-미국 무역협정, 유럽의회 조건부 가결…2028년 자동 종료 조항 포함

글로벌이코노믹

EU-미국 무역협정, 유럽의회 조건부 가결…2028년 자동 종료 조항 포함

찬성 417표 통과, EU 관세 0% 대가로 미국은 15% 유지…'불균형 협정' 논란
철강·알루미늄·위헌 판결 변수 남아…오는 4월 13일 회원국 협상 본격화
26일 EU-미국 무역협정을 표결에 붙인 유럽의회. 사진=연합뉴스이미지 확대보기
26일 EU-미국 무역협정을 표결에 붙인 유럽의회. 사진=연합뉴스


트럼프 미국 행정부의 관세 공세에 맞서 유럽이 '2년짜리 유효기간'과 '즉시 파기 방아쇠'를 달아 무역협정을 조건부로 수용했다.

무역 질서의 안정을 선택했지만, 언제든 뒤집힐 수 있는 안전장치를 빼곡히 삽입한 것이다. 이 협정이 실제로 발효되기까지 넘어야 할 관문은 아직 여럿 남아 있다.

유로뉴스(Euronews), AP통신 등 복수 외신은 지난 26일(현지시각), 유럽의회가 본회의에서 지난해 스코틀랜드 턴베리에서 체결한 EU-미국 무역협정(턴베리 협정) 이행 법안을 찬성 417표, 반대 154표, 기권 71표로 가결했다고 일제히 보도했다.

'불균형 협정'에 3중 안전장치…'트럼프 방탄' 표현까지 등장


이번 표결에서 유럽의회가 부착한 안전장치는 세 갈래다. 우선 '일출 조항(sunrise clause)'은 EU의 관세 인하를 미국이 먼저 자국 의무를 이행한 이후에만 발효시키는 전제 조건이다.

'일몰 조항(sunset clause)'은 양측 합의 없이는 2028년 3월 31일 협정이 자동 소멸되도록 못을 박았다. '중단 조항(suspension clause)'은 미국이 협정을 위반하거나 EU 회원국의 영토 주권을 위협하는 경우 즉각 협정을 종료할 수 있도록 했다.

유럽의회 국제통상위원회를 이끄는 독일 사회민주당(SPD) 의원 베른트 랑에(Bernd Lange)는 표결 후 기자회견에서 이번 안전장치 삽입을 "턴베리 협정에 날씨 방패를 씌운 것"이라고 표현했다.

그는 "다시 같은 일이 생기면 즉각 관세가 복원될 것"이라고 못 박았다. 리뉴 유럽(Renew Europe) 그룹 소속 카린 칼스브로(Karin Karlsbro) 스웨덴 의원 역시 같은 날 "그린란드 협박과 공갈을 잊지 않았다. 유럽은 스스로를 미국 관세 정책의 혼란에서 지킬 안전장치를 만들어야 했다"고 밝혔다.

로베르타 메초라(Roberta Metsola) 유럽의회 의장은 "15% 관세는 최대치이며 이 수준을 넘는 추가 관세는 적용되지 않는다는 이해를 바탕으로 행동한다"고 선언했다.

협정의 구조 자체가 비대칭이라는 점은 EU 안팎에서 공공연하게 인정된다.

미국은 EU산 수출품에 15% 관세를 유지하는 반면, EU는 미국산 공산품 대부분에 대한 관세를 0%로 철폐하는 것이 이 협정의 골간이다. 랑에 의원은 표결 전 "물론 불균형하지만, 개선할 수 있다면 수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미 연방대법원 위헌 판결이 뒤흔든 협정 기반…철강·알루미늄은 여전히 '뇌관’


이번 표결이 수개월 지연된 배경에는 두 가지 복병이 도사리고 있었다. 하나는 그린란드를 둘러싼 지정학 충돌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덴마크령 그린란드 장악 의사를 공공연히 밝히면서 유럽의회는 지난 1월 협정 승인 절차를 전면 중단했다.

다른 하나는 법적 공백이다. 미 연방대법원이 지난 2월 턴베리 협정의 15% 관세 상한선을 뒷받침하던 '상호 관세 부과 권한' 법률 조항을 위헌으로 판결했다.

미 의회가 아직 이 조항을 수정하지 않은 상태여서, 백악관은 별도 수단으로 EU산 수입품에 새 관세를 부과하고 불공정 무역 관행 조사에도 착수했다.

EU 최대 통상 파트너인 미국으로의 수출 규모는 지난해 5550억 유로(약 960조원)로 사상 최대치였다. 그럼에도 철강·알루미늄 분야는 이번에도 해결되지 않았다.

미국무역대표부(USTR)는 지난 11일 EU를 포함한 16개 경제권의 '구조적 과잉 생산'을 겨냥한 통상법 301조 조사를 개시했다. EU 내부에서는 이것이 턴베리 협정의 이행을 압박하기 위한 추가 지렛대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앤드류 퍼즈더(Andrew Puzder) 주EU 미국 대사는 표결 직전 "EU가 의무를 이행하지 않으면 미국도 액화천연가스(LNG)를 포함한 약 7억 5000만 유로(약 1조 3000억원) 규모의 에너지 공급 약속을 철회할 수 있다"고 공개 경고했다.

EU가 러시아 가스 공급 차단 이후 미국산 LNG 의존도를 급격히 높여온 상황에서 나온 압박이었다.

오는 4월부터 회원국과 3자 협의…한국 통상 환경에도 시사하는 바 크다

유럽의회의 이번 표결은 끝이 아니라 다음 협상의 시작점이다. 의회와 EU 27개 회원국 대표들이 최종 조문을 협상하는 3자 협의(트릴로그) 첫 회의가 오는 4월 13일 열린다. 첨예한 안전장치 조항들이 이 과정에서 가장 큰 쟁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의회의 최종 비준 표결은 이르면 오는 5월 이후에나 가능하다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EU 통상담당 집행위원 마로스 셰프초비치(Maros Sefcovic)는 표결 후 "양측 모두에서 협정이 발효돼 EU 기업들에 확실성을 제공하고 진정한 협력이 결과를 낸다는 것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셰프초비치 위원과 제이미슨 그리어(Jamieson Greer) 미국무역대표는 이날 카메룬 야운데에서 열린 세계무역기구(WTO) 회의 계기에 별도로 만나 후속 협상을 이어갔다.

이번 EU-미국 협정의 불안한 출발은 한국 통상 당국에도 주목할 대목이다.

트럼프 행정부가 같은 구조의 협정을 한국을 포함한 주요 교역국과 잇달아 체결하는 가운데, 미 연방대법원의 위헌 판결로 협정의 법적 기반이 흔들리는 전례가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업계에서는 "미국이 협정 이행 과정에서 언제든 추가 조건을 들이밀 수 있다는 것을 EU 사례가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와의 '거래'는 서명 이후에도 끝나지 않는다는 것을 이번 사태가 다시 한번 확인시켜 주고 있다.


진형근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jinwoo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