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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따뜻한 독서편지(703)] 유배지에서 보낸 정약용의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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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따뜻한 독서편지(703)] 유배지에서 보낸 정약용의 편지

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받느니보다 행복하나니라.
오늘도 나는
에머랄드 빛 하늘이 훤히 내다뵈는
우체국 창문 앞에 와서 너에게 편지를 쓴다.
유치환 <편지> 中

로맨티스트 청마(靑馬) 유치환 선생은 자신이 사랑하는 이영도라는 여성에게 3년 동안 거의 매일을, 편지와 시를 써서 보냈다고 한다. 이로 인해 이영도는 어느 정도 마음의 문을 열게 되었다는데, 나는 오늘 이처럼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묘한 힘을 가진, ‘편지’라는 매체에 주목해 보고자 한다.
편지, 어찌 연인들만의 전유물이겠는가. 밀어(蜜語)뿐 아니라 부자 간, 사제 간, 교우 간에 마음을 주고받는 편지의 힘은 대단히 유효하다고 생각한다. 그리운 사람을 생각하며 옷매무새를 다듬듯 나의 마음자리를 가지런히 정돈하고, ‘슬프고, 즐겁고, 다정한 사연’들을 보내는 편지. 나는 편지 안에 담긴 그 진심어린 속살거림이 좋다. 서로 다른 공간, 다른 시간에 있는 두 사람이 지면을 통해 조우하는 설렘. 편지에는 상대를 생각하는 지극한 ‘마음’이란 것이 소복이 담겨 있다.

그런데 여기, 조선을 대표하는 대단한 한 학자의 편지가 있다. 학자이기 이전에 자식을 사랑하고 형제를 염려하는 마음은 한가지였던 한 아비의 ‘마음’이 소복하니 놓여있다. 18년이라는 기나긴 시간 동안 강진이라는 곳에 홀로 떨어져 ‘죄인’의 옷을 입은 채 숨 죽여 지내야 했던 다산 정약용. 그러한 상황에서도 일신(一身)을 돌보기보다는, 자식들을 가까이서 보살피지 못하는 안타까운 마음을 붓을 들어서나마 세심하게 표현했던 그. 그 고뇌와 그리움, 그리고 격조 높은 지성은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오롯이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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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사람은 어느 곳에 가든지 자신의 영역을 풍요롭게 만든다. 그는 비록 유배를 떠났지만 자신의 두 아들과 형제, 제자들에게 끊임없이 영향력을 발휘한다. 어떠한 상황도 그의 살뜰한 ‘마음’과, 격조 높은 ‘고뇌’를 가로막을 수는 없었던 듯하다. 냉철한 이성을 가진 학자였으나, 그의 편지에는 아버지의 따뜻한 ‘마음’이 다정하고 진솔하게 담겨있을 뿐이다. 아주 사소한 것부터도 자녀들과 함께 나누고 이야기하며 소통하는 다정한 부모가 되기를 원하는 나는, 그의 당부가 사랑의 마음이라고 생각한다. 함께 책읽기를 하자 “너무 어려워요!” “시시콜콜 잔소리가 많아요!”라고 볼멘소리를 하는 귀여운 아이들이지만, 그 지극한 마음과 당부가 느껴지기는 하나보다. 아비이자 스승인 정약용의 가르침이 울림을 주기는 하는지, 시키지 않아도 형광펜에, 포스트잇까지 총출동하여 나름의 표시들을 해 둔다. 아마도 자신에게 큰 울림을 주는 부분이리라.

