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적으로 ‘기후악당’으로 비난받아 오고 있는 한국이 탄소중립기본법의 제정으로 유럽연합, 일본 등에 이어 세계에서 14번째로 탄소중립을 법제화한 국가가 됐다. 이 법의 제정은 늦은 감이 있지만, 기후 위기에 대응하는 의미있는 제도적 진전이라고 생각된다. EU 등 선진 제국들은 이미 1990년부터 저탄소 그리고 탄소중립 정책을 일관되고 실효적으로 추진해오고 있으나, 그동안 한국의 저탄소 정책은 사실 유명무실했고 성과도 미비했다. 한국의 순 탄소배출량은 지속적으로 매년 증가해오고 있다. 2020년에 탄소 배출량이 많이 감소했다고 그 성과를 선전할 수도 있지만, 이는 코로나19 팬데믹에 의한 소비 및 생산 활동의 위축으로 인한 측면이 강하다. 탄소중립을 위한 첫 걸음은 우리나라의 탄소 배출 상황에 대한 정확한 인식에서 시작된다.
2020년 12월에 발간된 RE100 2020년 연차보고서에는 261개 기업의 데이터들(기준년도 2019년)이 있다. 이들 기업의 재생에너지 100% 달성 평균 연도는 2028년이며, 전체 기업의 4분의 3이 2030년에는 100%에 도달하는 계획을 가지고 있다. 2019년 현재, 53개 기업은 이미 100%에 도달했고, 65개 기업은 90%에 도달했다. 261개 기업의 국적은 총 23개국이다. 미국 기업이 78개(29.8%), 영국 기업이 42개(16.0%), 일본 기업이 39개(14.9%) 순이며, 독일, 프랑스 기업이 각각 10개이며, 중국과 대만 기업이 각각 5개이다. 한국 기업은 없다. 이 연차보고서에서 찾아본 한국 기업들에게 주는 시사점을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둘째, 눈치보지 말고 2050 탄소중립에 정면 대응해야 한다. 일본은 2019년 기준 39개 기업이 RE100에 가입했다. 예상외로 많다. 이중에 26개 기업이 100% 달성 연도를 2050년으로 하고 있다. RE100 총 261개 기업의 100% 달성 목표 평균 연도인 2028년보다 휠씬 기간이 길다. 또한, 21개 기업이 2019년 기준 달성률 0~3% 수준으로, 아직은 이행계획을 본격적으로 시작하지 않았다고 봐야 한다. 즉, 우선 가입해 놓은 수준의 기업들이 많다는 점이다. 우리 대기업들 대부분이 매년 탄소배출량이 늘어나는 고탄소 기업이다. ‘시작이 반’이라고 시작하는 것이 중요한 것 같다. 다행히도, 최근에 SK그룹의 8개 기업이 2020년에 가입하였으며, 삼성, 현대차, LG 그룹이 현재 RE100 가입을 추진하고 있다. 가입하는 것이 중요하고, 더 중요한 것은 진정성이다.
셋째, 국내 글로벌 대기업의 탄소 감축 경쟁 기반을 강화하기 위하여, 정부차원에서 재생에너지 생산과 거래 시장의 실효적 성장 정책을 확고하게 추진해야 한다. 그리고 RE100 동종 기업간 경쟁 기업들의 현재 상황과 이행 계획을 분석할 필요가 있다. 현대자동차의 경쟁사인 BMW AG는 100% 달성 목표연도가 2050년인데, 2015년 42% 달성하고 점진적으로 확대하여 2019년 72%를 달성했다. 삼성전자 반도체 부문의 경쟁사인 대만의 TSMC는 2030년까지 25%, 2050년에 100% 달성 이행계획을 가지고 있으며, 2019년에 7% 달성했다. IT 기업인 애플은 2015년에 93%, 2019년에 100% 달성했고, 마이크로소프트는 2014년에 이미 100% 달성했다. 2020년 현재, 국내 재생에너지 비중은 5%대 수준으로 절대적으로 부족하고, 가격도 상대적으로 높은 실정이다.
ESG에서 가장 중요한 핵심 지표는 탄소배출량이다. 그만큼 탄소감축이 절대적으로 중요하다. 고탄소, 저탄소, 탄소중립으로 이어지는 진전형 로드맵에서 우리 기업들은 고탄소에서 바로 탄소중립으로 직행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2010년부터 10년간 밟고 가야할 저탄소의 길을 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2050 탄소중립의 거대한 파고 앞에서 직진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 안타깝지만, 그 길이 왕도라고 여겨진다.
이영한 지속가능과학회장(서울과학기술대학교 건축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