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원시 감성이 넘실댄 작품은 원숭이의 진화 과정과 수난, 미래의 향방을 예시한다. 전예화, 박민영, 조은별, 주세나, 정지민의 공연은 기존 공연의 틀을 깨고 관계 해방의 실험 작업 ‘마기꾼’을 동인(動因)으로 관점 차이를 조망한다. 아레나형 무대는 초 근접 거리에서 공연 관람과 사진 촬영을 가능하게 했다. 공연장의 여러 카메라와 관객 촬영의 카메라 렌즈가 다각적인 관점에서 공연을 사유한다.



거대한 철제 외벽과 파이프가 석유로 가득 찼던 탱크의 옛 모습을 떠올린다. 수준 높은 움직임과 접하기 힘든 무대, 관객들이 작품에 적극 참여할 수 있는 다양한 이벤트가 관심을 끈 공연이었다. 관객이 공연 도중에 순간의 장면을 포착하여 SNS에 공유하는 작업이 진행되어 오프라인 공연과 온라인 플랫폼에서 관객과 소통의 장이 만들어졌다. 공연은 현장에서 보아야 한다는 교훈이 한 시간 동안 던져진다.
「남다른점」은 「남다른 점」이 아니다. ‘호기심을 가지고 작품에 임하라’라는 뜻으로 다가온다. 작품은 외부의 게이트를 통해 진퇴하고, 조명이 구사하는 방식은 중계나 야외 콘서트를 다루는 느낌이어서 남다르다. 사운드는 낯선 새가 깊은 정글의 한가운데 있는 듯한 분위기를 조성하고, 두리번거리는 원숭이가 주위를 경계한다. 벌레 같은 다양한 움직임이 ‘세기(細技)의 듀엣’의 묘기적 전개를 이어간다.
'프로젝트 아트독' 은 현대무용을 기반으로 남다른 이미지 구성과 분위기를 창출하며 동시대의 무용을 새로운 접근과 실험적인 작업 방식으로 작품을 만들어 나간다. 컨셉추얼 아트(Conceptual Art, 개념예술)와 현대무용을 접목해 ‘컨셉’ 중점의 안무를 구상하고 움직임의 본질에 대한 고민과 미학적 기능을 중시하며 사회현상과 인간의 본능에 대해 '춤 언어'로 예술을 담아낸다.



서로 다른 관점에서 하나의 대상을 보았을 때 차이가 발생한다. 사물을 보고 느끼고 해석하는 것이 주관적 사유에 따라 다르게 나타나면서 왜곡하기도 하고 보고 싶은 것에만 사로잡히기도 한다. 안무가이자 주인공 전예화는 이런 인식을 바탕으로 진위를 떠나 개인의 지각을 통해 바라보고, 생각하고 싶은 데로 해석하는 습성과 관습에 대한 성찰과 시차에 관한 사유의 시간을 갖는다.
「남다른점」은 데즈먼드 모리스의 <털 없는 원숭이>(1967)에서 시작된다. 이 책은 '인간을 동물의 시각에서 바라본다'라고 비판받았지만, 인간의 사유와 본능적 행동의 본질을 꿰뚫고 있다. 진화한 인간의 몸을 통해 동물적이고 본능적인 행동과 호모 사피엔스의 지식적 행위를 함께 표현한다. 안무가는 인간과 생명체가 시차와 차이 속에서 충돌하며 어떻게 생존하는지 그 본모습을 심층적으로 담아낸다.
「남다른점」은 갑자기 찾아온 추위를 감싸 안으며 몸으로 진실과 위선 사이의 사연을 전하며 진정성을 보인 공연이었다. 1장 ‘특별한 동물 듀엣’, 2장 ‘진화를 위한 머리 감기’, 3장 ‘원숭이탈을 쓴 인간’, 4장 ‘이기적인 유전자’, 5장 ‘진화와 시간’, 6장 ‘우위에 서 있는 인간’으로 구성된 6개의 장(場)에 담긴 「남다른점」은 시차(視差)에 관한 사유 과정을 파격적으로 진지하게 보여준다.
‘특별한 동물 듀엣’; 다른 동물과 차별화되는 특별한 존재라고 여기며, 자기중심적 관점을 가진 인간의 시원을 찾아간다. 동물계는 일정한 위계질서를 지켜왔지만, 인간은 순리를 거스르고 나름의 새 질서를 만드는 욕망의 덩어리이다. 인간은 동물 위에 군림하며 인간만이 이 세상을 다스릴 수 있다는 진보적 사고를 지닌다. 인간은 유인원(類人猿)을 조상으로 하고, 가장 높지만 가장 낮게 자리한다.


