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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도현의 글로벌경제투어(5)] 오렌지 빛 캘리포니아는 영화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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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도현의 글로벌경제투어(5)] 오렌지 빛 캘리포니아는 영화처럼…

나이아가라 급물살을 보며


마음속으로 소리 지르고 함성


도전 정신과 강한 미국을 배워


▲황금색이라기보다는오렌지빛으로건설된황금시대의상징,골든게이트브리지.달콤한오렌지와카우보이들의서부인캘리포니아는영화에서보던그대로였다.이미지 확대보기
▲황금색이라기보다는오렌지빛으로건설된황금시대의상징,골든게이트브리지.달콤한오렌지와카우보이들의서부인캘리포니아는영화에서보던그대로였다.
ㅇ L.A.에는 천사만 사는 것은 아니다


애리조나를 거쳐 유타를 지나 불타는 황금의 도시 라스베이거스를 지나고 에어컨이 터져버렸다. 에어컨이 없는 7월의 한여름에 데스밸리(Death Vally)를 지나 해변가로 달렸고, 너무나 피곤한 나머지 길가에서 잠이 들었다. 다음날 아침에 한 흑인을 만났다.

“당시 한국인들에 대한 분노 때문에, 너 같아도 그렇게 행동했을 것이다.”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만난 아프리칸 아메리칸(흑인)이 자신이 1992년 LA폭동에 참가했다며, 당시 한국교포들에 대한 방화와 약탈의 무법천지 상황에 대해서 말했다. 당시 한국이민자들은 흑인들을 무시했고 미국 언론은 로드니 킹 사건을 결국 한인 대상의 분노로 연결시켰다. 한인에 대한 분노는 결국 폭동으로 연결되었다.

▲로스앤젤레스는천사들만사는곳은아니다.이곳에서만난아프리칸아메리칸은1992년LA폭동에참가했다고했다.이미지 확대보기
▲로스앤젤레스는천사들만사는곳은아니다.이곳에서만난아프리칸아메리칸은1992년LA폭동에참가했다고했다.
할리우드에서 허름하게 지나가는 나에게 비싼 스포츠카를 탄 한국인이 나를 무시하는 한국말을 들을 수 있었다. 미국에서 웨이터를 하면서 동남아 출신 미국학생이 한국말을 안다면서 온갖 욕과 무시하는 말을 할 때 창피했다. LA교포들은 서로 믿지 말라고 했다. 중국 화교들이 뭉치고 유대인 출신은 미국에서 각종 사업지원과 무이자 대출을 받아 성공할 때까지 도와준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교통체증으로 힘들고 에어컨이 없어 덥고 범죄율이 높아 사람들이 어렵게 느껴지는 LA 밤거리는 어둡고 무서웠고 혹시나 길을 잃게 되면 위험할 것 같아, 나는 바로 샌프란시스코로 향했다.

ㅇ 한국전 참전 용사


신비로운 대자연의 웅장한 침엽수들이 거인들의 세계를 만드는 레드우드 국립공원, 샌프란시스코의 금문교, 달콤한 오렌지와 카우보이들의 서부인 캘리포니아는 영화에서 보던 그대로였다. 나는 호수에서 몸을 씻고 할인점에서 빵과 콜라를 사고 시애틀로 향했다.

빌게이츠의 집과 마이크로소프트 본사를 방문하고 옐로스톤을 지나 몬태나로 향했다. 갑자기 기름이 떨어져 조그만 마을에 도착했다.
인구가 45명인 조그만 마을에서 주민들은 나에게 West Korea 출신이냐고 물었다.

그리고는 ‘홍콩’이 수도인지 ‘상하이’가 수도인지를 물었다. 대부분의 미국인들은 비자도 없고 평생 자기가 사는 주를 벗어나지 못하는 미국인들도 많았고, 50개 미국 주를 다 외우지도 못했다. 그러니 조그만 나라 한국이 어디에 있는지 관심조차 없는 시골사람이 태반이었다.

대신, 나에게 미국 풋볼(미식축구)팀이나 미국의 정당구조, 스타트랙 주인공을 모른다며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자신의 관심 분야 외에는 관심이 없고 미국에서 올림픽을 하는 것도 모르던 미국인들의 자기중심적 사고를 이해하게 되었다.

기름을 파는 조그만 가게의 주인은 60대가 넘었고 자신은 한국전 참전용사라며, 배추밭을 뒤로한 자신의 젊은 미군 사진을 보여주었다. 그리고는 부대에 ‘순이’란 여자가 있었고 딸이 하나 있었는데 혼혈아를 낳았고 아버지가 부대원이란 이야기를 했다.

