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 전시되는 ‘몽돌’ 구르는 바닷가 풍경을 담은 작품들 속에는 그가 유년시절을 거쳐 청년기를 관통하는 세월을 보낸 거제의 추억이 고스란히 담겨져 있다. 캔버스에 흙과 돌을 붙여 흙의 오묘한 색의 조화를 담은 작품들은 시적 서정을 띈다. 그가 즐겨 연주하는 기타 리듬에 탄 작품들은 ‘몽돌소리’,‘해가 잠긴 바다‘,’바다를 담은 항아리‘ 등의 시제(詩題)를 단다.
그에게 흙은 고향이며 몽돌은 음악이다. 그 촉감은 향수가 되고, 그림의 소재가 된다. 그는 몽돌해수욕장에서 느끼는 감정들을 바탕으로 노래로 만들고, 그 노래를 들으면서 작품을 만든다. 몽돌해수욕장의 물 끝과 땅이 만나는 ‘만남’은 그의 소재가 되었고, 그는 바다 끝을 바라보며 바람, 물, 파도소리를 듣고 촬영하고, 그 느낌을 공유하며 리듬감을 살려 작업을 한다.
작가는 오브제가 주는 질감의 다양성을 추구하는 흙 작업은 판재 위에 모래, 황토, 굵은 모래 등을 붇힌다. 흙의 색과 빛에 따라 풀, 신문지, 본드를 혼합해 흙 물감을, 먹물과 주묵을 배합해 흙색을 만든다. 캔버스에 칠하고 질감을 표현한 뒤 다양한 재료를 사용해 돌의 이미지를 옮겨놓는다. 그는 자연 질감으로 돌이 흙으로 흙이 돌로 되는 순환 과정을 표현한다.
에르도스한은 몽돌 하나하나가 모인 몽돌해변과 밤하늘의 별이 된 몽돌들을 바라보며, 반복되는 우리들 삶과 동일시한다. 파도에 쓸리는 몽돌소리는 작가에게는 천상의 소리로 들리며, 그는 그것을 회화로 표현한다. 물감을 사용하지 않고 흙 고유의 색을 이용한 작업은 자연이 줄 수 있는 모든 그대로의 색향미와 모습은 감동을 줄 수밖에 없다.
‘몽돌’의 수평 이미지, 수평으로 존재하던 흙과 돌(大地)이 전시 벽에 설치된다. 대지가 수직으로 놓이며 관객은 흙과 돌을 수평으로 만나게 된다. 현장에서 촬영된 ‘몽돌소리’를 담은 영상물이 거제 시절의 작가를 떠올리게 하며 추억과 조우한다. 작가는 자연과 만나는 자유로움, 장르가 조화하며 융화되는 순환, 그 아름다움으로 인간의 모습을 자연현상으로 재해석한다.
에르도스한, 지역마다 흙의 성분과 색이 다름을 착안, 흙을 섞기도 하고, 그냥 쓰기도 하고, 채로 걸러서 용해시키거나 침전시키는 등 다양한 방법으로 흙을 작품에 사용하는 서양화가이다. 많은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그가 새로이 정제시킨 작품들은 자연스러운 색감으로 우리에게 다가온다. 다양한 음계에서 연주되는 음악처럼, 그의 작품들이 어떤 모습으로 비춰질지 호기심이 인다. 그동안의 작업에 경의를 보내며, 보내온 연주만큼 ‘비움’을 극대화하길 기원한다.
장석용 객원기자(한국예술평론가협의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