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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호 칼럼] 만절필동(萬折必東)의 교훈…중국 단체여행 금지와 노영민 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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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호 칼럼] 만절필동(萬折必東)의 교훈…중국 단체여행 금지와 노영민 대사

한중 정상회담에서 우리나라가 굴욕적인 외교를 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는 가운데  노영민 주중대사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에세 신인장을 제정하면서 남긴 고사성어가 또 사대주의 논란을 빚고 있다. 사진은 중국  베이진 자금성 모습. 사진 중국 여유국 이미지 확대보기
한중 정상회담에서 우리나라가 굴욕적인 외교를 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는 가운데 노영민 주중대사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에세 신인장을 제정하면서 남긴 고사성어가 또 사대주의 논란을 빚고 있다. 사진은 중국 베이진 자금성 모습. 사진 중국 여유국
[글로벌이코노믹 김대호 기자] 한-중 정상회담의 후폭풍이 간단치 않다. 문재인 대통령이 중국을 다녀온지 일주일이 넘어지만 구설이 끊이지 않고 있다. 여기에다 중국 산둥성이 한국으로의 단체여행을 다시 불허하면서 사드보복 논쟁도 가열 되고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우리나라를 스스로 너무 낮추고 중국과 시진핑 국가주석에게 지나치게 아부를 했다는 굴종외교론이 야당을 중심으로 확산되고 있다. 청와대는 이번 방중에 대해 우리나라가 그 어떤 때보다 큰 성과를 거둔 당당하고 실용적인 외교라고 해명하고 있으나 사대외교를 둘러싼 논쟁이 끝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이런 가운데 우리나라 노영민 주중 대사의 사사성어 외교가 도마 위에 올랐다. 한국의 노영민 베이징 주재 중국대사는 이달 5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에게 신임장을 제정하며 방명록에 “萬折必東 共創未來“'라고 썼다. 우리말로는 만절필동 공창미래이다. 직역하면 만절필동(萬折必東)은 “만 번 휘어져도 반드시 동으로 가도록 되어 있다”쯤으로 번역할 수 있다. 공창미래(共創未來)는 함께 미래를 만들어 나가자는 뜻이다.

여기서 문제가 된 대목 만절필동(萬折必東)이다. 정식으로 문제를 제기한 이는 최진석 서강대 교수다. 최진석 교수는 최근 동아일보에 “독립을 생각한다” 제목으로 한 편의 글을 게재했다. 최진석 교수는 EBS 교육방송에서 중국 사상 강의로 폭발적 인기를 끈 스타다. 지금은 서강대 건명원 원장을 맡고 있기도 하다.

최진석 교수는 이 글에서 노영민 중국대사가 시진핑 신임자 제정 자리에서 남긴 ‘만절필동(萬折必東)’이라는 고사성어를 정조준 했다. 최진석 교수는 “만절필동은 원래는 황허강의 강물이 수없이 꺾여도 결국은 동쪽으로 흐르는 것을 묘사하면서 충신의 절개를 뜻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의미가 확대되어 천자를 향한 제후들의 충성을 의미하고 있다”고 일갈했다. 최진석 교수의 논리대로라면 당당한 주권국가인 대한민국의 대사가 시진핑 주석을 만나면서 우리나라를 스스로 제후국으로 낮추었다는 것이다. 제후란 중국 중원의 주인인 천자가 세운 변방의 왕이다. 중국의 천자는 고대 하-은-주 시대이래 중국에 공로가 크거나 황족이면서도 천자기 되지 못한 아들이나 사위 등에게 변방의 땅을 일부 떼 주면서 그곳을 다스리도록 해왔다. 이들이 바로 제후이다. 제후들은 봉분을 받는 대신 천자에게는 절대충성을 받쳐야 한다. 천자가 '죽어'라고 명령하면 죽는 시늉을 넘어 실제로 죽어야 하는 것이 제후이다.

최진석 교수는 노영민 대사가 만절필동(萬折必東)이라는 글을 남긴 것에 대해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인가”라며 탄식을 했다. 최진석 교수의 글은 다음과 같이 계속 이어진다.
중국 만리장성  이미지 확대보기
중국 만리장성


“한시적인 정권은 영속적인 국권에 봉사해야 한다. 진영에 갇히면 정권만 보이고 나라는 안 보일 수도 있다. 각자의 진영에 갇혀 나라의 이익을 소홀히 하는 일이 길어질 때 항상 독립이 손상되었다”

“ 그 후과는 참혹하다. 지금 한가한 때가 아니다. 경제 이익으로 안보 이익이 흔들리면 안 된다. 안보가 ‘독립’을 지키는 마지막 보루다. 슬프고 둔감한 우리여.”

