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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리뷰] 정은주 안무의 '물에 그림자'…시대의 우울 털어내는 희망의 몸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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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리뷰] 정은주 안무의 '물에 그림자'…시대의 우울 털어내는 희망의 몸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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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은주 안무의 '물에 그림자'
10월 30일(토) 저녁 5시 인왕산 자락의 광화문아트홀에서 정은주(헤케이브 소은 컴퍼니 대표) 안무의 <물에 그림자>가 공연되었다. 정은주 현대무용단 헤케이브 소은 컴퍼니 주최, 한국문화예술위원회·전문무용수지원센터가 후원한 「물에 그림자」는 일상을 그림자와 물의 관계로 설정하고, 코로나로 인해 주춤했던 시대의 우울을 털고 희망으로 나아가자는 현실 극복 의지를 보여 준다. 생동감 넘치는 움직임이 제약적 갈증을 해소하는 희망의 메시지로 다가온다.

시적 제목 「물에 그림자」(Shadow In The Water)는 물의 그림자가 아니며, 장소적 전치사이거나 조사격 형용사로 쓰임으로써 시대의 하수상을 은유한다. 여인은 음유의 시인이 되어 우울을 낭만으로 환치하여 춤을 춘다. 클래식 기타와 타악이 들어서고, 조명이 꺼지고 켜지면서 영상적 기법이 도입된다. 여인(정은주)의 독무에서 삼인무, 오인무로 진법을 바꾸면서 완급을 조절해나가는 정형에서 연기적 기교, 조명과 음악 운용을 살피는 재미가 쏠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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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은주 안무의 '물에 그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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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은주 안무의 '물에 그림자'

「물에 그림자」는 프롤로그와 에필로그를 포함 4장으로 구성된다. 옴니버스 형식으로 구성된 네 개의 단편은 중심 주제와 맥락을 같이한다. 각 장의 줄거리는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현실의 반영이다. 프롤로그와 에필로그의 리본은 억압과 희망이라는 대조되는 상징으로서 물의 순수성과 춤을 연결한다. 조명은 갇히거나 벗어날 수 없게 억압된 공간을 설정하고, 물결을 상징한다. 또한 물 위에 서 있거나, 물 위에 놓인 바위 같은 형태가 추상적으로 표현된다.
프롤로그; 코로나는 모든 것을 통제하고 삶을 묶어버렸다. 여인은 제약된 규제를 벗어나 소중했던 일상을 되찾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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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장; ‘달그림자’, 변해버린 일상, 검게 가려진 그림자. 표정은 마스크 속으로 사라지고, 사람들은 혼돈의 시기 속 정처 없이 방황한다. 거리두기의 시간과 홀로 남겨진 자아와 마주하는 시간이 늘어나는 새로운 환경을 마주한다. 코로나는 인간의 삶을 그늘지게 하는 그림자이다.

빠른 동작과 음악이 이것을 벗어나고 싶은 마음을 나타낸다. 말총의 가지런한 머리칼의 여인들도 느린 걸음으로 초점을 상실한 듯한 모습이다. 이를 뒷받침하는 기하학적 조형이 심리적 불안감을 묘사한다. 다섯 여인은 등을 보인 자세를 보이면서 시대적 상황에 대한 의미를 심고, 눕고, 구르고, 꿇어앉고 하지만 결국 지쳐 쓰러진다.

2장; ‘별그림자’, 무음으로 시작된다. 사라진 빛에 드리워진 어둠의 시작. 강렬하게 쏘아 내린 장벽이 시야를 방해한다. 길게 세 개의 천이 내려오고 그 가운데 여인이 등장하고 두 여인이 교차하여 걷고 있다. 상의 재킷을 걸친 상태이다. 제약을 뚫고 나오려 발버둥 쳐 보지만, 애를 쓰면 쓸수록 더욱 장벽은 견고해지는 듯하다. 깊숙이 침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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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은주 안무의 '물에 그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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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는 익숙한 것과의 결별, 낯선 것들과의 동참을 만들었다. 피아노 건반 하나씩 꼽히면서 움츠렸던 삶을 활기차게 펼쳐내기 위한 삶의 투쟁이 시작되고, 물그림자에 우리 삶을 투영하며 회복을 꿈꾼다. 천은 장벽을 상징하고, 천을 잡고 다양한 춤이 이루어진다. 코로나 상황을

벗어나고 싶은 갈망(투쟁)으로 시각적 비주얼은 고조되고, 춤은 격렬해진다. 차분한 음악이 점차 강한 음악으로 바뀐다.

