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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점] "보복엔 보복으로"…미국·중국, 마이크론 제재 갈등 격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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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점] "보복엔 보복으로"…미국·중국, 마이크론 제재 갈등 격화

키신저 "인류 파괴 능력 갖춘 미·중 다툼이 글로벌 최대 위험"

미국과 중국이 기술 분야에서 전쟁을 벌이고 있다. 이미지 확대보기
미국과 중국이 기술 분야에서 전쟁을 벌이고 있다.
‘외교의 달인’ 헨리 키신저 전 국무장관은 “미·중 갈등으로 인해 3차 세계대전이 5~10년 안에 일어날 수 있다”고 경고한 바 있다. 그는 “인류의 운명은 미국과 중국이 잘 지내느냐에 달려 있다. 5~10년 안에 전쟁을 피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경고했다.

미국은 러시아, 독일, 일본으로부터 끊임없이 도전을 받아왔다. 그때마다 승자는 미국이었다. 하지만 이번 도전자는 체급부터 다르다. 대등한 덩치, 몇 배의 인구수, 무엇보다 70%를 넘긴 경제 규모로 미국의 턱밑을 위협하고 있다.
양측의 전단이 첨예하게 맞선 곳은 대만이나 우크라이나가 아니다. 미·중은 반도체 제조업체 마이크론을 둘러싸고 차가운 전쟁을 벌이고 있다,

바이든 행정부가 미국 기업 마이크론에 대한 중국의 블랙리스트에 대응하라는 압력을 가하는 가운데 지나 러몬도 상무장관과 중국 상무장관이 25일(이하 현지 시간) 중요한 만남을 가졌다.

마이크론에 대한 중국의 보복은 둘 사이의 깨지기 쉬운 화해를 돌이킬 수 없는 위험으로 빠트리고 있다. 러몬도 장관과 그녀의 중국 측 파트너 왕웬타오 장관 사이의 이날 만찬은 대화를 재개하기 위한 일련의 고위급 회담이자 워싱턴에서 열리는 첫 번째 만남이었다.

러몬도 장관의 최우선 과제는 마이크론 금지와 중국 내 미국 기업에 대한 최근 일련의 조치(습격, 구금 및 조사 포함)에 대한 원만한 수습이다.

베이징 당국은 지난 주말 주요 중국 기업들이 미국 메모리 칩 제조업체인 마이크론으로부터 제품 구매를 금지하라는 조치를 취했다. 표면적 이유로는 국가 안보 위험을 언급했다. 이에 대해 미 상무부는 “사실 근거 없는 규제”라며 발끈했다.

백악관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전략소통조정관 존 커비는 마이크론 문제가 양국의 잠재적인 화해를 방해하고 있다며 그러한 분쟁은 워싱턴과 베이징이 대화해야 하는 이유라고 강조했다.
중국 상무부에 따르면 이번 주 초 왕웬타오 장관은 상하이에서 존슨앤존슨, 3M, 다우, 허니웰을 포함한 미국 기업 대표를 만나 이들을 환영한다는 우호적인 제스처를 취했다.

하지만 마이크론에 대한 조치는 중국에 대한 미 의회의 매파 정서를 부채질하고 있다. 저명한 의원들은 바이든 행정부가 베이징에 책임을 물을 것을 요구하고 있다.

·중 반도체 패권 싸움

마이클 매콜 하원 외교위원장(공화·텍사스)은 성명을 내고 마이크론에 대한 중국의 조치는 시진핑 주석이 중국 시장을 “타국을 공격하는 무기”로 사용하려는 계획을 보여준다고 지적했다.

미국 재계에서는 마이크론 문제에 대한 관심이 척 슈머 상원 원내대표(뉴욕·민주)에게 힘을 실어줄 것으로 보고 있다. 마이크론은 지난해 말 뉴욕 북부에 거대한 컴퓨터 칩 공장 단지를 짓기 위해 향후 20년 동안 1000억 달러(약 133조원)를 지출할 계획이라고 발표했다.