그는 폐족으로서 더욱 더 잘 처신해야 하는 데 집안을 일으키는 길은 오직 독서뿐이라며 독서의 힘을 강조한다. 그렇다면 어떤 책을 읽어야 하는가가 궁금해진다. 설마 했지만 역시, 그것까지도 당부한다. 시를 쓰거나 책을 읽을 때에는 사회와 역사에 대한 관심을 배제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또한 일가친척 중 그 누구도 너희를 불쌍히 여겨 도와주는 사람이 없다고 원망하지 말라고 한다. 늘 남의 은혜를 바라는 마음을 버리고 특별한 일이 없어도 늘 공손하고 삼가는 마음으로 정성을 다하여 친척들을 대하라고 말한다. 단 도움을 줄 때는 마음속에 보답 받을 생각은 갖지 않도록 주의하라고도 당부한다. 집안에는 늘 화목한 기운이 돌도록 힘써야 하며 손님이 찾아왔을 때 기쁜 마음으로 맞이하라는 것, 술은 예로부터 나라를 망하게 하고 가정을 파탄시키는 행동의 근본이므로 폐족의 사람이 못된 술주정뱅이라는 이름까지 붙으면 안된다며 술은 절대 입에 가까이 하지 말라고 당부한다. 친구를 사귈 때에는 무릇 부모에게 효도하지 않고 형제들과 우애롭지 못한 사람은 절대 가까이해서는 안된다고 말한다. 왜냐하면 처음에는 잘 대하다가도 나중에는 은혜를 배반하고 의리를 저버리며 매몰차게 돌아설 사람이기 때문이란다. 가장 좋은 신하는 어떠한 모습이며 벼슬을 할 때는 어떤 자세로 임해야 하는지도 짚어준다. 재물을 오래 지키는 법, 비록 부귀를 누리는 사람이나 선비일지라도, 집안을 다스리고 자신을 벼리기 위해 ‘근검’한 생활을 해야 함을 말하기도 한다. 무릇 한가지 하고 싶은 꿈이 있다면 그 목표가 되는 사람을 정해 용기를 갖고 노력하라는 것, 아량을 베풀고 용서해야 하는 이유, 노는 사람이 없이 모두 일하게 하라는 것, 더불어 제자들에게는 각자의 상황과 특성에 맞는 당부의 말을 깊은 통찰을 바탕으로 짧고 간결하게 전달한다.

정약용은 18년 동안 강진에서 유배생활을 하면서도 자신의 영향력을 펼쳐 나간다. 세상을 한탄하며 음습한 우울감에 빠져 있을 수도 있을 상황에서 그는 건강한 사고와 애정 어린 말들로 여전히 자신의 세계를 확장한다. 참으로 세심하고 자상한 그의 교육관이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지금까지도 칭송받는 근본적인 이유는 ‘사랑’을 밑바탕으로 한 격조 높은 ‘고뇌’가 담겨 있기 때문 아닐까.
‘사람들과 함께 있을 때는 온전한 내가 될 수 없다. 왜냐하면 다른 사람을 의식하게 되어 자신의 개성과 성격을 전부 상대방에 맞추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신의 중심을 되찾는 것'이 필요하고, 이러한 기회는 아이러니하게도 혼자 있는 시간에 온다.’

최근 사람들의 주목을 받고 있는 책 사이토 다카시의 ‘혼자 있는 시간의 힘’에 실린 한 부분이다. 유배지라는 외롭고 고달픈 환경을 오히려 ‘자신의 중심을 되찾는’ 시간으로 여기고 자녀와 형제, 제자들에게 삶을 노래하는 행복한 편지를 건넨 인간 정약용. 가르침도 가르침이지만, 이 책은 인간 정약용의 진실한 면모를 마주하게 하여 더욱 매력적이다.

얼마 전 군대에 간 제자에게 편지 한 통을 받았다. 고달픈 군 생활 속에서 교사인 나를 생각해 주었다는 사실만으로도 대단한 감격인데, 그 내용이 참으로 진실했다. 내가 마주한 그의 삶에 어떤 사연으로 ‘마음’을 실어 보내야 할까? 정약용이 그러했듯 나도 그저 진솔한 나의 마음과 애정을 담아 보려 한다. 약간의 당부와 잔소리도 담아서. 총총.
한소진 (사)전국독서새물결모임 아침독서편지 연구위원(덕신고등학교 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