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은 1945년 광복 후 미군들의 손상된 미군 군화를 구매하여 국군 군화 및 다양한 구두로 재탄생시켜 판매하였다.
산업화 시기는 염천교 수제화 거리의 전성기 시절로 불리며, 당시 이곳은 대한민국 내 구두 시장의 대부분을 차지하였다.
최고, 최대의 도매 상권이었으며 주변에 많은 양화점도 같이 발달하였다. 당시 구두는 빠듯한 살림에도 멋쟁이라면 꼭 한켤레는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일종의 필수품이었다.
1974년 당시 한국의 자장면 한 그릇의 가격은 50원인데 비해 남화는 14,000원, 여화는 9,000원 정도로 매우 비싼 편이었다.
온기동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16990@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