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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경•소방관 제복은 우리 위해 목숨을 바치겠다는 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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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경•소방관 제복은 우리 위해 목숨을 바치겠다는 뜻"

[심리학자 한성열의 힐링마음산책(278)] 제복이 무너지면 우리도 무너진다

군과 경찰 등 제복을 입고 복무하는 사람들에 대한 국민들의 왜곡된 시선도 바뀌어야 하고, 제복을 입은 사람도 제복이 주는 무게을 잘 생각하고 국민을 위해 봉사하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자료=글로벌이코노믹이미지 확대보기
군과 경찰 등 제복을 입고 복무하는 사람들에 대한 국민들의 왜곡된 시선도 바뀌어야 하고, 제복을 입은 사람도 제복이 주는 무게을 잘 생각하고 국민을 위해 봉사하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자료=글로벌이코노믹
며칠 전 한 언론에 미담(美談)이 소개됐다. 휴가를 나온 육군 병장이 부대로 복귀하던 길에 식당에서 점심을 먹었는데 우연히 합석한 20대 여성이 그 식사비를 대신 내준 것이다. 먼저 식당을 나온 이 여성은 감사 인사를 전하기 위해 급히 달려온 군인이 고맙다고 인사를 하자 "군인이셔서요"라고 말했다고 한다. 이 군인은 "오로지 군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선행을 받으니 가슴 한구석이 벅차올랐고 그 여운이 가시지 않았다"고 SNS에 썼다. 몇 달 전에는 군인이 주문한 음료 뚜껑에 '나라를 지켜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손글씨를 적은 카페 아르바이트생의 사연이 전해지기도 했다.

하지만 이런 기사가 미담으로 소개된다는 것 자체가 일상적이지 않은 특별한 일이라는 것을 방증하고 있지 않을까? 불행하게도 우리나라에서는 군인이 오랜 기간 경원시되고 비하와 조롱의 대상이었다. '군바리'란 멸칭(蔑稱)이 더 익숙했다. 한때는 군인들에게 휴가 중에는 군복을 입지 말라는 명령을 내린 적도 있었다. 지난해 말에 개봉돼 1000만 명 이상의 관객을 동원한 영화 '서울의 봄'은 소위 1979년 12월 12일에 벌어진 군사반란을 다루고 있다.
이 영화에서 이름을 살짝 바꾸었지만 누구나 다 알 수 있는 전두환 전 대통령의 반란과 이를 진압하던 진압군 사이에 시가전을 방불케 하는 전투를 주된 내용으로 하고 있다. 이 영화를 본 대부분의 관중은 군사 쿠데타로 정권을 잡아 군사독재를 이어간 대통령에 대해 다시 한번 부정적 평가를 내리게 된다. '군부독재'라는 용어는 1960년대 초부터 1992년 12월 김영삼 대통령의 당선으로 '문민정부'가 수립되기까지 30여 년간 국민의 뇌리에 박힌 단어가 되었다. 그만큼 군인에 대한 부정적 감정이 강하게 지속되고 있다는 증거다.

"살면서 어려운 일 생기면 제복 입은 사람 찾아가라"


필자의 개인적 경험을 돌아보아도 군인에 대한 이미지가 좋을 수 없다. 초등학교 저학년 때부터 소위 "반공을 국시의 제일의(第一義)로 삼고 지금까지 형식적이고 구호에만 그친 반공태세를 재정비 강화한다"로 시작하는 5·16 혁명공약을 잠꼬대를 할 정도로 달달 외었다. 그후 대학 시절에는 장갑차를 앞세운 군인들이 학교에 무단 침입해 강의실에서 공부하고 있던 남학생들을 곤봉으로 때리고 울부짖는 여학생들까지 머리채를 잡고 운동장으로 끌어내던 광경을 바로 눈앞에서 목격했다. 울분과 수치심과 무기력감에 절어 애꿎은 막걸리만 배 속에 들이붓던 젊은 시절을 보낸 경험이 군인들은 가까이 상종(相從)할 수 없는 존재라고 생각하게 만들었다. 그 이후에도 군부독재 정권을 유지하기 위해 경찰을 동원해 무자비하게 민주화를 외치던 학생운동을 무자비하게 탄압하다 박종철 고문사건, 이한열 최루탄 사망사건을 일으킨 경찰을 긍정적으로 보기에는 너무 힘들었던 시절이었다.

