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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도현의 글로벌 경제 투어(1)] 또 다른 나를 찾아 오늘도 길을 나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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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도현의 글로벌 경제 투어(1)] 또 다른 나를 찾아 오늘도 길을 나선다

또 다른 나를 찾아 오늘도 길을 나선다
내세울 것 없는 인생
터널 끝에서 빛을 보듯 머나먼 희망을 찾아…

길이 있고, 그 길을 떠나는 나그네는 언제나 설렌다. 발은 땅을 디디며 육체의 고단함을 넘어 물리적 건강을 얻는다면, 우리 마음은 영혼의 깨달음을 얻는다. 이것이 우리가 길을 떠나는 목적이다. 글로벌이코노믹는 한국의 설악산을 출발, 전 세계 70여 개국을 여행하며 내 안의 또 다른 나를 찾아가고 있는 데카트롱 코리아 안도현 이사의 ‘글로벌 경제 투어’를 연재한다. 절망의 순간 여행을 통해 삶의 희망을 발견한 안도현 이사는 죽기 전 최소한 미국의 그랜드캐니언을 보라고 조언한다. <편집자 주>

▲글로벌이코노믹와함께'글로벌경제투어'를떠나는데카트롱코리아안도현이사.본인의내면을찾는여행이된강원도를시작으로세계70여개국으로떠난다.이미지 확대보기
▲글로벌이코노믹와함께'글로벌경제투어'를떠나는데카트롱코리아안도현이사.본인의내면을찾는여행이된강원도를시작으로세계70여개국으로떠난다.
1995년 겨울 세수를 위한 스테인리스 대야에는 김이 모락모락 나는 따뜻한 물이 점점 빨개지고 있었다. 아지랑이처럼 빨간 피가 대야에 퍼지고 있었다. 점점 어지러워지며 피가 대야에 가득차는 모습을 보면서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다. 이제 스물 살 제대로 사랑도 못해보고, 대학에 합격하면 놀려고 3년간을 한 평도 안 되는 골방에서 오랜 시간을 보내며 어둠 속에서 팔도 제대로 펴지도 못한 채 고양이처럼 웅크리면서 지냈다. 아무 쓸모도 없고 매번 실패만 하는 어두운 인생, 앞으로는 더 이상 버틸 수가 없었다. 미안하고 창피해 누구도 만나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았다. 이대로 삶을 마감하는 것인가.

'나같은 놈은 죽어버려야 해.' 끊임없는 열등감과 패배의식은 나의 심장을 조이고, 계속되는 실패는 삶의 가치를 느끼지 못하게 했다.

'나는 키도 작고 머리도 나쁘고 싸움도 못하고 말도 못하고 게으르고 집에 돈도 없고, 경제적 여유도 없고, 잘 생기지도 않았고, 세상에 쓸모없는 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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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는 대야를 가득 차고 조금씩 어지러워지고 있다. 피부는 점점 하얗게 변하고 더 이상 버티기도 쉽지 않다. 선홍색 피를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어지럽다. 그때 갑자기 술을 마시면 죽은 마누라를 부르며 울먹이는 고시원 주인아저씨가 생각났다. 노량진에 고시원을 운영하는 김씨 할아버지에게 가끔 순대볶음을 사다주곤하면서 밀린 고시원비를 한꺼번에 내도 별다른 재촉이 없었던 할아버지와 가끔 맥주도 얻어먹는 자리를 만들기도 했는데 고시원에서 사람이라도 죽어나가면 고시원은 망할 것이 분명했다.

‘죽어도 여기 고시원에선 죽지 말자. 남에게 나같은 별 볼일 없는 몸을 치우게 하지말자.' 차라리 깔끔하게 바깥에 나가서 죽자라는 생각에 피가 가득한 대야를 화장실에 버렸다. 뜨거운 물을 받으면 더 빨리 피가 나온다기에 아직까지 김이 모락모락나면서 바닥을 온통 빨갛게 적셨다. 비릿한 냄새와 어지러움으로 대충 물로 바닥을 청소하고 고시원에서 잠에 들었다.

