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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한권의 여유]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있다 ‘다시, 초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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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한권의 여유]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있다 ‘다시, 초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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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초격차/ 권오현/ 쌤앤파커스
“창업은 쉽고, 수성은 어렵다.”

당나라의 황제 당태종이 남긴 이 짧은 문장은, 오랜 기간 강자의 위치를 지켜내기가 얼마나 지난한지를 역설한다. 수나라를 몰아내고 등장한 당나라도 건국 초기엔 천년 제국을 꿈꾸었지만 채 300년을 못 채우고 송나라에 의해 망하고 말았다. 송나라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역시 300년가량 지나 원나라에 무너졌다.

오늘날의 기업 또한 마찬가지다. 세계 산업사를 보면 압도적인 시장 지배력을 자랑하는 기업이 계속 나타났지만 어김없이 후발 주자에게 추월당하고 쇠락하는 운명을 맞고 말았다. 필름 시장의 절대 강자였던 코닥은 1990년대 초까지만 해도 세계 시장 점유율이 70%를 넘었지만, 2000년대 들어 디지털 전환에 뒤처지며 결국 파산 보호를 신청하는 굴욕을 맛보아야 했다. 20세기 초반까지 휴대전화 시장을 지배하던 노키아 역시 2007년 40%에 이르던 점유율이 스마트폰 전환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며 급격히 무너져갔다.

삼성전자 전 부회장 권오현은 바로 이 점에 주목했다. 왜 초격차를 확보한 수위 기업이 초격차를 계속 유지하지 못하고 힘을 잃고 말았는가 하는 질문에 신간 ‘다시, 초격차’에서 답한다. 전작 ‘초격차’가 어떻게 하면 초격차를 이뤄내고 경쟁자를 따돌릴 수 있는지 논한다면, 이번에는 ‘왜 초격차 기업이 따라잡히는가’를 집요하게 파고든다. 격차가 사라지는 메커니즘에 대한 기록에 가깝다.
앞서 언급한 기업 사례들은 일반적으로 외부 변화에 대한 대응 실패로 설명되지만, 이 책에서는 시선을 조금 다르게 둔다. 변화 자체보다 변화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내부 상태에 주목한다. 그리고 그 핵심에 일종의 관성이 있다고 본다. 성공은 기준을 높이기보다 오히려 기준을 고정시키는 방향으로 작동한다. 이미 잘 작동하는 방식이 있기 때문에 그것을 굳이 의심할 이유가 사라지기 때문이다.

실제 수치로 보면 이는 더욱 잘 이해된다. 반도체 산업에서 미세공정 경쟁은 나노미터(nm) 단위로 이루어지는데, 공정이 한 세대 진화할 때마다 성능은 약 15~20% 개선되고, 전력 효율은 30% 이상 좋아진다. 이 격차는 한 번 뒤처지면 단기간에 따라잡기 어렵다. 반대로 말하면, 단 한 번의 판단 지연이 수년의 격차로 이어질 수 있다는 뜻이다. 권오현이 강조하는 것도 바로 이 지점이다. 격차는 극적인 실패가 아니라 미세한 판단의 누적에서 벌어진다.

그래서 그는 리더의 역할을 ‘방향 제시’보다 ‘긴장 유지’로 정의한다. 흥미로운 점은, 이 긴장이 감정이 아니라 시스템으로 관리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예컨대 삼성전자는 주요 공정에서 수율(yield)이 1%만 떨어져도 수천억 원 규모의 손실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에, 생산 라인에서는 실시간으로 데이터를 점검하고 이상치를 즉각 수정하는 체계를 갖추고 있다. 긴장은 구호가 아니라 숫자로 측정되고 관리된다.

이 논리는 자연스럽게 개인의 문제로 확장된다. 일 잘하는 사람과 그러지 못하는 사람의 차이는 종종 속도나 재능보다 어디까지 밀어붙이느냐 하는 근성에서 결정된다. 같은 보고서를 작성하더라도 한 사람은 오탈자와 논리 구조를 한 번 점검하는 수준에서 멈추고, 다른 한 사람은 데이터의 출처, 숫자의 맥락, 독자의 이해까지 고려해 세 번 이상 구조를 다시 짠다. 시간 차이는 크지 않지만 결과물의 설득력은 전혀 다른 수준이 된다. 이 차이가 반복되면, 몇 달 후에는 ‘일 잘하는 사람’이라는 평판 자체가 갈린다.

문제는 이 기준이 눈에 잘 보이지 않는다는 데 있다. 우리는 새로운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같은 기준 위에서 반복하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변화는 내용이 아니라 기준에서 발생하는데, 기준을 바꾸는 일은 언제나 가장 늦게 이루어진다.
결국 ‘다시, 초격차’가 말하는 ‘다시’는 기술이나 전략의 업데이트를 의미하지 않는다. 익숙해진 기준을 해체하고, 그것을 다시 설정하는 과정에 가깝다. 격차는 한 번 만들어놓고 유지하는 자산이 아니라 매일 다시 갱신해야 하는 상태에 가깝다. 하늘을 나는 새가 계속 떠있을 수 있는 것은 매순간 기류에 맞춰 날개를 끊임없이 미세 조정하기 때문이다. 이걸 중단하는 순간 추락은 피할 수 없는 숙명이 된다. 날개가 달려 있더라도.

양준영 교보문고 eBook사업팀 과장



조용철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yccho@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