‘진화를 위한 머리 감기’; 인간의 진화적 뿌리와 행로에 대한 탐구심이 발동된다. 길게 내려트린 머리는 원시적이며 자연 그대로의 인간의 모습을 보인다. 움직임이 특별한 동물은 여러 과정을 거치면서 변신한다. 그 가운데 본능적인 동물적 행위, 생각 속에서 이루어지는 이성적 행동, 사회관계에서 형성되는 집단행동이 표출된다. 거대 원시의 잠재력을 발산시키며 ‘Must See’ 공연의 모습은 지속된다.
‘원숭이탈을 쓴 인간’; 인간과 동물의 행동 사이에 차이점과 유사점이 발견된다. 새로운 것을 좋아하는 충동과 새로운 것을 싫어하는 충동 등이 다양한 충돌 속에서 이루어진다. 새것을 좋아하는 충동은 새로움을 갈망하고 새것을 싫어하는 충동을 잃을 때는 재난에 빠져들 수 있다. 정반합은 문화적 토대를 만든다. 직립보행의 즐거움이 표출되고, 움직임은 발성의 단계와 바닷소리의 외침을 불러온다.
‘이기적인 유전자’; 나라마다 인간과 동물의 생김새와 생각, 행동을 결정짓는 유전자는 아무 의도나 계획도 없다. 자연스러운 선택이며 특정 유전자가 생존하고 살아남은 유전자들끼리 뭉치고 흩어지면서 새 유전자 조합이 만들어진다. 이 유전자들이 인간의 신체, 생각, 행동의 일부를 결정한다. 유전자는 이기적인 개인보다는 이타적인 개체가 세련되고 유연하게 존재할 확률이 훨씬 크다는 것이 표현된다.
‘진화와 시간’; 진화는 시간에 따라 생물의 특성이 변화하면서 새로운 종이 형성되는 과정이다. 시간의 흐름을 상징하는 대형 시계가 등장하고, 현대인들의 반성을 촉구하는 동참의 시간이 부여된다. 인류의 무수한 진화 속에 나 자신은 어떤 진화에 도움을 주었는지 묻는다. 문명의 흐름에 따라 다양하게 생성되는 생명체의 본질적 양상을 이미지로 풀어내면서 인류의 여정이 다채롭게 표현된다.
‘우위에 서 있는 인간’; 묵직하고 중후하게 인간성을 찾아가는 행동을 보인다. 인간과 동물은 본능에 따라 행동하지만, 인간은 생각에 따라 행동할 수 있다. 안무가는 인간이 태초 인간의 진화인지, 유기체로서 위대성을 주장하는 존재인지 사유한다. 상상은 크고 그 범위도 옷을 걸친 무용수가 그려내는 범위처럼 넓고 깊다. 빛, 음량, 속도감 충만한 현재에서 바라본 세상은 남다르다. 삶을 사랑하라!
공연의 특이점은 여러 면에서 발견된다. 원통 무대에서 관객은 서로 얼굴을 볼 수 있는 범위가 한정적이었다. 조명 사용이 제한적이고 무대는 통제되었으며, 무대 외 프레임도 수용하였다. 음악과 음향은 라이브 음악을 수용할 수 있을 정도로 공간 활용도가 높았다. 원작의 남다름을 최대한 원용한 움직임이 원시적 신비감을 주었다. 원시감을 부르는 의상과 긴 머리카락도 파격적이었다.


전예화의 주요 안무작은 LA무용제와 시애틀국제무용제에서 「구(口)덩어리」 ver 2 초청공연)(2023), LA 한국문화원의 해설 있는 춤(「Special Dot」 초청공연)(2023), 제5회 서울국제댄스페스티벌 인 탱크 마라톤 스페셜 「구(口)덩어리」 선정(2022), SCF서울국제무페스티벌 「구(口)덩어리」 안무(2022),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아르코청년예술가 선정 「Salute the royal」 공동안무(2021)작이 있다.
현대무용가 전예화는 단국대·동 대학원 졸업(무용학 박사)로서 ‘프로젝트 아트독’ 대표이사, 한국현대무용협회 이사이며, 중앙대 공연영상창작무용과 강사, 인하대 연영과 겸임교수, 고양예고 무용과 강사 등을 거쳤다. 무대 설치로 사전영상과 현장영상을 LED 패널에 넣어 다른 시점을 담아낸 것은 남다른 발상이다. 조명디자인 김정화, 영상감독 이여진, 사운드 디자인 송지훈이 우선 눈에 띄었다.
전예화 안무·출연의 「남다른점」은 한국 현대무용의 진화와 현재적 위치를 읽게 해준 결작이었다. 다양한 프레임을 채우며 감동을 선사한 현대무용은 한국무용의 힘이 국제 경쟁에서도 우위를 점할 수 있는 자신감을 보여주었다. 원작의 묘미와 이를 독해하고 작품을 만들어 나간 독창적 창의력, 빈틈없는 장(場)의 구성과 인접 장르와의 조화, 남다른 기교의 춤은 경탄의 대상으로 남아 있다.
장석용 문화전문위원(한국예술평론가협의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