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진수가 고소해 하며 허연 치아를 드러내 희죽이었다. 그리고 액셀러레이터를 힘껏 밟아 아직 자빠져 버둥대는 사내와 여인을 창밖으로 힐끔 곁눈질 하며 쏜살같이 달렸다.
그러나 한성민 앞에서는 늘 다소곳하고 선량한 표정이어서 일견 자기 직분에 충실한 소시민 같기만 했다.
그날 사고를 저지르고 나서는 더 그랬다.
나이트클럽 사장이 경찰에 신고해서 언론에 보도도 되었으나 조금도 개의치 않았다.
범행 장소가 외딴 지역인데다 얼굴을 보이거나 목소리조차도 내지 않았으므로 누군지 알 리가 없을 것이라 믿어서였다. 그러나 한성민 만은 눈치를 채지나 않을까 염려가 돼서 오늘은 일부러 시간을 내 그를 찾았다. 그리고 특별한 가르침까지 청해 그의 심중을 떠보았다.
“형님, 한 말씀 해주시지요.”
“무슨 말을?”
“저에게 좋은 말씀이면 뭐든 요. 그런데 형님, 오늘은 어째 누님이 안 보입니다.”
“응, 집에 볼 일이 있다며 나갔어.”
“하긴 요즘 누님이 혼수 준비 때문에 정신이 없을 겁니다.”
“혼수는 무슨.........이 사람아, 우리에겐 그런 거 아무것도 필요치 않아. 식도 서영 씨 집에서 물 한 그릇 떠놓고 하면 족하다네.”
“어이구 형님, 그럼 말씀마세요. 누님이야 형님 말씀대로 하겠지만 우리 큰아버지, 큰어머니가 어림도 없을 걸요. 하나 뿐인 딸을 어떻게 키웠는데요.”
“그래? 하지만 내가 이미 두 어른을 만나서 그럴 뜻을 전했네. 사실 나도 걱정했지만 두 분도 허락하셨고.”
“정말이오? 그 참!.......하여간 형님은 못 말리는 분이라니까!”
“혼인은 음양합덕으로 천지의 도를 실현하는 것이니 정한수 한 그릇이면 그 의미를 다하는 것이지. 그 외는 체면치레에 지나지 않네.”
“하여간 형님은 알아주어야 해요. 나 참! 원시시대에 사는 사람도 아니고.......근데 형님은 역시 대단해요. 우리 누님도 보통이 아닌데 어떻게 하셨기에 형님 말씀이면 무조건 순종하세요?.........사랑하면 다 그런 건가?”
최철민은 이쯤에서 그가 아무런 눈치도 못 채고 있음을 확신했다. 나뭇가지에 바람만 스쳐도 놓치지 않고 생각하는 사람이라 적당히 위장했다가는 여지없이 간파당할 게 뻔해서 속을 냉담하게 숨긴 덕에 이제는 안심해도 좋을 것 같았다.
아닌 게 아니라 그는 표정의 변화 없이 평소와 다름없는 낌새로 자연스럽게 말을 계속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