하지만 미국 유학 시절에 충격적인 경험을 하게 됐다. 미국 시카고에서 유학할 때 맏아들이 초등학교에 입학했다. 하교(下校)를 시키려고 학교에 조금 미리 가서 마지막 시간을 참관했다. 그때 담임선생님이 갓 입학한 어린 학생들에게 질문했다. "너희들 어려운 일이 생기면 누구에게 먼저 도움을 청해야 하니?" 그러자 학생들이 "부모님" "선생님" 등 가까운 사람들을 지목했다. 그때 담임선생님의 말씀이 전혀 뜻밖이었다. "앞으로 너희들이 살다가 어려운 일이 생기면 제일 먼저 제복(制服) 입은 사람들을 찾아가거라. 그들이 입은 제복은 너희를 위해 목숨을 바치겠다는 뜻이다." 한 번도 군인이나 경찰관 그리고 소방관들이 입고 있는 제복의 의미를 그렇게 생각해본 적이 없는 필자로서는 충격이 아닐 수 없었다. 그저 막연히 군인은 국가를 지키고, 경찰은 시민의 재산과 생명을 지키고, 소방관은 불이 났을 때 인명을 구조하는 일을 하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그리고 제복은 그들의 신분을 나타내거나 조직의 특성상 일치된 제복이 필요할 것이라는 생각만 막연히 하고 있었다. 한 번도 그들이 나를 위해 기꺼이 목숨을 바칠 사람들로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미국에 처음 가서 생소했던 것들 중 하나는 군부대와 묘지(墓地)가 시내에 있는 것이었다. 그때만 해도 군부대와 묘지는 시내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있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미국 친구에게 군부대가 시내에 있는 것이 마음에 불편하지 않은지 물어본 적이 있다. 그랬더니 그 친구가 "군부대가 가까이 있어야 안심이 된다. 위급한 상황이 발생했을 때 신속하게 도움을 받을 수 있다"고 대답하는 것을 보고 의아하게 생각한 적이 있었다. 그런데 초등학교 신입생들에게 조언해 주시던 담임교사의 충고를 듣고 미국인 친구가 한 말의 의미를 분명히 이해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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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군과 경찰의 힘을 자신의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사용한 소수의 독재자와 그들의 명령에 따른 대다수 군인들을 분리하지 못하고, 군과 경찰 모두를 비난하고 경원시했다. 2000년에 개봉된 영화 '박하사탕'에서도 잘 보여주고 있듯이 대부분의 병사들은 어디로 왜 출동하는지도 모른 채 명령에 따라 광주로 투입됐다. 대부분의 군과 경찰 그리고 소방관들은 국민의 관심에서 벗어난 음지에서 복무하지만 오늘도 밤새워 가며 국민의 재산과 생명을 지키기 위해 분투하고 있다. 부상(負傷)당하거나 순직(殉職)하고 있다. 소방청에 따르면, 2019년부터 지난해 6월까지 5년간 공무로 인해 부상이나 장애 그리고 순직한 소방공무원은 무려 4858명에 이른다. 매년 현장에서 숨지거나 다치는 소방관이 1000명에 육박한다는 뜻이다.

과거 군•경찰 나쁜 이미지 벗어던지고 국민 신뢰 쌓아야


경찰관도 예외가 아니다. 임무 수행 도중 다치거나 사망하는 경우도 있지만, 마음의 병 때문에 스스로 목숨을 끊는 수도 적지 않다. 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해마다 평균 21명의 경찰관이 자살한다. 시위 현장에서 질서유지 활동을 하다 부상당하는 경우는 말할 것도 없고, 강력범죄를 저지른 흉악범들을 검거하는 과정에서 심한 부상을 입는 경우도 다반사다. 또한 살인사건 현장이나 변사체 등을 다루는 경찰들이 경험하는 심리적 외상은 일반인들이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심하다.

2000년대 이후에도 우리 군의 희생은 끊이지 않고 있다. 널리 알려진 것만 열거해도 6명이 전사하고 19명이 부상한 2002년 연평해전, 46명이 전사한 2010년 천안함 폭침 사건, 2명이 전사하고 16명이 다친 연평도 포격 도발, 부사관 2명이 다리를 잃은 2015년 DMZ 목함지뢰 도발 등이 있다. 이들의 희생 없이 우리의 일상은 존재할 수 없다.

어릴 때 많이 보던 만화에서부터 일제 치하를 다루는 영화에 단골로 등장하는 한국인을 괴롭히는 고등계 일본인 '나까무라' 순사와 그의 조선인 끄나풀까지 경찰을 긍정적으로 보기 어려운 이유도 많이 있다. 이들은 같은 동포 위에 군림하면서 온갖 부도덕한 행동을 버젓이 하는 것으로 묘사되곤 했다. 또는 조국의 독립을 위해 불철주야 노력하는 독립투사들을 검거하여 고문하는 등 온갖 만행을 저지르는 것으로 나온다. 독재정권을 타도하기 위한 민주항쟁을 탄압하거나 저지하는 과정에서 박종철 고문치사, 이한열 최루탄 사망사건 들을 경험한 다수 국민들 입장에서는 군과 경찰이 곱게 보일 리가 만무하다. 더군다나 존경과 감사의 마음을 느끼거나 표한다는 것은 어불성설로 느껴지는 것도 당연한 일일 것이다.

