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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금주의 미술산책(21)] 르네상스 예술 꽃피운 메디치家의 소프트 파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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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금주의 미술산책(21)] 르네상스 예술 꽃피운 메디치家의 소프트 파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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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네상스회화 대표작_보티첼리, 비너스의 탄생, 1485경
르네상스 웨딩홀, 르네상스 호텔…. 심심찮게 찾아볼 수 있는 르네상스라는 단어를 볼 때마다 웃음이 나오면서도 르네상스 문화의 위대함이 문득 느껴지곤 한다. Renaissance(르네상스)는 Re(다시)와 Naissance(태어나다)의 합성어로 예술 및 학문의 재생과 부활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는 프랑스어다.

중세시대는 신 중심의 사상과 아름다움이 찬양되었고 봉건 제도로 인해 개인의 자유와 창조성은 존중받지 못하던 사회였다. 신적인 완전성을 지향하고 자유롭지 못했던 중세의 문화에 반발하여 과거 찬란했던 고대 그리스·로마 문화를 이상으로 새로운 문화를 일으키자는 운동이 바로 14세기 르네상스 운동이었다. 르네상스 운동은 미술·건축·사상 등 다양한 영역에 걸쳐 일어나 학문과 예술의 전반적인 발전을 가져오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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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디치 가문 문장
유럽 역사의 한 획을 그은 이 움직임이 처음 시작된 곳은 이탈리아 피렌체였다. 14세기에 시작되어 15세기를 거쳐 프랑스와 영국·독일 및 북유럽 지역까지 확대되는 르네상스 문화가 태동했던 곳 피렌체. 그리고 이 위대한 문화의 진원지를 통치하며 르네상스를 꽃피운 가문이 바로 메디치 가(家)다. 메디치 가문은 원래 피렌체 공화국의 중산층 가문이었으나 이후 은행업으로 막대한 부를 축적하고 교황을 비롯한 뛰어난 인재들을 배출하며 1400년부터 피렌체의 군주로서 약 350년간 그 명성을 지속시킨 유럽 최고의 가문이다. 하지만 메디치 가문이 이처럼 역사적으로 두드러지며 명성을 누릴 수 있었던 것은 결코 많은 돈과 권력 때문만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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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론치노, 엘레오노라 데 톨레도와 아들 조반니 데 메디치, 1545
1378년 메디치 가문의 살베스토로는 평민의 입장을 대변하는 주장으로 노동자 반란을 일으켰으며, 1400년 조반니 데 메디치는 평민의 입장을 헤아리는 인물로서 대중의 지지를 받았다. 메디치 가문은 당시 평민들에게 불리했던 세금제도를 개정하는가 하면 다양한 문예부흥사업에 큰 힘을 쏟았다. 조반니의 아들 코시모 데 메디치는 이후 피렌체공화국의 군주가 되며 그의 손자가 통치하는 15세기에 메디치 가는 가장 번영한다. 이 시기가 바로 르네상스 문화가 최고조에 이르렀던 때다. 메디치가는 예술 뿐 아니라 철학 및 인문학에 대한 깊은 관심을 가지고 연구를 장려하였고 많은 미술품을 수집하고 예술가들을 후원하여 학문과 예술이 매우 발전했다.

이후 메디치 가문은 계속 피렌체를 통치하고 교황을 배출하는 등 막대한 영향력을 자랑하였지만 독재를 견제하는 귀족들과 프랑스의 침략 등으로 우여곡절을 겪으며 점차 쇠퇴하기 시작한다. 1737년 메디치 가의 혈통 계승은 막을 내리고 마지막 상속녀는 15세기부터 수집되었었던 메디치 가문의 모든 소장품들과 우피치궁을 토스카나 대공국에 기증하게 된다. 우피치(Uffici)는 이탈리아어로 집무실(Office)을 뜻하는 말로서 당시 유명했던 미술가이자 건축가였던 조르조 바자리(Giorgio Vasari)가 지은 메디치 가의 공무 집행실이었다. 메디치 가가 수집했던 예술품들로 가득한 우피치궁은 이후 이탈리아 통일에 의해 국립미술관이 되었고 이것이 바로 르네상스 미술의 보고로 불리는 ‘우피치 미술관(Galleria degli Uffizi)’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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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피치 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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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피치 미술관
프랑스의 역사가 쥘 미슐레(Jule Michelet)는 "르네상스야말로 세계와 인간에 대한 발견이었다."라는 말을 남기며 르네상스 시대는 근대를 향한 출발이었다는 평가를 내렸다. 신 중심의 아름다움과 완전성에서 벗어나 인간과 자연을 탐구하는 르네상스 문화의 정신은 곧 중세 시대에 마침표를 찍고 새로운 세계를 향해 나아가는 발걸음이었던 것이다. 이 역사적인 태동을 가능하게 했던 르네상스 문화의 씨앗을 키워준 메디치 가문. 그들이 보호하고 가꾸었던 이 찬란한 문화가 이탈리아를 시작으로 유럽 전역으로 전파되어 진정한 유럽문화로 꽃 피울 수 있었던 데에는 메디치 가의 예술에 대한 사랑을 기반으로 한 진심어린 후원과 지지가 있었기 때문이다. 막대한 부와 권력을 누렸던 메디치 가문의 힘. 그 중심에는 인문학과 예술로부터 나오는 강력한 소프트 파워(Soft Power)가 흐르고 있었던 것이다.
강금주 이듬갤러리 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