3장; ‘빛과 그림자’, 그래도 정신적 윤기를 지향하는 삶은 계속된다. 커다란 장벽을 허물고 영광의 상처가 된 천은 목과 가슴, 허리에 매어져 있다. 이겨낸 자가 전사가 되고, 살아남은 자가 역사를 기록한다. ‘우리’라는 단어보다 ‘나’라는 존재가 익숙해진 시간의 파노라마. 따로 또 같이, 각자에게 일어나는 변화가 공통적이면서도 개인적이다.

각자의 시간을 살아가는 이들의 같은 공간에서의 ‘동상이몽’이 묘사된다. 코로나를 벗어난 것 같지만 여전히 코로나의 그림자 아래 있다. 여인들이 안정과 자신감을 가질수록 실내악은 부드러워지는 느낌이다. 결론으로 가는 길목에서 다양한 묘사가 에너지가 절정으로 치솟는다. 존재와 대면의 소중함을 깨닫게 해준 시간, 춤은 세상을 이겨내는 경전이자 사랑을 부르는 장신구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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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은주 안무의 '물에 그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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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장; ‘우리들의 그림자’, 빛과 그림자는 동전의 양면처럼 공존한다. 태양의 따스함을 느낄 수 있는 것은 밤의 고요와 어둠이 있기에 가능하다. 해뜨기 전이 하루 가운데 가장 어둡다. 어둠은 밝음을 위한 전주곡이라는 희망의 메시지가 담긴다. 사각형의 천은 리본의 확장 개념이며 천을 들고 벌이는 춤도 흥미를 자아낸다. 천은 스카프가 되기도 한다.

여인들은 천을 머리에 두르고 쓰러진다. 절망적 현실의 반영이다. 코로나의 소멸을 갈구하는 허밍과 일상의 행복을 꿈꾸는 왈츠 음악이 들려온다. 여인들은 오로라 빛을 받으며 일어선다. 여인들은 천을 잡고 희망의 춤을 춘다. 에필로그; 평범한 일상에 춤이라는 물수제비가 일렁이면 언제나처럼 설렘이 시작되고, 여인은 리본을 휘두르며 다시 자유롭게 춤출 그 날을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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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은주 안무의 '물에 그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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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은주 안무의 '물에 그림자'

정은주 안무의 「물에 그림자」는 이 시대의 팬데믹 현상을 ‘물과 그림자’의 상관관계를 이용해 기교적으로 잘 다듬은 작품이다. 리듬체조 국가대표 출신 현대무용가 정은주가 창단한 헤케이브 소은 컴퍼니는 그동안 인간의 내·외면, 안무에 사용되는 다양한 소품을 역사적 관점에서 재해석하면서 현대무용과의 융합예술을 추구해왔다.

안무가 정은주는 현대무용의 대중화를 위해 움직임과 함께 표현될 수 있는 연극, 해설, 소품 등의 요소들을 접목하는 공연을 해오고 있다. 2017년에는 펜싱 국가대표 선수 구본길과 함께 펜싱과 현대무용을 결합한 공연으로 호평을 받기도 했다. 그녀는 2018년 한국예술평론가협의회에서 「Human Texture」와 「바디 멜로디」로 ‘주목할 만한 예술가상’을 수상한 바 있다. 그녀의 신작은 유의미한 결과물이다.


장석용 문화전문위원(한국예술평론가협의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