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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장의 물살 가르는 바다의 패왕 ‘유령함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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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장의 물살 가르는 바다의 패왕 ‘유령함대’

美 국방부 상업용 보급선 ‘레인저’에서 SM-6 미사일 발사
유령함대, 스텔스구축함‧무인수상함‧무인잠수정 등으로 구성
유인함정 비해 운영비용 감소, 스텔스 더하면 침투력 상승
美 해군, 2050년까지 전 함대의 40% 무인함정으로 대체

해군 대형 무인수상함 ‘레인저(RANGER)’에서 SM-6를 발사하는 실사격 시험을 진행하고 있다. 사진=LIG넥스원이미지 확대보기
해군 대형 무인수상함 ‘레인저(RANGER)’에서 SM-6를 발사하는 실사격 시험을 진행하고 있다. 사진=LIG넥스원
자동차 등 모빌리티를 비롯해 일반 상선, 나아가 항공 산업으로 확산하고 있는 ‘무인화’ 추세는 방산 장비 부문에서 진일보하고 있다. 또한 무인화는 민수와 군수의 경계를 허무는 데에도 한 몫을 하고 있다. 이와 관련, 미국은 상선에 무인화 기술을 적용한 군함으로 이뤄진 함대, 즉 ‘유령함대(Ghost Fleet)’를 만들기 위한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며, 상당한 성과를 거두고 있다. 다음은 LIG넥스원 웹진 ‘근두운’에 수록된 ‘유령 함대가 일으킬 거대한 파도에 올라타라!’를 통해 무인플랫폼과 기존 유인플랫폼의 무인화 개조에서 열리게 될 기회를 모색해 본다.

지난 2021년 9월 4일, 미 국방부(DoD)가 트위터 계정에 공개한 짧은 비디오 속에 낯선 상선 한척이 등장했다. 캘리포니아 앞바다를 항해하는 길이 59m의 상업용 보급선은 석유 및 가스 플랫폼에 각종 서비스를 제공하는 고속 선박이다. 항해를 위한 센서와 통신장비를 쌓아 올린 마스트 외에 컨테이너 박스로 가득찬 긴 데크에는 컨테이너가 실려 있었는데, 그중 하나가 돌연 수직으로 확장되더니 SM-6 미사일이 발사되었다. SM-6 미사일은 함정과 항공기, 탄도미사일을 모두 잡을 수 있는 미군의 능동형 다목적 함대공 미사일이다.
이 영상은 미 해군의 대형 무인수상함(LUSV, Large Unmanned Surface Vehicle)인 ‘레인저(RANGER)’에서 레이시온의 스탠다드 미사일 SM-6를 발사하는 실사격 시험을 공개한 것이다. 표준 선적 컨테이너와 비슷한 크기의 흰색 상자 속에는 Mk.41로 보이는 4셀 모듈이 실려 있다. Mk.41은 SM-6 미사일을 발사할 수 있는 미 해군 함정의 표준 수직발사체계(VLS, Vertical Launching System)다. 상업용 보급선이 사실상 이지스 구축함 수준의 무장을 탑재하는 셈이다. 애초에 이 보급선은 군용으로 설계된 함정이 아니다. 일반 상업용 배로 절반 정도 건조된 와중에 미 해군이 구입했다. 다수의 상선에 컨테이너 박스로 위장해 적에게 발사 원점을 들키지 않으려는 의도가 있음은 분명해 보인다. 고정된 활주로와 육상 발사 위치와 관계없이, 바다에서 예측 불가능한 기동 모바일 자산을 보유한다는 것은 전술적으로 매우 유리한 고지를 점령한다.

레인저는 미 국방부의 비밀 연구 조직인 전략능력국(SCO, Strategic Capabilities Office)이 주도해 추진한 ‘유령 함대(Ghost Fleet Overlord)’ 프로그램 중 시험용 대형 무인수상함을 구성하는 네 대의 무인함정 중 하나다. 이 유령함대는 스텔스구축함, 무인수상함과 무인잠수정으로 구성된 유무인 함대로, 선두에 서게 될 메인 전력은 무인플랫폼이다.

