닫기

글로벌이코노믹

[김대호 진단] 프랑스 국가부도? 스미토모 은행의 무서운 선택

글로벌이코노믹

[김대호 진단] 프랑스 국가부도? 스미토모 은행의 무서운 선택

김대호 박사 글로벌이코노믹 연구소장/ 전 고려대 교수  이미지 확대보기
김대호 박사 글로벌이코노믹 연구소장/ 전 고려대 교수
[김대호 심층 진단] 스미토모의 무서운 선택, 프랑스는 과연 국가부도로 치닫는가

글로벌 금융시장에 떨어진 날벼락


일본의 가장 큰 금융기관의 하나인 스미토모가 프랑스 국채를 한꺼번에 모두 팔아치웠다. 한마디로 전량 투매 손절이다. 글로벌 금융시장의 큰손 스미토모의 느닷없는 투매는 프랑스의 국가부도 공포로 이어지고 있다.

통상적인 글로벌 메이저 은행들의 채권 운용 방식을 감안하면, 포트폴리오의 비중을 단계적으로 축소하거나 일부 차익을 실현하는 것이 정상적인 궤도다. 그러나 보유 잔액을 단 한 푼도 남김없이 단칼에 ‘제로(0)’로 정리해 버린 이번 조치는 명백한 ‘비상 탈출(Emergency Exit)’이자 냉혹한 선 긋기다.

스미토모미쓰이 은행이 누구인가. 일본의 3대 재벌 금융사이자 수십 년간 엔캐리 트레이드의 중심축 역할을 하며 전 세계 국채 시장에 유동성을 공급해 온 거대 자본이다. 그러한 스미토모가 신흥국이나 한계 기업도 아닌, 서방 선진 7개국(G7)의 핵심이자 유럽의 양대 기둥인 프랑스를 콕 집어 가장 먼저 팽개쳤다. 이는 국제 금융시장에 명확하고도 섬뜩한 신호를 보낸 셈이다. 현재 전 세계를 짓누르는 고금리 장기화의 파고 속에서, 가장 먼저 무너질 ‘가장 약한 고리’가 바로 프랑스라는 판정이 내려진 것이다. 과연 프랑스는 통제 불능의 국가부도 사태로 치닫고 있는가.

자본의 냉혹한 냄새 맡기

스미토모는 왜 가장 먼저 발을 뺐는가스미토모의 전격적인 투매는 감정적 대응이 아닌, 극도로 치밀하고 냉혹한 리스크 관리의 결과물이다. 스미토모를 비롯한 일본 금융자본은 자본의 피비린내와 위기의 전조를 누구보다 예민하게 감지해 왔다.

역사를 돌이켜보면 1997년 대한민국이 외환위기를 겪었을 당시에도 가장 잔인하고 신속하게 단기 여신을 회수하고 자금을 빼내 갔던 주체가 바로 스미토모 은행이었다. 국내 기업과 금융기관들이 건실한 실적을 내고 있더라도, 국가 단위의 거시 건전성에 균열이 보이면 일말의 주저함 없이 손을 털고 나가는 것이 이들의 생리다.

이번 투매 이후 스미토모의 자금 이동 경로는 시사하는 바가 더욱 크다. 회수된 막대한 자금은 일본 본토로 역송환되었으며, 유럽 내에 남은 잔여 자금조차 프랑스를 떠나 안전지대인 독일 국채(분트)로 갈아탔다. 즉, 유럽이라는 단일 경제권 내에서도 프랑스는 더 이상 안전한 투자처가 아니라는 사실을 만천하에 공언한 것이다.

이 여파로 프랑스 10년물 국채 금리는 24년 만의 최고 수준으로 치솟았고, 유로존의 경제적 신뢰도는 바닥으로 추락하고 있다. 유로화 가치가 급락세를 면치 못하면서 상대적으로 미국 달러화가 기형적인 강세를 띠게 되었고, 이는 다시 원/달러 환율을 끌어올려 한국 경제에까지 실시간으로 파장을 미치고 있다. 일본 거대 은행의 손절 하나가 전 세계 금융시장의 신경망을 송두리째 뒤흔들고 있는 것이다.

프랑스 경제의 곪아 터진 환부

견고한 선진 복지국가로 평가받던 프랑스가 어쩌다 ‘일본 자본의 기습적 탈출’이라는 수모를 겪게 되었는가. 그 이면을 들여다보면 장기간 방치되어 온 방만한 재정과 정치적 포퓰리즘이 만들어낸 필연적 참사가 자리 잡고 있다.

