닫기

글로벌이코노믹

與 ‘퇴직연금 기금화’ 추진가속… 주사업자 은행권은 셈법 복잡

글로벌이코노믹

與 ‘퇴직연금 기금화’ 추진가속… 주사업자 은행권은 셈법 복잡

'계약형+기금형' 시장개편 구상
은행, 기금형 퇴직연금 운용 사실상 불가해
운용 수수료 못 받고 조직개편 불가피
퇴직연금 시장서 역할 축소될까 우려
경기 하남종합운동장 제2체육관에서 열린 2025 하남시 일자리박람회에서 고령 구직자가 이력서를 작성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이미지 확대보기
경기 하남종합운동장 제2체육관에서 열린 2025 하남시 일자리박람회에서 고령 구직자가 이력서를 작성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고용노동부가 '기금형 퇴직연금'을 추진하면서 퇴직연금 시장에서 금융사 역할 축소가 우려되고 있다. 현행 퇴직연금은 가입자들이 은행, 보험사, 증권사 등이 주사업자를 선택한다. 하지만 기금형 퇴직연금은 정부 주도하에 별도의 운용사가 하위 운용을 위탁받아 기존 금융사 역할이 줄어들 수 밖에 없다.

그나마 자금운용 노하우가 있는 증권사와 달리 은행은 사실상 운용 기능을 수행할 수 없어, 계약형 퇴직연금 수준의 수수료 수취가 어려워질 수 있다.

26일 금융권과 정치권에 따르면 노동부는 최근 퇴직연금을 전문적으로 운영하는 공단의 신설안을 국정위에 올렸다. 공단 설립은 아직 확정된 것은 아니지만, 더불어민주당이 지금까지 국회에 제출한 퇴직연금 기금화를 위한 입법안을 살펴보면 국민연금 등 특정 회사가 퇴직연금을 운용할 수 있게 해달라는 논조는 동일하다.
퇴직연금 사업 주체는 은행, 보험사 등 금융업계와 증권사 등 금융투자업계 등이 지금껏 맡아왔다. 다만 이들 회사의 퇴직연금 운용 수익률이 타 연금 수익률 대비 현저하게 낮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되면서 별도의 전문가 조직이 퇴직연금을 운용하는 방안이 정부 차원에서 고려되는 것이다.

금융감독원 공시에 따르면 5대 은행(KB·신한·하나·우리·NH농협)의 지난해 퇴직연금 확정기여(DC)형(원리금 보장)의 운용 성과는 각각 3.45%, 3.30%, 3.34%, 3.49%, 3.25% 등으로, 같은 기간 15%의 투자 수익률을 올린 국민연금과 크게 비교된다. 퇴직연금 DC형은 적립된 기금의 운용 성과에 따라 연금 수령액이 달라지는 형태로, 가입자가 선택한 운용사의 운용 능력이 큰 영향을 미친다.

기금형 퇴직연금의 탄생 및 도입 시 현 사업자 가운데 은행에 타격이 클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증권사의 경우 일반사모운용 라이센스를 보유할 시 기금형 퇴직연금의 운용 주체로 참여할 수 있을 전망이지만, 은행은 직접 운용하기 어려운 구조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기존에 굴리던 퇴직연금 수탁금을 별도의 전문가 조직에 넘긴 뒤 일정한 절차를 거쳐 수탁하는 입장으로 전락하게 된다.

윤선중 동국대 경영학과 교수는 “기금형 퇴직연금이 어떻게 도입되느냐에 따라 다르겠지만 하위 운용은 운용사에 위탁될 것”이라면서 “은행은 운용을 위한 금융사가 아니다. 신탁라이센스 획득을 통해 운용 지위를 가지는 경우가 있긴 하지만 매우 드물다”고 말했다.

이렇게 되면 은행이 퇴직연금으로부터 발생시키는 수익성이 떨어질 수 있다. 은행은 퇴직연금 사업을 통해 운용 및 자산관리(보관) 등 두 가지의 수수료를 받는데, 기금화 퇴직연금의 경우 직접 운용이 어려워지므로 운용에 대한 수수료는 수취하지 못하게 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수탁기관 업무 수행을 위한 행 내 조직 개편도 불가피할 전망이다. 공적 기금인 고용보험기금과 주택도시기금의 전담 운용 경험으로 외부위탁운용관리자(OCIO) 조직이 강화돼있는 증권사와 비교해 은행의 여건은 부족하다. 이런 가운데 각 가입자의 계좌 개설을 돕고 납입 자금을 수탁하는 데 주력하는 역할로 전환해야 하므로 관련 재원과 시간의 소요가 불가피하다.

이 같은 걸림돌에 기금형 퇴직연금을 바라보는 은행의 시선은 달갑지 않다. 한 은행 관계자는 “기존 퇴직연금 제도의 수익률 문제를 타개하고자 ‘퇴직연금 디폴트 옵션’이 만들어져 시장에 판매되고 있는데, ‘운용 위탁’이라는 비슷한 성격의 새로운 매커니즘이 나온다 해서 어느 정도 영향이 있을지 의구심이 든다”고 말했다.


이민지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mj@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