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보, 선생님 지금 막 도착하셨어요. 사모님은 아직 거기 계시죠?”
“아니에요. 지금 언니랑 거기 가려고 집을 막 나왔어요.”
“그럼 잠시만 거기서 기다려요. 내가 금방 갈게. 사모님을 차로 모시고 오게요.”
한성민은 별로 걱정하지 않았다. 주성수가 아내를 차에 태워오니 걱정할 필요가 없어서 그냥 대문 앞에 서서 아내를 기다기로 하였다.
주성수는 몇 차례 운전대를 급히 회전시켜 차머리를 둘렸다.
그리고 불과 10여m 쯤 되돌아가서 거의 90도 가까운 우측 골목으로 꺾어 들어갔다. 집은 골목 입구에서 좀 경사진 길을 20여m 쯤 올라가 사람의 발길이 뜸한 한적한 곳에 있었다.
그런데 주성수가 골목으로 들어서 집까지 반쯤 올라가고 있을 때였다.
우산을 쓴 한 건장한 사내가 급한 걸음으로 주성수의 차보다 빠르게 달려가며 누굴 향하는지 마구 손짓을 해댔다.
주성수는 무심코 그 사내를 서행으로 따라가다가 차창을 줄줄 흘러내리는 빗줄기를 급히 걷어내는 윈도브러시가 지나칠 때마다 얼핏얼핏 우산을 들고 나란히 선 최서영과 아내의 모습을 보았다. 그리고 그녀들의 곁을 지나 쏜살같이 달려오는 검은 승용차도 발견했다.
그런데 그 승용차를 발견하고 불과 몇 초가 지났을 때였다.
뭐라 생각할 여유조차 없었다.
달려오던 검은 승용차가 멈추지 않고 정면으로 곧장 달려왔다.
그래 화급해서 반사적으로 급브레이크를 밟았다.
그러나 순식간이었다.
정면으로 달려온 검은 승용차가 그대로 앞 범퍼를 들이박고는 급정거했다.
그와 동시에 양쪽 문이 한꺼번에 열리더니 두 명의 건장한 사내가 우산도 없이 뛰어내렸다. 그리고 뒤이어 좀 전에 차 앞을 달려가며 손짓하던 사내가 달려오더니 이제 막 정신을 차리고 차 문을 여는 주성수의 멱살을 다짜고짜 잡아챘다.
숨을 쉴 틈도 없는 날벼락이었다.
황망해서 힘 한 번 써보지 못한 채 맥없이 길바닥에 쓰러지고 말았다.
그리고 반항할 기회조차 없이 한 사내의 구둣발이 옆구리를 강타해 숨이 막혀 새우처럼 몸을 웅크려야 했다.
“이 새끼가 맞아. 죽여!”
주성수를 끌어내려 길바닥에 패대기친 사내가 소리쳤다.
그리고 구둣발을 들어 주성수의 허벅지를 내리찍었다. 그와 동시에 두 사내가 머리, 배, 다리 할 것 없이 마치 죽은 시신을 짓뭉개듯 무자비하게 짓밟아댔다.
주성수는 비명조차 내지를 수 없는 폭탄처럼 쏟아지는 발길질이었다.
“이 새끼 차에 태워! 다리 하나 잘라버리게.”
한 사내가 명령했다. 그러자 두 사내가 재빨리 주성수를 일으켜 세웠다.
“악! 성수 씨!”
그때 주성수는 저만치서 들려오는 비명소리를 어렴풋이 들었다.
혼비백산한 선희의 목소리였다.
그리고 뒤이어 성수 씨! 하고 외치는 한선희의 목소리도 들렸다.
[정경대 한국의명학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