“시진핑이 미국의 대통령에게 “역사적으로 한국은 중국의 일부였다”고 말해도 우리는 그것이 얼마나 위중한 발언인지도 모르고 그냥 눈만 껌벅이며 지나가고 있지 않은가. ‘독립’이라는 최후의 명제를 의식이나 하고 있는가. 아직도 ‘독립’을 말해야 하는 슬픈 우리여“

노영민 대사는 공식 부임 전에도 중국에 진출한 한국 기업의 피해가 중국의 사드 보복 때문만은 아니라는 식으로 얘기해 논란을 일으킨 바 있다. 중국의 사드보복에 면죄부를 주는 발언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문재인 대통령은 이번 방중기간 중 북경대에서 연설을 하면서 중국을 '높은 산'에 비유해 "높은 산봉우리가 주변의 산봉우리와 어울리면서 더 높아진다"고 했다. 그 뿐 아니다 문대통령은 한국은 "작은 나라지만 책임 있는 중견 국가로서 그 꿈을 함께할 것"이라고 했다.

문재인 대통령의 작은 나라 발언과 노영민 대사의 만절필동 발언이 겹치면서 굴욕외교 사대외교 논쟁이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하태경 바른 정당 의원은 자신의 페이스 북에 이 두 사건을 연결하여 "대한민국이 중국의 종속국인 제후국이고, 문재인 대통령이 시진핑 천자를 모시는 제후라는 것"이라며 "노 대사를 경질해 흔들리는 독립국의 기강을 바로 세워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같은 논란에 대해 주중 한국 대사관은 "만절필동의 원전상 의미는 '사필귀정'"이라며 "노 영민 대사는 한·중 관계가 우여곡절을 겪어도 반드시 좋아질 것이라는 의미로 쓴 것"이라고 해명했다. 노영민 대사는 만절필동을 제후국이 아닌 사필귀정의 뜻으로 만절필동이라는 글을 남겼다는 것이다.

말이나 글은 시간이 지나면서 변한다. 문재인 대통령이 이번 방중에서 계속 언급한 역지사지도 처음에는 하 나라 우임금등을 칭송하는 말이었다. 그러다가 지금의 남의 입장에서 생각한다고 로 바뀌었다. 문재인 대통령의 역지사지를 처음의 뜻인 중국 우임금칭송으로 해석해서는 안 되듯이 만절필동 역시 이미 오래전에 사필귀정이란 뜻이 사라지고 제후국으로 바뀌었다.
중국 자금성 전경  이미지 확대보기
중국 자금성 전경


그 대표적인 증거가 경기도 가평에 있는 만동묘(萬東廟)'동묘이다. 여기서 만동은 물론 '만절필동(萬折必東)'의 줄인 말이다. 임진왜란 때 조선에 군대를 파견해준 명나라 황제 신종을 그리는 가묘이다. 군대를 보내 조선을 살려준 명나라 황제에 대한 보은으로 제후국에서 제사를 지내는 것이다. 가평의 산에는 또 '만절필동'이라고 새긴 바위가 있다. 조선의 선조임금을 직접 쓴 글을 바위에다 각인시킨 것이다.

가평에 있는 화양서원 역시 제후국 선비들이 중국 천자들을 기리는 마음으로 도를 닦는 곳이다. '화양(華陽)'은 중국 문화가 햇빛처럼 빛난다는 뜻이다.

만동이나 만동필동은 이처럼 이미 16세기말부터 제후가 천자를 사모하는 마음으로 변해 있었던 것이다.

한 개인이나 특정학자가 만절필동의 글을 중국 시진핑에게 비쳤다면 그것은 얼마든지 개인의 의견으로 치부할 수 있다 .문제가 되는 것은 대한민국이라는 국가와 국민을 대표하는 중국대사가 스스로 제후국을 자차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는 글을 남겼다는 것이다. 모르고 했다면 무식한 것이다. 알고 했다면 그야말로 나라를 필아먹은 역적이 될 수 있다.


김대호 기자 yoonsk828@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