개발과정에서 먼저 1번함 레인저와 2번함 ‘노마드(NOMAD)’가 2019년 10월, 성공적인 시연을 마무리했다. 두 시험 선박 모두 해상 충돌 방지를 위한 국제 규정 협약에 따라 600시간 이상의 자율 운항 테스트를 통과했다. 2020년에는 멕시코만에서 캘리포니아주 웨스트코스트까지 약 8200km를 항해하는 데 성공했다. 노마드는 이 구간에서 파나마 운하를 통과할 때를 제외하고 전체구간의 98%를 자율항해 모드로 수행했다. 이 장거리 자율 통행시험에서 두 함정의 지휘통제는 육상 무인작전센터에서 위성통신으로 진행되었다.

전략능력국은 2022년 1월, 시험 프로그램을 완료하고 이들 함정을 미 해군에 이관했다. ‘마리너(MARINER)’라고 불리는 4번함은 2022년 8월에 미 해군 함대에 입항했으며 마지막 대형 무인수상함이 될 3번 ‘함벵가드(VANGUARD)’는 아직 건조 중이다.

기존 호위함급과 유령함대의 차이. 사진=LIG넥스원이미지 확대보기
기존 호위함급과 유령함대의 차이. 사진=LIG넥스원
미 해군의 전략은 유령함대를 전면으로 내세워 해상에서의 중국 전력 확대를 효과적으로 저지하겠다는 것이다. 최우선 표적은 중국 해군의 핵추진전략잠수함(SSBN, Ballistic Missile Submarine)이다. 부차적인 임무는 무인플랫폼을 활용하여 중국해군의 전략자산을 격파하고 ‘반접근·지역거부(A2AD, Anti-Access/Area Denial)’ 전략에 대응하겠다는 것이다. 반접근·지역거부 전략이란 중국 및 동아시아에 대한 미국의 군사적 개입을 저지하기 위한 비대칭 작전이다. 무인플랫폼은 피격되어도 인명피해가 없을뿐만 아니라 건조 비용도 유인플랫폼에 비해 저렴 하다. 게다가 동일 성능 대비 크기가 상대적으로 작아, 스텔스 기능까지 갖출 경우 은밀하게 적국의 인근 해역까지 깊숙하게 침투할 수 있다.

미 해군은 △연안 대기뢰전과 연안 대잠전에서는 소형 무인수상함 △배타적경계수역(EEZ) 인근 해역에서 지휘통제통신(C4I)과 전자전 임무를 수행 할때는 중형 무인수상함 △타격 임무를 수행할 때는 대형 무인수상함을 확보해 유령함대에 배치할 예정이다. 또한 중국해군 핵추진전략잠수함(SSBN)과 공격형 잠수함을 목표로는 언론을 통해서도 잘 알려진 초대형 무인잠수정 ‘오르카(ORCA)’를 포함한 무인잠수정들이 배치된다.
최근 미국의 중대한 위협은 중국 및 러시아뿐만 아니라 이란과 같은 2차 군사 강대국들까지 광범위한 대함미사일 개발을 추진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들 위협을 고려할 때 플랫폼의 ‘네트워크화’와 ‘분산화’는 필연적이다. 지금과 같이 핵심 화력을 구축함급에서만 운용할 수 있다면 위성, 정찰무인기 등 고도화된 감시정찰 자산에 발사 원점이 노출되기 쉽다. 무인플랫폼의 핵심은 이처럼 다양한 임무 자산의 분산배치와 협업에 있다. 이들은 임무 목적에 따라 유연한 함대로 구성될 수 있으며, 일부 함정이 피격되더라도 분산된 화력을 가졌기에, 대규모 함정 대비 리스크가 적다. 다양한 플랫폼에 화력을 분산시킨다는 목표. ‘Ghost Fleet Overlord’은여기에 핵심이 되는 임무를 수행한다.

