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원과 노을을 벗삼아 아메리카 대륙을 가로지르다
끝없는 대지를 달리다보니
선조들이 만주를 누비던 장면과
고구려인의 함성이 들리는 듯…
ㅇ 미국 대륙 횡단
2000년 1월 겨울 방학을 맞아 미국 친구들과 미국 남부 5개주를 자동차로 횡단한 나는 자신감을 얻었고, 이후 한국인 형으로 부터 500달러를 주고 혼다 Civic 88년산의 자동차를 구입했다. 식당에서 웨이터와 학교에서 잡일을 하며 학비와 생활비를 모으던 나에겐 여기 저기 고장이 난 수 십년이 된 자동차 역시 큰 도움이 되었다. 일본차인 혼다와 도요타에서 첫 미국 수출을 하는 차들에 대해 일본인들은 혈서를 쓰면서 혼신의 힘을 다해 차를 만들었다는 소문이 도는 수준의 높은 신뢰도가 있었다.
틈틈이 근처 캔사스, 오클라호마시티, 텍사스 주를 방문하면서 혼자서 장거리 운전에 대한 감각을 자연스럽게 익혔다.
이미지 확대보기나의 미국 본토 횡단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차가 고장이 나거나 사고가 날거라는 친구들의 충고에도 불구하고 나는 미국 본토 48개주 횡단을 떠났다.
오래된 차의 트렁크에 나는 필요한 모든 준비를 했다. 영양제, 침낭, 모기약, 물통, 기름통, 랜턴, 맥가이버 칼, 간단한 옷가지, 카메라를 넣은 플라스틱 박스와 음료수와 통조림을 넣은 아이스박스를 실었다. 고장난 문이나 흔들리는 시트는 덕테이프로 고정하고, 공구와 예비 타이어를 준비했다.
뜨거운 태양이 쏟아지는 6월의 마지막 날 나는 아칸소에서 캔사스주를 향해 출발했다. 미주리 주 국경을 통과하여 캔사스시티에 도착했고, 간단한 도시를 구경한 뒤에 로렌스(Lawrence)를 방문했다.
로렌스는 '오즈의 마법사'의 고장으로 어릴 적 방송으로 듣던 '캔사스 외딴 시골집에서'의 장소로 허수아비, 사자, 깡통의 캐릭터들이 도시 여기저기에서 여행객과 방문객을 안내하고 있었다.
캔사스를 거쳐 끊임없이 뚫린 고속도로를 따라 저녁이 되자 고속도로에서 벗어나 한적한 국도변에 차를 세웠다. 저녁이 되자 하늘에 별들이 쏟아질 듯이 세상의 절반을 덮었고, 내가 보이는 주변에는 인적도 불빛도 보이질 않았다.
차 지붕에 누워서 하늘을 바라보자 수없이 많은 유성이 눈부시도록 빛나며 흑색 공간을 채우는 별들 사이로 지나갔다. 외계인이나 ET 아니면 수많은 별자리의 이야기들이 튀어나올 것 같은 넓고 깊은 공간들이 세상을 채우고 있었다. 360도의 끊임없는 지평선을 채우는 하늘을 바라보고 누우니 세상이 온통 별들로 가득 찼다. 스티븐 스필버그와 미국인의 우주에 대한 상상력이 이해가 갔다.
끊임없이 운석들이 하늘에 스크래치를 내며 동서로 지나갔고, 나는 세상을 향해 미친듯이 소리 지르고 노래를 불렀다.
아무도 듣는 사람이 없었고, 신과 나만의 대화가 계속되었다. 따사로운 햇살이 눈꺼풀에 다가왔고, 볼이 따가워지기 시작했다. 이슬에 온 몸이 젖었다. 아침이 온 것이다.
나는 물을 받아놓은 물통에서 손에 물을 담아 세수를 했고, 양치질을 하고 다시 운전을 시작했다.
수평으로 뻗은 고속도로는 기름을 넣기 위해 차를 멈추지 않으면 한 번도 핸들을 꺾을 일이 없었다. 나는 막대기와 테이프로 핸들을 고정하고, 시트를 뒤로 제치고 엑셀을 계속 밟았다.
미국의 넓은 하이웨이에는 중앙 분리대가 없이 여유 공간이 있어서 졸음운전을 하게 되면 바퀴소리에서 큰 소리가 나고 양 차선 사이에 넓은 공간이 있어 큰 사고가 나지 않는다. 대신 일정한 속도로 계속 달려야 하지만, 크루즈장치(일정한 속도로 운행)로 달려오는 후방의 차들과 추돌 사고가 나지 않는다.
