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 종로구 다보성갤러리는 광복 72주년을 맞이해 14일 개막한 특별전에서 평상복 차림의 '전(傳) 명성황후 초상'을 공개했다.
이 초상화는 세로 66.5㎝, 가로 48.5㎝의 크기이며 두건을 쓰고 하얀 옷을 입은 여성이 손을 가지런히 모은 채 서양식 의자에 앉아 있는 모습을 묘사했다.
족자 뒷면에는 '부인초상'(婦人肖像)이라는 글자가 세로로 적혀 있으며 이에 다보성갤러리 측은 적외선 촬영 결과 '부인' 글자 위에 '민씨'(閔氏)라는 글씨가 있었으나 나중에 훼손된 것으로 확인했다고 밝혔다.
한편 네이버 지식백과에 따르면 명성황후를 시해한 일본 낭인들조차도 그녀를 동양의 호걸, 여장부로 평가했다. 지나치게 총명하고 정치에 적극적이었기에, 또 보기에 따라서는 시대를 앞선 매우 현대적인 자존감을 가진 여인이었기에 명성황후는 정적들의 표적이 되었고 신변은 늘 불안했다고 기술하고 있다.
그리고 마침내 1894년 동학농민전쟁, 청일전쟁을 거쳐가며 조선정치에 깊이 개입하고 들어온 일본을 외교적으로 러시아를 동원해 조선에서 축출하고자 했던 명성황후의 계획을 무너뜨리기 위해 일본은 후안무치한 음모를 세우기에 이르렀다고 지식백과는 밝히고 있다.
그것은 일명 ‘여우사냥’으로 불린 명성황후의 시해시도였다.
특히 일본은 자신들이 조선의 국권을 침탈하는 데 가장 방해요소로 왕비였던 명성황후를 지목하고 제거하고자 했다.
최수영 기자 nvi203@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