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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호 인물] 캐럴라인 레빗...백악관 대변인 "트럼프의 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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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호 인물] 캐럴라인 레빗...백악관 대변인 "트럼프의 입"

레빗 전 백악관 대변인/사진=로이터 이미지 확대보기
레빗 전 백악관 대변인/사진=로이터
[김대호의 인물 오디세이] 백악관의 최연소 입, 캐럴라인 레빗의 권력 항해기

도널드 트럼프의 '입'으로 한 시대를 풍미한 전 백악관 대변인 캐럴라인 레빗(Karoline Leavitt)이 폭스뉴스(Fox News)에 공식 입사했다. 폭스뉴스 미디어는 레빗을 전속 논설위원 겸 방송 기고가(Contributor)로 영입했다고 발표했다.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과 함께 미국 역사상 최연소 백악관 대변인으로 발탁되어 웨스트윙 브리핑룸을 호령했던 그녀가, 백악관을 떠나자마자 보수 진영 여론의 심장부인 폭스뉴스의 간판 해설가로 전격 복귀한 것이다. 대학생 시절 폭스뉴스의 무명 인턴으로 방송 실무를 배웠던 청년이, 대통령의 공식 대변인을 거쳐 거대 방송 네트워크의 핵심 스피커로 금의환향한 사건은 워싱턴 정가와 미디어계의 비상한 주목을 받고 있다.

뉴햄프셔의 소상공인 가정과 세인트 안셀름의 지적 단련


캐럴라인 레빗은 1997년 8월 24일 미국 뉴햄프셔주 애트킨슨(Atkinson)에서 태어났다. 그녀의 부모는 뉴햄프셔 지역에서 아이스크림 가게와 중고차 매매업 등 자영업을 운영하던 전형적인 북동부의 자수성가형 소상공인이었다. 어린 시절부터 부모가 휴일도 없이 땀 흘려 가계를 꾸려가는 현장을 지켜보며 자란 레빗은 규제 완화, 근로 윤리, 소상공인의 재산권 보호라는 보수주의적 가치관을 일상의 체득으로 받아들였다.

지역의 엄격한 가톨릭 사립고인 센트럴 가톨릭 고등학교(Central Catholic High School)를 졸업한 뒤, 그녀는 뉴햄프셔주 맨체스터에 위치한 가톨릭 계열 명문 리버럴 아츠 칼리지인 세인트 안셀름 대학(Saint Anselm College)에 진학했다. 대학 시절 레빗은 커뮤니케이션과 정치학을 복수 전공하며 두각을 나타냈다. 소프트볼 선수로 활동하며 강인한 체력과 승부근성을 다졌고, 교내 방송국 활동과 학생 자치 기구 참여를 통해 실무적 소통 능력을 연마했다. 특히 미국 대선의 첫 관문이자 풍향계로 불리는 '뉴햄프셔 프라이머리'의 산실인 뉴햄프셔 정치연구소(NHIOP)에서 활동하며, 워싱턴 정가의 유력 정치인들과 베테랑 기자들의 치열한 공방을 현장에서 직접 경험했다.

정치적 야망과 가정의 구축: 니콜라스 리치오와의 결합


정치적 무대에서 가파른 상승 곡선을 그리던 레빗의 이면에는 안정적인 가정적 기반이 자리하고 있었다. 그녀의 남편은 부동산 사업가이자 기업가인 니콜라스 리치오(Nicholas Riccio)다. 두 사람은 오랜 교제 끝에 가정을 꾸렸으며, 2024년 7월 첫 아들인 니콜라스를 출산했다.

주목할 만한 점은 그녀가 출산 직후 불과 며칠 만에 트럼프 대선 캠프의 핵심 대변인 업무로 복귀했다는 사실이다. 미국 대선 판세가 절정으로 치닫던 시기, 갓 태어난 아이를 돌보는 모성과 국가 권력의 향방을 가르는 선거전의 최전선을 지키는 공보 책임자의 역할을 동시에 소화해 낸 그녀의 행보는 공화당 지지층 사이에서 강력한 직업적 헌신과 프로페셔널리즘의 상징으로 각인되었다. 전통적 가족 가치를 중시하는 보수 유권자들에게 워킹맘으로서의 레빗은 단순한 대변인을 넘어 시대적 보수 여성상을 대변하는 아이콘으로 자리 잡았다.