마이크론의 약속은 지난해 8월 통과된 2022년 칩 및 과학법에 의해 가능해졌다. 슈머 의원은 반도체 공장 건립 장소로 그의 주(뉴욕)를 적극 추천했다.

과학 기술은 수년 동안 내리막길을 걷고 있는 미국과 중국 간의 관계에서 주요 전선을 형성하고 있다. 미·중은 글로벌 패권을 놓고 경쟁하면서 맞대응에 이은 보복을 일삼고 있다.

예를 들어 지난여름,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이 중국의 반대를 무시하고 대만을 방문한 후 중국은 미국과의 대부분 고위급 대화를 중단했다.

이후 양측의 움직임은 자동차에서 무기 제조에 이르기까지 필수 불가결인 반도체에 집중되었다. 시진핑은 중국이 이 분야를 지배할 계획을 세웠지만, 달성하기까지 가야 할 길이 멀다.

지난 주말 일본에서 열린 G7 정상회의에서 미국과 선진 민주주의 국가들은 베이징의 야망을 꺾기 위해 중요한 기술을 보호하고 외국 기업과 정부에 대한 베이징의 경제적 압력을 막기 위해 함께 노력할 것을 약속했다. 이에 대해 베이징은 마이크론에 대한 구매 금지로 맞대응했다.

중국이 미국에 대한 보복 조치로 마이크론 제품 수입을 금지했다.이미지 확대보기
중국이 미국에 대한 보복 조치로 마이크론 제품 수입을 금지했다.

마이크론 사태


이 문제에 정통한 소식통에 따르면 바이든 행정부가 고려하고 있는 보복 옵션 중 하나는 중국 정보기술 대기업 인스퍼 그룹에 대한 허점을 파고드는 것이다. 이 허점으로 인해 인텔과 IBM과 같은 미국 회사는 인스퍼와 제휴한 법인에 계속해서 판매할 수 있었다.

미 상무부는 올해 초 인스퍼를 수출 블랙리스트에 추가했지만 클라우드 컴퓨팅, 데이터 센터, 인공 지능과 같은 사업에 종사하는 모든 계열사를 지정하지는 않았다. 이는 미국 기업이 정부 허가를 받지 않고도 해당 기업에 계속 판매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인스퍼 문제에 대한 바이든 행정부 내에서의 논쟁은 중국의 대형 고객에 대한 판매 급락 가능성의 여파를 미국 공급업체가 관리할 수 있는지 여부에 중점을 두고 있다. 지금까지 중국은 마이크론 금지 조치를 철회할 의사가 있다는 징후를 거의 보이지 않고 있다.

중국 사이버공간관리국(Cyberspace Administration of China)은 주말 마이크론 제품에 대한 검토 결과 국가 안보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심각한 보안 위험’을 발견했다고 주장했다.

이후 관리국은 통신회사 및 국영은행과 같은 주요 중국 정보 인프라 운영자에게 마이크론 제품 구매에 대해 경고 조치했다. 중국의 금지 조치는 중국이 마이크론으로부터 수입품을 조사하고 있다고 말한 지 두 달도 채 안 되어 이루어졌다.

이는 작년 말 미국이 첨단 칩 제조 기술을 중국에 판매하는 것을 전면 금지한 것에 대한 반격으로 보인다. 중국 관리들은 특정 미국 기업들이 금지 조치를 시행하기 위해 바이든 행정부에 로비를 한 것으로 믿고 있다.

일부 분석가들은 중국 당국이 ‘핵심 인프라 운영자’라는 모호한 용어를 시용한다는 이유를 들어 베이징이 마이크론 금지 범위를 잠재적으로 좁힐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지금까지 양측의 험악한 분위기로 미루어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오히려 미국 기업 대표들은 마이크론 사태에서 보여준 중국의 정치적 신호가 전방위적으로 확대를 의미하지 않을지 우려하고 있다.

키신저 전 장관은 "인류를 파괴할 능력이 있다는 점에서, 지금 당장 평화를 위협하는 최대 위험은 미국과 중국이다"라고 말했다. 두 고래가 진정해야 온 세계 바다가 평화로워진다.


이수미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texan509@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