그리고는 한국인들은 ‘학(Hak)' 사운드를 모두 낸다며 여러 가지 표현을 하다가 한참 뒤 나는 그 표현이 바로 가래침을 뱉는 소리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LA는태평양을바라보고있어서인지,아시아사람과해변이많다.LA밤거리는어둡고무서웠다.이미지 확대보기
▲LA는태평양을바라보고있어서인지,아시아사람과해변이많다.LA밤거리는어둡고무서웠다.
길에 가래침을 뱉던 한국인, 전쟁으로 수많은 한국인들은 거지, 고아, 그리고 미군을 위한 육욕의 대상인 가난했던 한국인은 결국 월남과 독일에서 피와 땀을 팔아 그나마 나 같은 사람도 미국에 올 정도로 성장을 했다. 88서울올림픽과 한국이 개발도상국으로 빠르게 성장하는 것을 알고 있었다. 부모님 세대에 대한 감사가 생겨났다.

늙은 노병의 감상적인 한국전 무용담을 감동하며 듣고 있는데, 자꾸 나에게 샤워를 하고 자고 갈 것을 반복적으로 묻기에 나는 “혹시 당신 게이가 아닙니까?”, 하고 대답했다. 그는 바로 자신이 한국전 이후에 양성애자가 되었다고 했다.

양성애자에 대한 이해가 없는 나는 ‘이제 가야한다’며 다시 시동을 걸었다.

ㅇ 여행은 목적지보다 동행자가 중요


의무적으로 각각의 주의 경계를 지나 도시를 거치며 방문한 주를 늘려가면서 나는 결국 시카고를 방문했고, 며칠 뒤 디트로이트까지 가게 되었다.

포드를 포함한 자동차의 중심도시에는 온통 아스팔트가 깨져 있고 도시는 어두웠다. 슬럼가로 빠져든 나는 길에서 노는 흑인들을 사진촬영을 했는데, 몇 사람이 소리를 질러 갑자기 도망치다가 결국 총을 들고 뛰어오는 흑인들을 뒤로 하고 나는 초고속으로 디트로이트 슬럼가를 빠져나왔다. 자동차 여행을 시작하면서 인디안 마을에 가고, 산에서 자고, 해변에서 잠들고, 졸음 운전을 하기도 하고, 경찰에 검문검색을 수없이 당하고, 자동차가 고장 나고, 그렇게 미친 듯이 운전을 해서 결국 나이아가라에 도착하게 되었다.

극적인 자연의 경이로운 모습, 시선을 빼앗는 엄청난 폭포와 급물살을 보면서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마음속으로는 소리를 지르고 함성을 지르고 있었지만, 너무 오래 혼자 다닌 나는 누구에게도 감탄사를 공유하지 못했다. 답답하지만 말할 사람이 없었다.

수많은 인도인, 중국인, 그리고 관광객들이 친구, 가족, 연인끼리 서로 사진을 찍고 함성을 지르고 웃고 있었다. 나는 거대한 대자연의 경치를 뒤로 셀프카메라를 찍고 바로 차로 갔으며, 그 뒤로 거주지인 아칸소 주로 달렸다.

▲수많은한국계미국인들이미국을위해서일하고있다.그러나한국인들은유대인이나화교들처럼뭉치지않고서로믿지않는것같아안타까웠다.이미지 확대보기
▲수많은한국계미국인들이미국을위해서일하고있다.그러나한국인들은유대인이나화교들처럼뭉치지않고서로믿지않는것같아안타까웠다.
대자연, 경치, 국립공원과 예술작품을 만났으나 나는 혼자였고 그리고 외로웠다.

그동안 38개주를 돌았으나 나이아가라 폭포를 뒤로하고 미국방문을 접기로 했다. 집에 돌아온 나는 며칠 동안 잠만 잤으며, 아픈 무릎과 허리를 감싸며 귀에서 들리는 자동차 시동 소리에 시달렸다. 며칠 뒤 48개주를 채우자는 룸메이트의 말에, 이번에는 미국인 룸메이트와 동행해서 워싱턴 DC로의 루트로 43개주를 방문했고, 한국 귀국 직전에 5개주를 돌아 미국 본토 48개주 횡단을 마쳤다.

9‧11테러 이후 주립대학 등록금은 외국인 대상으로 몇 배가 올랐으며 현지 생활비와 등록금을 직접 벌면서 버티던 나는 결국 학점이 인정되는 인도 푸네로 떠나게 되었다.

첫 번째 여행지인 미국은 세계 경제 중심으로, 나에게 대륙횡단과 프런티어 정신, 강한 미국과 미국인의 다양성, 대자연과 용기를 갖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자살을 생각하던 입시실패 낙오자는 세상을 향해 작은 희망을 품게 되었다.
인도 뭄바이 도시에서 3시간을 가는 ‘푸네’란 도시에서 학교를 다니고, 인턴을 하고, 사업을 시작하면서 나는 관용과 이해의 아이템을 내 삶에 심게 된다.

/안도현 데카트롱 동남아 개발총괄 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