대규모 유인 함정은 운영과 유지에 많은 비용이 소모된다. 구축함과 같은 대형 함정은 획득과 운영, 그리고 유지에 천문학적 비용이 들어가기 때문에 많은 수를 보유하기 어렵다. 여기에 저비용, 고내구성의 무인플랫폼은 가장 효과적인 해결책이다. 가까운 미래에는 다수의 소형 무인플랫폼과 이들의 컨트롤 타워 역할을 수행할 소수의 대형 유인플랫폼으로 구성된 유령 함대가 바다를 장악할 것이다. 해군 작전 책임자(CNO)인 길데이(MM Gilday) 제독은 유·무인의 하이브리드 함대를 만들려면 “플랫폼 중심의 접근 방식에서 기능 중심 접근 방식으로 변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한 무인 해양 시스템 프로그램 관리자인 스콧 시얼리스(Scot Searles) 대위는 “현장에서 수요를 만족시키려면 저렴한 것이 핵심”이라며, “개발 초기 단계에서 저렴하고, (기능은) 확장 가능하면서 서로 연결되도록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미 해군은 2050년대까지 함대의 최대 40%가 무인이 될 것이라고 예측한다.

‘사람이 타지 않는다’는 사실은 플랫폼 개발의 근간을 바꾼다. 특히 한번 탑승 후 임무기간이 긴 수상함이나 잠수함은 의식주 필수 공간뿐만 아니라 생활 편의 공간까지 요구된다. 여기에다 잠수함의 경우에는 승조원에게 산소를 공급하기 위해 바닷물로 산소를 만드는 장치를 탑재해야 한다. 사람이 탑승하기 때문에 반드시 충족해야만 했던 환경 조건들도 만족해야 한다. 그래서 같은 임무를 수행하더라도 유인 플랫폼과 무인 플랫폼의 크기 차이가 다른 분야에 비해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크다. 특히, 초대형 무인잠수정인 ORCA는 미 해군의 핵추진 공격용 잠수함처럼 어뢰, 하푼 대함미사일, 토마호크 크루즈 미사일 등을 장착할 수 있지만 그 크기는 26m에 불과하다.

무인플랫폼 대세론은 전통적인 대형 플랫폼 회사들에게는 도전적인 변화를 요구한다. 소형플랫폼은 과거에도 작은 테크 기업 위주로 개발되어 왔다. 게다가 우크라이나 전쟁 중에 입증된 LOCUST(Low-Cost Unmanned Swarm Technologies)의 효과는, 각국 국방 연구개발의 막대한 자금이 대형 플랫폼에서 소형 무인플랫폼으로 전환되는 비율을 가속화하고 있다. 따라서 연구개발의 규모와 난이도 측면에서 진입 장벽이 낮은 소형 플랫폼 시장은 글로벌 테크기업들에게 충분히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앞선 L Note에서도 언급했듯이, ‘우리는 SW회사’라고 선언하는 미국의 스타트업 안두릴이 호주의 초대형 무인잠수정을 수주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민간 산업에서 발전 속도가 빠른 기술이 필수적으로 요구되는 점도 비방산 테크기업들에 매력적이다. 에너지 관리, 인공 지능, 센서 네트워킹 등의 기술은 무인플랫폼 성장을 위한 새로운 길을 열어가고 있다. 미국에서는 현재 다양한 회사들이 무인플랫폼에 관심을 나타내고 있으며, AI 기술이 지속적으로 진화함에 따라 자율 기능에 대한 다양한 수요가 무인플랫폼 시장의 확장을 촉진시키고 있다.

무인화의 또 다른 방향은 기 전력화된 유인플랫폼의 무인화 개조다. 앞서 언급한 대형 무인수상함인 레인저는 기능적인 목적, 즉 은밀성과 저비용을 사유로 플랫폼의 개조가 이뤄졌다면 대부분의 국방 현장에서 이뤄지는 개조는 안전상의 사유다. 우리나라의 경우 지상플랫폼 개조의 대표적인 예가 K1전차와 K9자주포의 원격무인화 개발이다. 해당 과제는 접적 지역에서 병사의 안전을 위해 현재 운용중인 기동전투체계를 전장상황에 따라 원격‧무인으로 운용할 수 있도록 관련 기술을 개발하는 것을 골자로 하며, 2024년 개발 완료를 눈앞에 두고 있다.

