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 전쟁·관세·AI 투자 물가 압력 여전
9월 인상론 후퇴했지만 금리 경로 불확실
9월 인상론 후퇴했지만 금리 경로 불확실
이미지 확대보기미국의 7월 물가 지표는 연방준비제도에 당장 금리를 올리지 않아도 될 시간을 벌어줬다. 그러나 인플레이션과의 싸움이 끝났다는 신호로 받아들이기는 이르다는 분석이 나온다.
문제는 물가를 밀어 올리는 동력이 하나가 아니라는 데 있다. 이란 전쟁에서 비롯된 에너지 충격에 지난해 도입된 관세의 여파, 인공지능(AI) 인프라 투자 붐에 따른 반도체·기술제품 가격 상승까지 겹치면서 미국 인플레이션의 구조가 과거보다 복잡해지고 있다.
13일(현지시각) 블룸버그통신과 AP통신 등에 따르면 7월 소비자물가지수(CPI)는 전년 동월 대비 3.4%, 식품과 에너지를 제외한 근원 CPI는 2.5% 상승했다. 각각 6월보다 0.1%포인트 낮아졌다. 네 가지 주요 수치가 시장 예상과 모두 일치했다.
수치 자체보다 금융시장이 주목한 것은 물가가 다시 가속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최근 고용까지 약해진 상황에서 연준이 9월 회의에서 서둘러 금리를 올려야 할 논거가 약해졌기 때문이다. CPI 발표 뒤 금리선물 시장이 반영한 9월 금리 인상 가능성은 약 38%로 내려갔다.
◇ '전쟁 인플레' 사라진 게 아니다
7월 CPI를 끌어내린 가장 큰 힘 가운데 하나는 에너지 가격 하락이다. 휘발유 가격은 한 달 전보다 2.9% 떨어졌고 전체 에너지 가격도 1.5% 하락했다. 그러나 이를 지속적인 물가 안정으로 보는 데는 위험이 있다.
7월 말부터 8월 들어 휘발유 가격은 다시 오르고 있다. 이란 전쟁으로 사실상 막힌 호르무즈 해협을 둘러싼 긴장이 계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AP는 “미국 전국 평균 휘발유 가격이 갤런당 4.04달러까지 올라 한 달 전보다 16센트 높아졌다”고 전했다.
즉 7월 CPI에는 월평균 에너지 가격 하락 효과가 반영됐지만 현재 유가와 휘발유 가격의 방향은 다시 반대로 움직이고 있다. 이 때문에 8월 물가에서는 에너지의 하락 기여가 줄거나 다시 상승 압력으로 바뀔 가능성이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이란 전쟁 이전 미국 물가 상승률은 2.4%까지 낮아졌지만 전쟁에 따른 에너지 가격 급등으로 지난 5월 4.2%까지 치솟았다. 7월 3.4%까지 내려왔어도 전쟁 이전 수준과는 여전히 상당한 거리가 있다.
◇ AI 투자도 새로운 인플레 변수
이번 물가 보고서에서 더 주목되는 부분은 에너지와 무관한 가격 움직임이다.
블룸버그는 “식품과 에너지를 제외한 상품 가격이 두 달 연속 하락한 뒤 7월 다시 상승했다”고 분석했다. 특히 컴퓨터 소프트웨어·액세서리 가격은 전년 동월 대비 21.2% 급등했고 컴퓨터, 주변기기, 스마트홈 기기 가격도 4년여 만에 가장 큰 폭으로 올랐다.
그 배경에는 AI 데이터센터 건설 경쟁에 따른 메모리 반도체 공급 부족이 있다는 분석이다. 반도체 비용 상승이 컴퓨터와 태블릿 등 소비자 제품 가격으로 전가되기 시작한 것이다. AP도 컴퓨터 가격이 7월 한 달 동안 3.5% 상승했다고 전했다.