백악관 인턴에서 2기 대변인까지: 트럼프와의 숙명적 조우


캐럴라인 레빗과 도널드 트럼프의 인연은 트럼프 1기 행정부 시절인 2019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세인트 안셀름 대학 4학년 재학 중 백악관 대통령 서신실(Office of Presidential Correspondence) 인턴으로 입성한 그녀는 행정부의 정책 철학을 대중에게 전달하는 기초적인 문안 작성부터 시작했다. 남다른 성실성과 신속한 정무 감각을 인정받은 레빗은 졸업과 동시에 백악관 공보실의 정식 행정관으로 발탁되었으며, 케일리 매커내니(Kayleigh McEnany) 백악관 대변인 재임 시절 보좌진으로 합류해 부대변인(Assistant Press Secretary)까지 초고속 승진했다.
그 당시 매커내니가 거센 주류 언론의 공세를 방대한 데이터와 공격적 브리핑으로 맞받아치던 방식은 레빗에게 가장 훌륭한 교과서가 되었다. 레빗은 트럼프 행정부를 향한 기성 언론의 적대적 공세를 방어하는 최전선에서 트럼프 특유의 직설적 화법과 미디어 대응 논리를 완벽하게 체화했다.

2021년 1월 트럼프가 백악관을 떠난 후, 레빗은 친(親)트럼프계 핵심 인사인 엘리스 스터파닉(Elise Stefanik) 연방 하원의원의 공보국장으로 자리를 옮겨 의회 정치의 실무를 총괄했다. 이어 2022년 중간선거에서는 만 25세라는 최연소 연령으로 자신의 고향인 뉴햄프셔주 제1선거구 연방 하원의원 선거에 공화당 후보로 직접 출마하는 결단을 내렸다. 비록 본선에서는 민주당 현역 의원에게 석패했으나, 당내 경선에서 쟁쟁한 기성 정치인들을 꺾는 파란을 일으키며 '젊은 마가(MAGA·Make America Great Again) 전사'로서의 독보적 입지를 구축했다.

2024년 대선 정국이 본격화되자 트럼프는 그녀를 대선 캠프의 핵심 대변인으로 재소환했다. 레빗은 폭스뉴스는 물론 보수와 진보를 가리지 않는 전방위 방송에 출연하여 트럼프의 사법 리스크와 정책 공약을 맹렬히 방어했다. 기성 언론 앵커들의 날 선 압박에도 결코 위축되지 않고 즉각적인 반박 논리를 쏟아내는 결기 어린 태도는 트럼프의 절대적 신임을 얻어냈다.

백악관의 상징적 입에서 미디어 권력의 중심으로


대선 승리 직후 트럼프는 당시 27세였던 캐럴라인 레빗을 백악관 대변인(White House Press Secretary)으로 전격 지명했다. 1969년 리처드 닉슨 행정부 당시 29세의 나이로 대변인직에 올랐던 론 지글러(Ron Ziegler)의 기록을 반세기 만에 갈아치운 미국 헌정사상 최연소 임명이었다.

트럼프는 공식 성명을 통해 그녀를 가리켜 "영리하고 강인하며, 대단히 유능한 소통가임이 입증된 인물"이라 평가했다. 레빗은 백악관 브리핑룸 연단에서 기성 언론의 집요한 공세에 맞서 트럼프 2기 행정부의 국정 기조를 단호하게 대변하며 행정부의 간판으로 자리매김했다.

대학 시절 폭스뉴스 인턴에서 출발해 지방 소상공인 가정의 배경을 딛고 20대에 백악관 대변인이라는 최고위 공직을 완수한 캐럴라인 레빗. 이제 백악관 대변인직을 내려놓고 다시 폭스뉴스의 간판 논설위원으로 둥지를 튼 그녀의 행보는, 정치 권력과 미디어 권력이 가장 밀접하게 결합하는 현대 미국 보수 정치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증명하고 있다. 행정부의 대변인에서 미디어의 거시적 해설가로 전장을 옮긴 레빗의 목소리는 앞으로도 워싱턴 정가의 권력 지형을 뒤흔드는 강력한 변수로 작동할 것이다.


김대호 글로벌이코노믹 연구소장 tiger8280@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