이보다 앞서, 공중플랫폼 분야에서도 헬리콥터를 무인화 개조한 사례가 있다. 2012년 12월, 충남 논산 육군 항공학교에서 보잉과 대한항공이 500MD 헬리콥터를 무인화하여 비행 시연을 성공적으로 수행했다. 당시 시연이 보여주고자 했던 것은 우리 군의 인명 피해를 전면적으로 배제하기 위해 유인 헬기도 무인화가 가능하다는 것, 그리고 기체 사용 수명 기한이 지났다는 사유로 전력화에서 배제될 필요 없이, 다각적인 보강 작업을 통해 경제적인 방법으로 우리 군의 전력 증강에 기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수상 및 수중 분야의 경우는 어떠한가. 대형 잠수함은 성능개량 사업을 통해 전력의 유지 및 확장을 꾀하고 있는 한편, 아직 무인화 목적의 개조는 시도되지 않고 있다. 참수리 고속정은 1978년부터 1990년대 초까지 3종류의 형태로 건조되어 총 105척이 취역한 해군의 중형 고속정이다. 참수리 고속정, 즉 PKM은 북한 고속정과 간첩선에 맞서 영해를 지켜온 창끝 전력임과 동시에 해상에서 어로보호 작전, 환자 이송, 조난 구조 등 온갖 일을 도맡는 일꾼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수명 연한이 다가오는 PKM을 대체하고자 신형 유도탄 고속함(PKG)이 진수되었고, 이와 동시에 참수리급을 그대로 계승한 신형 참수리 고속정(PKMR)도 해군에 인도돼 항해 중이나 모두 취역하더라도 그 수는 PKM대비 적은 것이 사실이다. 만약 아직 쓸만한 선체를 가진 PKM을 무인화 개조하여 활용할 수 있다면? 105대에 이르는 PKM이 ‘유령함대’가 되어 동해 바다를 수호하는 압도적인 창끝 전력이 되는 상상을 해본다.

해군이 미래 해양전에 대비해 구축을 시작한 유무인 복합체계 ‘Navy Sea GHOST’ 사진=LIG넥스원이미지 확대보기
해군이 미래 해양전에 대비해 구축을 시작한 유무인 복합체계 ‘Navy Sea GHOST’ 사진=LIG넥스원
‘유령함대(Ghost Fleet)’는 미·중간 가상 전쟁을 다룬 소설의 이름에서 따온 것으로, 사람도 없고 적의 레이더에 잘 탐지되지 않는 ‘유령’같은 무인함을 선두에 세워 정보를 수집하고 방어망을 해체한다는 개념이다.

우리도 구축함 등 핵심 전략 자산의 선두에서, 이 ‘유령’같은 무인함들이 대잠 작전을 분산 수행하는 미래를 설계해야만 한다. 앞선 미국의 사례에서 보았듯이 무인플랫폼의 활용은 필수불가결한 것이 되었다. 대잠수함 작전을 위해서 선체고정음탐기(HMS)와, 예안형 선배열 음탐기(TASS), 어뢰발사체계를 각각 탑재한 무인수상정이 유령함대의 선두에서 적 잠수함을 탐지하고 식별하여 어뢰를 발사, 적 잠수함을 무력화한다. 이때 이들의 후미에는 작전의 지휘통제를 위해 전투체계를 탑재한 위그선이 뒤따르고 있다. 무인함들은 정숙성이 요구되는 대잠수함 작전에 적합토록 소음이 적은 전기 추진 수상정이 적합할 것이다.

다만 유령함대는 해킹 등 사이버 공격뿐만 아니라 적에게 탈취되었을 때 보안 위협에 대응해야 하는 문제들이 남아있다. 특히 유령함대는 원격조종 또는 자율주행으로 움직이는 만큼 해킹 등 사이버 공격이 치명적인 위협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국내에서도 이러한 문제에 대응하기 위해 무인플랫폼에 대한 사이버 보안과 안티템퍼링 과제들을 활발히 추진하고 있다.

변하지 않는 것은 새로운 플랫폼의 시대가 도래하더라도 임무 장비의 수요, 특히 화력 시스템에 대한 수요는 전통적인 방위산업체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미래에는 우리의 임무장비를 각각 탑재한 유령함대가 먼 바다에서 맹위를 떨치는 모습을 보게 될 것이다.

<자료: LIG넥스원>



채명석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oricms@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