며칠 동안 여러 가지 시도를 했다. 한강에 뛰어들까도 생각했지만 날씨는 추웠고 한강에 빠져 죽었을 시에 뉴스데스크에 입시에 실패한 삼수생의 소식이 나올까 창피했다. 달리는 차에 뛰어들까도 생각했지만 결국 차들이 멈추고 경찰이 몰려들면서 미수에 그치고 말았다. 약을 먹기도 힘들고 죽기도 어려웠다.

고시원에서 술에 취해 있으면 라디오에서 고전 가곡이 흘러나왔다. ‘초연히 쓸고 간 깊은 계곡, 깊은 계곡 양지녘에. 비바람 긴 세월로 이름 모를. 이름 모를 비목이여.’ 비목이란 가곡을 들으며 가끔 한국전쟁동안에 죽은 이름 모를 병사의 구멍 난 철모와 강원도 산골에서 동사한 미군 등의 이미지가 떠올랐다.

갑자기 강원도 이름 모를 산꼭대기에 가서 죽게 되면 아무도 내 시신을 찾을 수 없게 되고 추운 곳에 잠만 자게 되면 자연히 죽게 되는 것이므로 죽는 것도 어렵지가 않게 된다는 생각과 이문열의 젊은 날의 초상의 소설처럼 강원도에 가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자마자 가죽 점퍼와 청바지 그리고 일기장 한 권을 들고 바로 강원도로 떠났다. 노량진에서 상봉역까지 지하철을 타고 상봉에서 철원에 가는 기차를 탔다.

▲토레스델파이네국립공원이미지 확대보기
▲토레스델파이네국립공원
돈 만원을 들고 떠난 철원행. 그뒤 한달 동안 나는 강원도와 경기도를 한 달 동안 38도선을 중심으로 철원에서 양양까지 걸었다. 눈이 많이 내리는 12월에서 1월이었고 돈 한 푼 없이 떠난 여행이었다. 그렇게 나의 첫 번째 여행은 시작되었다.

강원도를 횡단하면서 삶과 죽음을 피부로 느꼈고, 한민족 강원도 사람을 살 깊숙이 담았다. 고통과 추위, 굶주림 속에서도 나는 배부르게 채워지는 진리들을 하나씩 담았다. 결국 길은 하나다. 어떤 이는 뛰어가고, 어떤 이는 고급승용차를 타고 간다. 어떤 이는 장애인으로 태어나 기어가고 어떤 이는 빨리 가려고 다른 사람을 밀친다. 결국 길은 하나인데….

그렇게 걷고 걸어서 나는 철원을 지나 가평으로 갔고 춘천에서 공짜로 소양강을 건너 양구에 도착해 걸어서 백두산 마을을 지나 원통에 이르렀다. 한계령은 너무 걷기 힘들었다. 너무 오랜 시간동안 걸어서 무릎이 아팠다. 한계령 초입에서 한 여대생과 같이 걷게 되었고, 근처에서 휴게소를 하고 강릉에서 학교를 다니는데, 언니의 결혼식이 있어서 집에 가는 중이라고 했다.

헤어지고 한계령 입구로 가고 있는데, 멀리서 소리가 들렸다

"저기요~ 식사 하고 가세요!"

나는 아픈 다리이지만, 뛰어서 다시 불이 꺼진 그 휴게소로 갔고 나에게 잔치를 위해 만들어놓은 음식들을 싸서 주었다. 배가 채워지면 앉고 싶고, 앉으면 눕고 싶다고. 나는 그 사람들에게 재워달라고 요청을 했으나 거절당했다. 맛있는 음식을 얻은 것만 해도 고마운데, 재워주지 않는 것이 서운했다. 한계령은 길었다. 중간에 터널에서 나도 모르게 코끼리 코를 하며 빙빙 돌았다.