뜨거운 태양아래 뜨겁게 달궈진 자동차는 핸들을 한 번도 꺾지 않고 직진코스를 쉬지 않고 달렸다. 한참 동안 직선 코스만을 달리는 나는 라디오의 음악과 방송을 따라서 듣고, 너무 심심해서 차에 '지니(Jinny)' 라는 이름을 붙이고, 무생물인 차와 이야기를 시작했다.
"지니야? 배고프지 않냐? 난 좀 배고픈데, 그럼 다음 휴게소에서 나는 밥을 먹고, 너는 기름을 먹기 위해서 쉬지 않을래?"
마치 영화 캐스트어웨이(Cast Away)에서 톰 행크스가 배구공에 윌슨이란 이름으로 대화를 하는 것 같은 상황이었다. 그렇게 끊임없이 대화하고 라디오를 듣다보니 내가 한국말을 하는지 영어를 하는지 모르게 뇌가 영어식으로 변해버렸다.
달려도 달려도 끝이 없는 360도 일직선 지평선이 펼쳐진다. 세상에 내 주위의 모든 지평선에 집이 한 채도 없다. 저 멀리 방목되어 있는 소들이 보인다. 이곳의 방목은 소를 봄에 풀어 놓고 놓아두고 가을에 소들을 모아갈 정도로 끝이 없는 대지에 소들이 자유롭게 풀을 뜯어 먹고 있었다.
"도대체 저 소들을 주인은 누구일까?"
멀리서 회오리 토네이도가 일고 있다. 여기저기 조그만 토네이도들이 까만 선을 만들면서 하늘로 올라가고 있다.
똑같은 초원을 한참을 달려도. 수십시간을 달리다보니 시간경계선을 통과하여 다시 한 시간 전으로 돌아갔다. 마치 타임머신을 탄 것처럼 한 시간 전에 7시 저녁을 먹고, 부지런히 달리다보니 다시 7시로 돌아왔다.
태양은 서쪽으로 분명히 사라졌는데, 언덕을 넘으니 다시 해가 같은 장소에 떠있다. 붉게 물든 노을. 끝없이 펼쳐진 초원과 도로. 그리고 반시 간만에 한 번씩 보이는 집. 대륙은 끊임없이 넓었다. 끝없이 펼쳐지는 대지에서 나는 갑자기 '광야에서'라는 노래가 생각났다.
좁은 한반도에서 남북이 갈려 섬나라처럼 되어 버린 우리에게도 대륙의 기질과 광활한 만주벌판이 있는데, 안타깝게도 총구를 서로 겨누며 세계에서 가장 고립된 땅에서 서로 싸우며 살고 있는 민족이 안타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찢기는 가슴안고 살아왔던 이땅의 부르름 있다. 해뜨는 광야에서 해지는 서해까지. 뜨거운 남도에서 광활한 만주벌판…"
"우리 어찌 가난하리오, 우리 어찌 주저하리오, 다시 찾은 저 들판에서 움켜쥔 겨레의 흙이여"
눈물이 흐르고 가슴이 벅차 올랐다. 이 끝도 없는 대지를 달리다보니, 과거 선조들이 만주 벌판을 누비던 장면과 동아시아를 주름잡는 고조선인, 고구려인의 함성이 들리는 듯했다. 한국인에게도 이런 대륙을 질주하는 본능이 있음에도 우리는 남북이 갈린 섬나라가 되어 대륙을 질주하지 못한다.
ㅇ Far and Away
며칠이 흘렀다 한참을 달리다보니, 해가 지고 땅이 어두워졌다. 주위를 둘러봐도, 집도 차도 없다. 차가워진 초원의 온도는 쌀쌀해졌고, 여기저기서 늑대 울음 소리가 들린다.
'이런… 세상에 나 혼자 뿐인가? 여기서 코요테의 울음소리를 들으면서 차속에서 추위에 떨면서 초원에서 혼자별을 보면서 잠들고 싶진 않다.'
나는 불빛이 보이는 곳을 향해 차를 몰았다. '주유소와 여관들이 보인다. 앞으로 가야할 곳이 몇 만 ㎞이고 경비도 없고. 기름 값만 간단히 있으니 여관에 가거나 식당에서 밥을 먹을 순 없다. 배가 고프고 피곤하다. 하는 수 없이 오늘도 신세를 지자.'