이는 연준 입장에서 까다로운 변수다. 이란 전쟁에 따른 유가 상승은 공급 충격이 사라지면 되돌려질 가능성이 있지만 AI 투자는 미국 경제의 구조적 투자 붐과 연결돼 있다. 데이터센터와 반도체 수요가 계속 확대된다면 일부 기술제품 가격 압력이 일회성에 그치지 않을 수 있다. 이는 현재 지표를 토대로 한 전망이다.
여기에 관세 부담도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AP는 일부 미국 기업들이 지난해 부과된 관세와 전기료·운송비 상승분을 제품 가격에 계속 전가하고 있다고 전했다. 결국 전쟁, 무역정책, AI 투자라는 서로 다른 세 방향에서 비용 압력이 들어오는 셈이다.
◇ 근원물가 2.5%에도 연준이 경계하는 이유
연준이 7월 CPI만 보고 승리를 선언하기 어려운 또 다른 이유는 서비스 물가다.
의료, 외식, 자동차 정비 등 서비스 가격은 7월에도 전년 동월 대비 3% 상승했다. 이들 품목은 유가 하락이나 AI 투자와 직접적인 관련이 적다. 에너지 충격을 제거하더라도 미국 경제 내부의 물가 압력이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다는 의미다.
연준이 CPI보다 중요하게 보는 개인소비지출(PCE) 물가지수 역시 변수다. 시장 전문가들은 7월 CPI가 둔화했음에도 근원 PCE 상승률은 여전히 3%를 조금 웃돌 가능성이 있다고 추정하고 있다. 연준의 2% 목표와는 여전히 거리가 있다.
소비자의 상황도 물가 수치만큼 개선되지 않았다. 블룸버그가 인용한 별도 자료에서는 7월 실질 평균 시간당 임금이 전년 동월 대비 0.2% 감소했다. AP 역시 물가가 평균 임금보다 빠르게 오르고 있어 식료품, 휘발유, 의료비 부담이 계속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물가 상승률이 낮아지는 것과 이미 높아진 물가 수준이 내려가는 것은 다른 문제다. 이는 11월 중간선거를 앞둔 백악관에도 부담이다. AP는 인플레이션이 둔화했지만 생활비 부담이 지속되면서 물가 문제가 중간선거를 앞둔 행정부의 과제로 남아 있다고 분석했다.
◇ 워시에게 생긴 것은 '승리' 아닌 '시간'
결국 7월 CPI가 케빈 워시 연준 의장에게 제공한 것은 인플레이션과의 싸움에서의 승리라기보다 시간을 벌 수 있는 여유에 가깝다는 지적이 나온다.
연준 내부에서도 방향은 갈려 있다는 관측이다. AP에 따르면 통화정책 결정에 참여하는 위원들의 약 절반은 올해 금리를 더 올려야 한다는 쪽이고, 나머지는 현재 금리 수준만으로도 물가를 2% 목표로 되돌릴 수 있다는 입장이다.
지난 7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도 금리 동결 결정에 3명이 반대하며 0.25%포인트 인상을 요구했다. 7월 CPI 발표 뒤에도 시장은 9월 인상 가능성을 완전히 제거하지 않고 약 38%를 반영하고 있다.
9월 15~16일 FOMC까지는 추가 고용지표와 물가지표가 더 나온다. 이달 말에는 워시 의장이 잭슨홀 심포지엄에서 어떤 메시지를 내놓을지도 시장의 주요 관심사가 될 전망이다.
7월 CPI는 급박했던 9월 금리 인상론에 제동을 걸었다. 그러나 에너지 가격이 다시 오르고 AI발 기술제품 가격 상승과 서비스 인플레이션이 지속된다면 논쟁은 다시 살아날 수 있다.
따라서 연준의 다음 질문은 물가가 한 달 더 낮아졌느냐가 아니라, 전쟁·관세·AI에서 발생한 충격이 시간이 지나며 사라질 것인지 미국 경제 내부의 지속적인 인플레이션으로 굳어질 것인지에 맞춰질 것으로 보인다.
김현철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rock@g-e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