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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품칼럼] 저녁이 있는 삶과 음식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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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품칼럼] 저녁이 있는 삶과 음식윤리

김석신 가톨릭대 명예교수
김석신 가톨릭대 명예교수
요즘 ‘저녁이 있는 삶’이란 말을 자주 듣는다. 나의 경우 이 말을 들으면 저녁 시간에 가족과 함께 하는 행복한 모습이 떠오른다. 내가 어렸을 때 장사하시던 부모님은 밤늦게 들어오셨고, 난 불안한 마음으로 부모님을 기다려야 했다. 늦은 밤 캄캄해진 마당에 빨래라도 펄럭이면 너무도 무서웠다. 부모님이 명절에도 장사하시는 바람에 명절도 즐겁지 않았다. 한마디로 우리 가족은 ‘저녁이 없는 삶’을 산 것이다. 물론 먹고 산다는 것이 호락호락한 일은 아니다. 그래도 저녁에 부모님과 함께 밥 먹으면서 하하 호호 웃는 것을 바라는 것이 지나친 욕심인가?

그런데 참 아이러니하다. 이미 수십 년이 흘렀는데도 우리가 아직 저녁이 있는 삶을 살지 못한다니. 서글픈 일이다. GDP 300달러 시대의 백열전구가 3만달러 시대의 휘황찬란한 네온사인으로 바뀌었을 뿐, 우리 삶의 내용이 별로 바뀐 것이 없다면. 우리는 출근하기 바빠 아침밥을 대충 먹거나 건너뛰기도 한다. 점심 때는 구내식당이나 직장 근처에서 쫓기듯 먹고 계속 일을 한다. 일이 밀리면 배달음식을 먹고 밤늦게까지 일하다가 지쳐서 집에 간다. 아니면 기름진 회식이나, 또 다른 알바, 혹은 미래를 위한 학원이 기다린다.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야 할까? 내일을 위해, 오늘을 희생하면서 살아왔고, 그 내일이 GDP 3만달러가 됐는데도, 삶의 질은 소득만큼 늘지 않았고, 오히려 윤리적으로 살아야 높아진다고 압박한다. 어이없어 하면서도 우린 오늘도 저녁이 있는 행복한 삶을 슬로건으로 내세우고 있다.
저녁이 있는 삶에서 결코 지울 수 없는 그림이 있다. ‘함께’ 먹는 그림이다. 예전에는 어머니가 밥을 지어 함께 먹었지만, 요즘처럼 맞벌이로 힘들 때는 부부가 함께 밥을 준비하면서 저녁 시간을 즐기면 된다. 함께 먹는 삼삼한 음식, 달고 기름지지 않아도 조촐한 행복을 주기에 충분하지 않은가. 우리가 바라는 삶의 질은 이렇게 함께 먹을 때 높아지기 시작한다. 혹여 ‘혼밥’을 하더라도 컴퓨터 앞에 앉아서 대충 먹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언제까지 먹는 것이 사는 것의 수단이 되어야 하는가? 잊지 말아야 한다. 이 한 끼를 먹기 위해 오늘 하루 일하면서 살아온 것이 아닌 것처럼, 그저 일하며 살기 위해 이 한 끼를 때우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우리가 자주 쓰는 ‘먹고 산다’는 표현에는, 먹는다는 것을 차별할 만큼 먹는다는 것과 산다는 것이 차이가 있는 것이 아니라는 의미도 들어있다.

삼시세끼 우리를 찾아오는 삶의 기쁜 시간. 그 중에서 가장 여유로운 저녁 시간. 다른 생명체의 생명이 우리 생명으로 육화되는 고귀한 시간. 함께 나누면서 먹기에 더 소중한 시간. 재배하고 키워준 이웃을 기억하는 감사의 시간. 막 살면 안 되는 것처럼 막 먹으면 안 된다는 깨달음의 시간. 이젠 저녁이 있는 삶의 설계도는 그만 그리자. 오늘같이 좋은 저녁에, 좋은 사람과 좋은 음식을 함께 먹으면서, 작은 행복을 즐기면서 살자. 다만 이 행복한 시간에 우리가 진지하게 귀 기울여야 할 외침이 있다. 그것은 좋은 삶에 좋은 윤리가 필요한 것처럼 좋은 음식에도 좋은 윤리, 즉 음식윤리가 필요하다는 외침. 음식윤리란 음식에 대한 바른 생각과 태도이고, 음식윤리를 지켜야 제대로 먹고 제대로 살 수 있다는 외침이다. 비윤리적인 살충제 달걀을 먹으면서 삶의 질을 높이기는 어렵지 않겠는가.


김석신 가톨릭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