또 한참을 달려 커다란 목장 집을 발견했다. 주위엔 그 집이 유일했다. 이 넓은 평야에 불빛은 유일했고 나는 강원도를 횡단할 때처럼 모르는 집에 차를 세우고 초인종을 눌렀다. 인기척이 없었다. 집안에서 불빛은 빛나고 있었는데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다시 한 번 초인종을 눌렀다.
대문이 열리고 한 할아버지가 총을 겨누며 나에게 소리쳤다.
"What the hell, Get Away from my home"
나는 급하게 쏘지 말라고 소리치면서, 큰 소리로 말했다.
"저는 미국 여행하는 학생인데 길을 잃어서 헤매고 있습니다. 잘 곳도 없고 기름도 없어요. 여기가 어디인지도 모르겠고 내일 일을 할 테니 도와주세요." 짧은 시간에 협상이었다. 인력이 부족한 것은 당연했으니 일을 해준다는 제안은 나쁘지 않은 제안이었다.
아무소리도 나지 않다가 컹컹거리는 개들의 소리가 들렸다. 갑자기 문이 열리고 총을 손에 쥔 할아버지는 나를 한참을 보더니 나를 방안으로 들여보냈다.
60대로 보이는 수염이 가득하고 아랫배가 두툼한 할아버지와 성경책을 품고 있는 자상해 보이는 할머니. 그리고 커다란 리트리버종 개 2마리가 나를 맞았다.
잠시 후 달콤하고 맛있는 애플 파이와 샐러드, 닭고기 스튜와 빵을 주었다. 한국에서 왔다는 나의 말에 할아버지는 내게 "한국은 아직도 전쟁 중이냐? 너는 개고기 먹느냐?" 라는 수많은 미국인들이 반복적으로 묻는 2가지 질문을 물었다.
"네, 전쟁중이지만, MASH(한국전드라마)처럼 천막에 살지 않고 개고기는 일부 먹는 사람들을 알아요" 라고 대답했다.
이미지 확대보기늦은 저녁이 되자 막내 아들이 쓰던 새하얀 침구, 가족사진과 풋볼 경기, 로데오 사진이 있는 방으로 나를 안내했다.
사망한 지 오래 되었다고는 하지만, 집기를 그대로 놓고 자식을 그리워하는 노부부의 눈빛이 흔들리는 것을 느꼈다. 나에게 아들의 방을 내어주었다.
다음날 이른 아침이 되자, 할아버지는 커다란 말과 조그만 말을 데리고 왔으며, 나에게 소들을 보러 가야 한다고 말하며 창이 매우 넓은 카우보이 모자를 건네주었다. 둔해보이던 노인이 씹는 담배를 오물거리며 멋지게 말을 타는 미국의 카우보이가 되어, 수업에서 배운 기초 말타기 수준의 나를 두고 멀리 뛰어가버렸다.
말이 뛰기 시작하면 종잡을 수가 없고 전 날 말에서 추락한 사람의 방에서 잤기 때문에 매우 조심했으나, 이 어린 말은 미친 듯이 할아버지를 따라 뛰어가기 시작했다.
영화 '파앤드에웨이(FAR AND AWAY)'에서 톰 크루즈가 땅을 차지하기 위해 달리던 그 모습처럼 나는 미국 캔사스 초원을 캬우보이처럼 소리를 지르며 말을 타며 전속력으로 달려가고 있다.
운동화를 신고, 겁에 질려 몸을 바짝 웅크리고 나는 수백 마리의 소떼들이 있는 초원으로 달려갔다. 도저히 통제할 수 없을 것 같이 자유롭게 풀어져 있는 수백 마리의 소들이 여기저기서 뜯어먹고 있었다.
할아버지는 한 참 동안 숫자를 세고 몇 마리 소들에게 다가가서 상태를 보고 여기저기를 뛰면서 숫자만 계속 세었다. 소 하고는 상관없이 말을 먹이고 나무를 정리하는 잡일이 계속되었다. 계속되는 일에 나는 더 이상 지체할 수 없어 다음날 떠나겠다고 했다.
다음 날, 나는 노부부가 주는 음료수와 샌드위치를 받으며 헤어지는 아쉬움에 뜨거운 포옹과 함께 오클라호마로 새로운 출발을 했다. 평범한 초원의 미국인은 따뜻하고 열정적인 가슴을 가진 사람이었으며, 거침없이 세상을 개척하는 열린 마음의 사람들이었고 나를 마음으로 감싸주며 따뜻함을 전해 주었다.
"Take Care Cowboy GrandPa" 그렇게 나는 계속 서부 평원을 달려 콜로라도, 뉴멕시코를 향해 가고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