온통 대낮처럼 환한 세상에서 저 멀리 양쪽에 검정 구멍이 동전만 하게 보였다. 한참을 동전 방향을 향해 걷는데, 아무래도 아까 지나왔던 곳이 내가 가고 있는 것 같아, 다시 반대쪽으로 갔다. 돌아가는데 또 다시 아까 왔던 길 같고, 그 곳에서 거의 1시간을 왔다갔다 하다 보니, 속이 답답하고 미칠 것 같이 짜증이 났다. 한 곳 만을 믿고 가다보면, 내가 가는 곳이 좀 전에 왔던 곳이라는 확신이 들고 또 다시 돌아가다 보면 다시 그 곳이 왔던 곳인 것 같고.

나는 소신도 없고 결정도 못 내리고 의심도 많고 우유부단해서, 벌써 1시간을 왔다갔다 하고 있지 않은가? 일단 끝까지 가기로 했다. 일단 한 곳을 정하고 계속 가야 한다. 절대 흔들리면 안 되고, 의심하면 안 된다. 설령 그곳이 내가 맨 처음 시작한 곳이라고 할지라도, 그 곳이 시작한 곳이라는 것을 알게 되는 것만으로도 나는 시간을 벌게 된다.

결국 나는 그곳이 새로운 길임을 알게 되었으나. 따뜻했던 터널과는 달리 새벽의 산 중턱의 도로는 매섭고 추웠다. 다리도 아프고 더 이상 걸을 수가 없게 되었다.

▲토레스델파이네국립공원이미지 확대보기
▲토레스델파이네국립공원
나는 일기장을 꺼내 이곳에서 살아날 수만 있다면, 혹시 이 글이 마지막 글이라면, 누군가 이 일기장을 보게 된다면, 아무에게도 알리지 말아달라는 글을 남겼다. 글을 쓰는 도중 손이 차갑게 식어서 움직이지가 않고, 일어나 한참을 걷다가 나는 잠이 들었다.

강원도를 여행하면서 내 생명과 삶이 이 세상 무엇보다도 소중하다는 걸 느꼈다. 그런데 내 이기심과 편견 그리고 열등감이 나를 사지로 몰았으며, 나보다 더 힘들고 어렵고 고통스러운 사람들이 많고, 인생이란 모두 같은 목적지가 있으며 단지 속도나 가는 방법에 차이가 날뿐 누구에게나 그 경기는 주어져 있으며, 조급하게 마음먹거나 서두를 필요가 없이 식사 한 끼에 감사하고 편안한 잠자리를 행복해 하며, 감사하며 살아야 한다는 것도 깨달았다. 그런 진리를 깨달으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는 공자의 말처럼, 나는 끊임없는 삶의 도전을 시작해야 한다.

여행은 신철원에서 양양까지의 도보로 마무리 되었으며, 나는 그 이후 1년을 다시 입시공부를 하다가 군대에 입대하게 되었다. 그리고 전역하고 대학을 다니다가 미국 대학으로 편입을 하게 되었다.

2014년 나는 히말라야 트레킹을 떠나고 있다. 나는 현재까지 68개국을 방문했다. 대기업근무, 외국계 회사임원, 박사과정 수료, 두 아이의 아버지…. 내세울 것은 없지만 이젠 나름대로의 삶의 의미와 사소한 기쁨을 느끼며, 나를 찾기 위한 과정에 있다. 나는 지금도 세상을 향해 계속 여행을 한다.

아직까지 죽지않았으며 훨씬 긍정적인 자기애와 삶에 대한 도전과 열정으로 살아가고 있다. CNN보고에 따르면 2014년 하루에 40명씩 자살하는 한국 사회다. 청년들에게 비전이 없기 때문이다.
왜 힘든지 안다. 하지만, 죽지마라. 절대로…. 미국 그랜드캐니언에서 벤츠를 타고 절벽으로 뛰어내리기 전까지는.

여행을 통해서 나는 조금씩 나 자신을 알아가며 나를 만들어가고 있다. 쓰라리고 가슴이 답답한 그리고 피 말리는 경험들을 통해 세상의 어려움과 고민에 대해 대처하는 자신감과 인생의 소중함을 알게 되었다.
나의 경험과 생각들을 통해 누군가가 자신만의 여행을 떠나는 것을 그려본다.

/안도현 데카트롱 코리아 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