의사들에 대해 평소에 부정적 감정을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몸이 병들면 어쩔 수 없이 의사를 찾고 그들을 신뢰할 수밖에 없다. 만약 의사를 믿지 못하고 병원을 자주 옮기거나 치료를 거부한다면 결과는 뻔하다. 평소에 의사에 대해 가지고 있는 개인의 주관적 평가는 현실 앞에서는 무력하기 짝이 없다.

우리가 보내는 감사•존경에 군•경•소방관은 기꺼이 희생


군과 경찰도 마찬가지다. 그들에 대해 평소에 가지고 있는 주관적 평가는 각자에게 달린 문제라고 하더라도 막상 불행한 일이 닥치면 결국 군과 경찰을 의지할 수밖에 없다. 지금 북한에서는 하루가 멀다 하고 전쟁을 곧 일으킬 것 같은 공포를 조장하고 있다. 그들의 의도가 무엇인지는 차치하더라도 만에 하나 국지전이라도 벌어진다면 결국 믿을 것은 군밖에 없다. 흉악범이 우리 가족을 인질로 잡고 생명을 위협하고 있다면 결국 사태를 원활히 해결해 주리라고 믿을 것은 경찰밖에 없다. 이것이 현실이다.

"군인은 사기(士氣)를 먹고 사는 집단"이라는 격언이 있다. 아무리 무기를 현대화하고 최첨단의 최신 무기를 장착한다고 해도 결국 싸우는 것은 군인이다. 위의 미담에서도 소개됐지만 밥값을 대납받은 군인은 “오로지 군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선행을 받으니 가슴 한구석이 벅차올랐고 그 여운이 가시지 않았다”라는 소감을 밝혔다. 이것이 바로 사기다. 군인은 무기로 싸우는 것이 아니라 국민이 고맙다고 밥값을 대납해주는 그 마음을 먹고 목숨까지 기꺼이 바치는 집단이다.

군과 경찰 등 제복을 입고 복무하는 직업에 종사하는 이들도 이제는 개인이나 정권의 안녕을 위해 제복의 힘을 사용하려는 소수 집단의 시도에 분연히 일어나는 모습을 국민에게 보여주어 신뢰를 되찾아야 한다. 국민 위에 군림하거나 총칼로 윽박지르던 과거의 권위적인 자세도 당연히 버려야 한다. 그래야 세금으로 그 집단을 유지하고 있는 국민에 대한 도리를 다하는 것이다. 국민들도 이제는 과거의 잘못에 대한 분노에서 벗어나 한편으로는 막강한 힘을 불의(不義)하게 사용하는 것에 대해 잠시도 쉬지 않고 감시해야 한다. 동시에 그들이 본연의 임무를 충실히 수행할 수 있도록 애정과 존경을 표하는 일에 인색해서는 안 된다. 국민의 그런 마음에 힘을 얻어 위험한 임무도 마다하지 않고 행할 수 있는 것이다. 군인과 경찰 그리고 제복을 입고 근무하는 분들은 우리 가족, 친구, 이웃이고 이들의 희생이 우리의 생명과 재산을 지켜준다는 사실은 평범하지만 너무나 명확한 진실이다. 제복이 무너지면 국민의 생명과 재산도 같이 무너진다.

한성열 고려대 명예교수
한성열 고려대 명예교수

필자 한성열 고려대 심리학과 명예교수는 국내 긍정심리학계의 최고 권위자로 미국 심리학을 중심으로 하는 기존 심리학이 문화의 영향력을 경시하는 것을 비판하고 인간 행동에 미치는 문화의 중요성을 설파하고 있다. 특히 한 교수는 심리학 전공자가 이론보다는 많은 사람들을 만나 소통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기업체, 대학, 교회 등을 찾아다니며 몸 건강 못지않게 마음의 건강이 중요함을 역설하고 있다. 저서로는 '심리학자의 마음을 빌려드립니다' '문화심리학' '신명의 심리학' 등이 있으며, 역서로는 '성공적 삶의 심리학' '노년기의 의미와 즐거움' '남자 나이 마흔이 된다는 것' 등이 있다.


한성열 고려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