첫째, 기준치를 완전히 무너뜨린 재정적자와 부채 폭탄


프랑스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재정적자 비율은 현재 5.8%에 이른다. 유럽연합(EU)의 마스트리히트 조약이 규정한 엄격한 재정준칙 상한선인 ‘GDP 대비 3.0%’를 두 배 가까이 초과한 참담한 성적표다. 10여 년 전 재정 파탄의 대명사였던 남유럽의 PIGS(포르투갈·이탈리아·그리스·스페인) 국가들이 각고의 긴축 끝에 재정을 정상화한 반면, 프랑스는 되레 유로존 최악의 적자국으로 전락했다.

국가채무 비율은 이미 GDP 대비 119%를 넘어섰으며, 연간 국가부채 이자 비용만 수백억 달러에 달한다. 매년 3,000억 유로가 넘는 막대한 국채를 신규 발행해 만기 도래분을 틀어막아야 하는 처지에서, 가장 든든한 매수 주체였던 외국계 자본이 등을 돌리고 있으니 금리가 폭발하지 않을 재간이 없는 것이다.

둘째, ‘세입 대비 순이자 비용’의 한계선 돌파


국가의 실질적인 채무 상환 능력을 평가할 때 가장 엄중하게 들여다보는 지표가 바로 ‘세입 대비 순이자 비용’이다. 1년 동안 세금으로 벌어들이는 총수입 중 과거에 진 빚의 ‘순수 이자’로 빠져나가는 돈의 비율을 뜻한다.

통상 경제학에서는 이 비율이 15%를 넘어서면 국가 재정이 마비되기 시작하고, 20%에 육박하면 언제 터질지 모르는 국가부도 위험 구간으로 정의한다. 마크롱 대통령 취임 초기만 해도 8% 안팎에서 안정적으로 관리되던 프랑스의 순이자 비용 비율은 최근 금리 폭등과 맞물리며 17~19% 선까지 치솟았다. 국민에게 세금 100유로를 걷어서 20유로 가까이를 오직 과거 빚의 이자를 갚는 데만 탕진하고 있다는 의미다. 정부가 국가의 미래를 위해 투자하거나 위기를 방어할 재정적 실탄이 완전히 고갈되었음을 뜻한다.

셋째, 좌·우파 포퓰리즘의 적대적 공생과 의회의 식물화


재정이 망가지면 세금을 더 걷거나 씀씀이를 줄이는 긴축에 돌입해야 마땅하다. 그러나 프랑스 정치는 정반대의 길을 걸으며 자멸을 택했다. 에마뉘엘 마크롱 정부는 친기업 감세를 추진했고, 이에 맞선 좌파 야당들은 복지 지출 확대를 밀어붙였다. 즉, ‘세금은 덜 걷고 돈은 더 펑펑 쓰는’ 최악의 포퓰리즘 경쟁이 8년 이상 이어졌다.

설상가상으로 조기 총선 이후 마크롱 정권은 의회 과반을 완전히 상실한 극심한 ‘여소야대’ 교착 상태에 빠졌다. 정부가 재정 파탄을 막기 위해 마련한 긴축안은 야당의 결사반대로 의회에서 전면 거부당했다. 임기 말에 다다른 마크롱 대통령의 레임덕과 내년 초 대선을 앞둔 정치권의 정쟁 속에서, 국가 재정을 정상화할 정치적 추진력은 완전히 실종되었다.

넷째, 자체 통화 발권력의 부재라는 치명적 덫


미국이나 일본과 비교할 때 프랑스가 지닌 가장 본질적인 공포는 바로 ‘통화 주권이 없다’는 점이다. 미국은 달러라는 기축통화를 직접 찍어낼 수 있고, 일본 또한 엔화를 자체 발행하여 급한 불을 끌 수 있는 발권력을 쥐고 있다.

그러나 프랑스는 유로화를 공동으로 사용하는 유로존 국가다. 프랑스 중앙은행이 독자적으로 프랑을 찍어내 국채를 인수해 줄 수 없다. 위기를 모면하려면 유럽중앙은행(ECB)의 구제금융을 받아야 하지만, ECB는 GDP 대비 적자 폭을 3% 이내로 줄이는 가혹한 긴축 조건을 전제하지 않으면 단 한 푼의 유동성도 지원하지 않는다. 스스로 돈을 찍을 수도 없고, 의회가 마비되어 외부 지원 조건도 맞출 수 없는 그야말로 진퇴양난의 외통수에 걸려 있는 셈이다.

