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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치유하는 영화(31)] 日 사무라이 정신의 허상을 고발하는 영화 '할복: 사무라이의 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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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치유하는 영화(31)] 日 사무라이 정신의 허상을 고발하는 영화 '할복: 사무라이의 죽음'

영화 '할복: 사무라이의 죽음'.이미지 확대보기
영화 '할복: 사무라이의 죽음'.
나라마다 역사적으로 강조하는 정신들이 있다. 기사도 정신, 선비 정신, 군인 정신 등이 그것이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이러한 것들이 특정 권력집단의 이기심에서 나왔다는 의심을 해본다.

'참사랑'이 빠진 시대 정신은 언제든지 무너지고 그 실체가 결국 드러날 수밖에 없다. 더구나 자신보다 남을 배려하는 것을 최고의 가치로 교육하는 일본의 경우 그 모든 게 허상이었음이 드러나는 경우가 많다.
실질적으로는 인간이 자신의 생존을 위해서 외형적으로만 남을 배려하는 것은 진정한 발전을 저해하는 결과가 된다. 물론 가미가제 같은 성공적인 사례도 있지만 그것이 진정한 성공일까.

영화 '할복: 사무라이의 죽음'은 일본의 사무라이정신의 실체를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전국시대가 끝나고 평화가 찾아온 것처럼 보이는 과거 일본 에도시대. 왕조가 바뀌고 우후죽순 난립하던 사무라이 세력들이 오랜 시간 수많은 전쟁 끝에 정리되고 바야흐로 평화의 시절을 맞이한다.

전쟁이 끝난 일본사회에서 사무라이들은 할 일이 없어진다. 더욱이 전쟁에 패한 세력의 사무라이들은 생활조차 유지하기 힘겨워 한다. 승리한 막부 직속의 사무라이들은 더욱 번창하고 잘 살아가지만 말이다.

당시 쇠퇴해가던 사무라이들은 승리한 막부 직속 유력 무사들을 찾아가 그들이 받아주지 않으면 할복을 청원하였다고 한다. 이들의 청원을 무시해서 만약 막부 무사들의 대저택 마당에서 실제로 할복하면 엄청 귀찮은 일이 벌어질 수 있기에 청원만으로도 그들을 받아들이고 직책을 주거나 돈을 주기도 하는 일이 자주 있었다고 한다.

어떤 때에는 청원이 받아들여지지 않아 실제로 할복 직전에 할복할 정도의 배짱이 있다는 그 결기를 인정받아 구제되어 일하는 경우 역시 많았다고 한다. 영화의 시작에서는 어느 배 고파 보이는 남루한 젊은 사무라이가 최고의 위세를 자랑하는 지역 군주의 성에 찾아와 할복을 준비한다.

수많은 사무라이들 앞에서 할복을 준비하는 젊은 사무라이에게 그가 갖고온 검이 할복 시늉만 내려고 하는 목검임을 눈치 챈 지역군주는 진정한 사무라이라면 진짜 할복해 명예를 지킬 것을 명한다. 생활고를 면하고 어떻게든 살아보려고 가짜 할복을 하려든 젊은 사무라이는 죽어야만 한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남겨진 가족들에게 3냥의 돈이 필요하다고 자신이 죽고 나면 꼭 전해달라고 당부한다.
나무로 된 검으로 아무리 찔러도 고통만 더해지자 지역 군주는 직접 그의 목을 친다. 어느 정도 세월이 흐른 뒤 젊은 사무라이가 할복한 같은 장소에 나이든 사무라이가 남루한 차림으로 앉아 있다.

그 역시 먹고 살기 힘들어 가짜 할복을 시도하고 충성심을 인정받으려고 하는 것 같았다. 지역 군주는 지난번에도 어떤 젊은 사무라이가 찾아와 진짜 죽임을 당했다며 진정으로 할복하겠냐고 물었다.

늙은 사무라이는 진정으로 할복해서 사무라이 정신을 보여주겠다고 말한다. 대신 할복의 마지막 단계인 고통을 들어주기 위해 자신의 머리를 잘라주기를 부탁하며 사무라이 이름을 지명한다.

지켜보던 사무라이들은 그가 그들의 일원인 간부 사무라이들을 호명하자 놀란다. 하지만 그들은 나오지 않았고 대신 그들의 잘린 상투가 늙은 사무라이 손에서 던져진다.

자신들의 상사가 살해당한 것을 눈치챈다. 나이든 사무라이는 그를 공격하려는 수많은 사무라이들에게 외친다. 지난번 자신들이 죽인 사위의 복수를 위해서 왔다고. 그리고 진정한 사무라이정신을 보여주겠다고 소리친다.

목검으로 수많은 사무라이를 상대하여 제압한다. 그리고 사위가 앉았던 자리에서 죽음을 맞이한다. 실은 나이든 사무라이는 살해당한 젊은 사무라이의 장인 어른이었다.

그와 젊은 사무라이의 부친은 어려서부터 전장을 누빈 장군이자 친구였다. 그가 전사하자 홀로 남겨진 아들을 데리고 와서 그의 딸과 같이 키운 것이다.

권력싸움과 전장에서 패한 사무라이였기에 삶은 늘 힘들고 고단했다. 어려운 환경이었지만 너무 착한 전우의 아들과 그의 딸은 그의 주선으로 혼례를 올렸다.

가난으로 인해 갓 태어난 아이를 두고 아내가 아프게 되었고 왕진온 의사가 치료비로 3냥을 요구했다. 그래서 젊고 가난했던 사무라이는 그의 아내와 자식을 위하여 잘못하면 죽을 수도 있는 가짜 할복을 시도하여 지역 군주 휘하로 들어가려고 했던 것이다.

엠비씨제작사의 김흥도 감독은 위선적인 충성과 서민으로부터 착취한 부를 조금 나눠주는 것으로 얻은 사무라이 정신을 풍자하고 있다고 감상평을 전한다. 영화에서는 늙은 사무라이가 무엇보다도 사무라이 정신의 상징물을 쓰러뜨리는 장면이 인상적이었다고 설명한다.

진정한 사무라이 정신은 남을 위해서가 아니라 사랑하는 가족을 위해서 우러난 것임을 보여준다. 무엇보다 남의 자식을 자신의 자식처럼 보살피고 키워서 자신의 딸과 결혼시키고 그의 복수를 위하여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주인공은 위선적 사무라이 정신에 우선하는 그 무엇인가를 느끼게 한다.


노정용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noja@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