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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퇴임하면 공공기관장도 일괄 사퇴' 여당 추진 개정안, '현대판 순장(殉葬)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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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퇴임하면 공공기관장도 일괄 사퇴' 여당 추진 개정안, '현대판 순장(殉葬)제'?

민주당 이원욱 의원, 공공기관운영법 개정안 발의 "임기 만료 일치로 잔여임기·자진사퇴 논란 차단 취지"
국정책임 공동체 공유 강조에 학계 "공기업도 기업, 공공성 치중 경영원칙 무시 비상식적 발상" 비판

10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전체회의가 열리고 있다. 사진=뉴시스 공동취재사진 이미지 확대보기
10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전체회의가 열리고 있다. 사진=뉴시스 공동취재사진
대통령 임기(5년)와 모든 공공기관장의 임기를 일치시켜 새 정부 출범과 동시에 공공기관장을 새롭게 일괄 선임함으로써 정부와 공공기관장의 정치와 경영 책임을 공유하도록 하자는 내용의 법안이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에서 발의돼 논란이 예상된다.

11일 더불어민주당과 국회에 따르면,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이원욱 의원이 지난 4일 '공공기관의 운영에 관한 법률(공운법)' 개정안을 대표발의했다.
공운법 개정안 발의에는 이 의원을 포함해 같은당 9명과 열린민주당 1명, 무소속 1명이 함께 참여했다. 개정안은 다음날인 5일 소관위원회인 기획재정위원회에 회부됐다.

개정안의 주요 내용은 제28조(임기)에 '공기업·준정부기관의 장은 임명 당시 대통령의 임기가 종료되는 경우 그 임기가 만료된 것으로 본다'는 문구를 새로 담고 있다.

즉, 대통령 선출 뒤 새 정부 출범에 앞서 기존 기관장의 임기를 일괄 만료시킴으로써 새 정부 출범에 따른 기존 기관장의 잔여임기 논란이나 자진사퇴 문제를 방지하고, 공공기관이 정권과 정치적 책임을 공유하는 공공정책을 수행하도록 하자는 취지이다.

이 의원실 관계자는 "공공기관장의 임기는 일괄해 3년이라 대통령 임기 5년과 불일치해 전임 대통령이 임명한 기관장이 새롭게 선출된 대통령의 국정철학을 이행해야 하는 경우가 발생한다"며 개정안 제안 배경을 설명했다.

그러나, 공운법 개정안을 두고 학계 일부와 공기업쪽에선 '기업의 경영 원칙을 간과한 비상식적 발상'이라는 비판이 일고 있다.

이 의원실에 따르면, 공운법 개정안이 통과되면 개정안 부칙에 따라 오는 2022년 5월 9일부터 시행에 들어간다.
개정 공운법을 적용하면 2019년 6월 이후 임명된 공공기관장은 임기 3년을 채우지 못하고 일괄 사퇴해야 한다. 2019년 4월 이전에 기관장이 취임한 공공기관은 임기를 마친 기관장이 당분간 직무를 연장수행하거나 재신임되지 않을 경우엔 장기간 CEO 부재 상태로 이어질 수 있고, 단기 임기의 기관장을 물색해야 하는 사태가 예상된다.

더욱이 이 법안은 한국전력 등 상장 공기업을 포함한 36개 시장형·준시장형 공기업과 준정부기관 모두를 적용대상으로 한다.

이같은 일괄 적용에 공기업도 기업이라는 점에서 기업의 자율경영과 책임경영 원칙을 도외시한 발상이라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공기업의 '기업' 측면보다 '공공성'을 강조하는 현 정부와 여당의 성향은 지난 2018년 개정된 공공기관 경영평가 지표에서도 드러났다.

개정된 공기업 평가지표(경영관리)에서 가장 큰 배점을 차지하는 항목은 총 55점 중 24점을 차지하는 '사회적 가치 구현'이고, 세부항목으로는 '일자리 창출'(7점)이 가장 높다.

나머지 31점은 ▲경영전략과 리더십(6점) ▲업무효율(5점) ▲조직·인사·재무관리(7점) ▲보수와 복지후생 관리(8점) ▲혁신과 소통(5점) 등이다. '효율성'보다 '공공성'을 강조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문제는 공기업의 '공공성'을 강조한 나머지 '기업'의 성격을 간과할뿐 아니라, 에너지·철도·공항·토지 등 각 분야의 특성도 거의 고려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에너지업계에 따르면, 에너지산업은 제조업 등 다른 산업의 생산성을 위한 기반산업으로, 에너지 생산에 일자리를 늘리는 것은 해당 기업에 인건비 증가와 연료비 상승을 의미한다.

그럼에도 한국전력·한국가스공사 등 에너지 공기업을 포함한 모든 공기업의 평가지표는 ‘일자리 창출’ 배점이 7점으로 가장 높다.

공공기관 경영평가에 수년간 참여했던 허희영 한국항공대 교수(경영학부)는 "공기업은 소유(국민)와 경영(CEO)이 분리된 대표기업"이라며 "소유와 경영이 분리된 기업에서 가장 빈번하게 발생하는 문제는 주인과 대리인 간 정보 불균형과 감시 불완전성에 따른 대리인의 도덕적 해이와 방만경영"이라고 지적했다.

허 교수는 "그동안 공공기관 경영평가제도는 공기업의 방만경영을 막기 위해 '효율성'을 특별히 강조해 왔고, 지난 35년 간 순기능으로 작용해 왔다"고 평가한 뒤 "공기업의 '기업' 성격을 간과하는 정부와 여당의 발상은 결국 공기업의 주인인 국민에게 피해를 줄 것"이라고 비판했다.


김철훈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kch0054@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