부채의 저주

역사가 경고하는 제국의 몰락빚이 통제 범위를 벗어났을 때 국가가 어떤 비참한 결말을 맞이했는지는 역사가 명백히 증명하고 있다. 부채는 늘 달콤하게 다가오지만, 상환 능력을 잃어버리는 순간 국가와 체제를 송두리째 집어삼켰다.아이러니하게도 프랑스는 이미 200여 년 전 부채로 인해 왕조가 몰락한 뼈아픈 역사를 갖고 있다. 1789년 프랑스 대혁명의 도화선은 자유와 평등이라는 사상 이전에 국가 부채의 파탄이었다. 당시 부르봉 왕조는 계속된 대외 전쟁과 궁정의 방만한 지출로 인해 총세입의 50% 이상을 오직 이자를 갚는 데 탕진해야 했다. 빚을 갚기 위해 귀족과 평민 모두에게 무리한 과세를 시도하다 삼부회가 소집되었고, 그것이 왕조의 단두대행으로 이어졌다.

16세기 무적함대를 이끌고 세계를 호령했던 스페인의 펠리페 2세 역시 과도한 전비 조달을 위해 무리하게 국채를 남발하다가 무려 네 차례나 국가 지급 불능을 선언하며 제국의 쇠락을 앞당겼다. 근대 이집트는 수에즈 운하를 파는 과정에서 감당할 수 없는 외채를 짊어졌다가 결국 영국의 식민지로 전락했고, 1차 대전 직후 독일 바이마르 공화국은 천문학적인 빚을 메우려 무제한 화폐를 인쇄하다 초인플레이션의 지옥을 겪고 히틀러의 광기에 정권을 넘겨주었다.

조선 말기 흥선대원군이 경복궁을 중건하기 위해 남발했던 당백전 사태 역시 통화 질서의 붕괴가 국가의 운명을 어떻게 파멸로 이끄는지를 보여주는 생생한 교훈이다. 현재 프랑스가 겪고 있는 국채 위기는 단순한 채권 시장의 출렁임이 아니라, 방만한 부채가 국가의 목줄을 죄어오는 역사적 데자뷔의 초입 단계다.

그렇다면 프랑스는 스미토모의 투매대로 당장 내일이라도 국가부도(디폴트)를 맞이하며 지도에서 사라질 것인가. 사태의 본질을 냉철하게 직시해야 한다.경제학적으로 국가가 회생 불능의 물리적 디폴트에 빠지는 선은 외채 의존도가 100%를 초과하고 세입 대비 이자 상환액이 50%를 넘어설 때다. 현재 프랑스의 순이자 비용 비율은 19% 안팎으로, 파국의 출발선에는 서 있지만 당장 국가의 지불 기능이 전면 마비되는 종말적 단계는 아니다. 프랑스 국채에 대한 부도 위험을 나타내는 신용부도스왑(CDS) 프리미엄 역시 가파르게 오르고 있으나 전면적인 패닉 수준까지는 도달하지 않았다.

진짜 위협은 ‘물리적 파산’ 그 자체가 아니라, ‘기술적 디폴트’와 그로 인한 ‘금융시장의 연쇄 발작’이다. 국채를 던지는 세력이 늘어나 금리가 폭등하면 프랑스 기업들의 자금 조달 비용이 수직 상승하고, 이는 대형 은행들의 부실로 이어져 유로존 전체의 신용경색을 유발한다. 유로화의 추락은 달러 패권을 더욱 강화시키며, 전 세계 자본이 안전자산으로 도피하는 과정에서 한국과 같은 대외 의존형 경제는 극심한 고환율과 외국인 자금 이탈의 직격탄을 맞게 된다.

스미토모 은행이 프랑스 국채를 집어 던진 행위는 결코 스쳐 지나가는 단발성 사건이 아니다. 글로벌 금리가 높은 수준을 유지하는 신냉전적 경제 환경 속에서, 국가 재정이 곪아 있는 취약한 선진국부터 자본의 '가혹한 숙청'이 시작되었음을 알리는 명백한 신호탄이다.

이는 대한민국에도 대단히 서늘한 경고를 던진다. 현재 한국의 국가채무 비율은 50~60%대로 프랑스에 비하면 겉보기에 양호해 보인다. 그러나 민간부채와 공공부채를 합산한 총부채의 증가 속도는 전 세계에서 가장 빠르며, 저출산·고령화로 인한 복지 지출의 폭발은 이미 정해진 미래다.

선거철마다 쏟아지는 선심성 포퓰리즘 재정 지출과 ‘우리는 괜찮다’는 안일한 과신이 어떤 결과를 낳는가. 스미토모가 쏘아 올린 프랑스 국채 투매의 충격파가 지금 파리의 하늘을 넘어 전 세계 금융시장에 울려 퍼지고 있다. 자본은 결코 기다려주지 않으며, 방만한 부채의 대가는 언제나 가혹하다.


김대호 글로벌이코노믹 연구소장 tiger8280@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