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회책임투자포럼(KoSIF, 이사장 김영호)과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김현정 의원실이 16일 공동 발간한 「2024 화석연료금융 백서」에 따르면, 국내 금융기관이 보유한 화석연료 금융의 규모는 173.7조 원(보험 규모 포함 372.3조 원)이다. 한국사회책임투자포럼은 “상당액이 한국전력공사(한전)와 그 자회사에 집중된 구조가 문제의 핵심”이라고 지적했다.

▲세계는 재생에너지로, 한국 금융은 화석연료로
2025년부터 화석연료 발전 수요는 감소하고 재생에너지 수요는 본격 확대될 것이라는 한국에너지경제연구원의 전망과 달리, 실제 투자 흐름은 여전히 과거의 관성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2024년 6월 말 기준, 국내 금융기관의 신규 실행액은 화석연료 부문이 32.8조 원, 신·재생에너지 부문은 4.8조 원으로 약 7배의 격차를 보였다(국민연금 제외 ).
이는 글로벌 흐름과도 정면으로 배치된다. 미국, 중국, EU 등 주요국들은 신·재생에너지 투자를 앞다퉈 확대했으며, 그 결과 재생에너지 신규 투자 규모는 약 2조 330억 달러로, 화석연료 투자(1조 198억 달러)를 1.7배 웃돌고 있다. 누적 투자 규모에서도 격차는 두드러진다. 국내 화석연료금융 잔액은 121.8조 원으로, 신·재생에너지금융(24.5조 원)의 5배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국내 신·재생에너지 금융이 성장세마저 잃어가고 있다는 점이다. 2023년 기준, 신규 실행액은 전년 대비 11% 감소하며 하락폭이 커졌다. 전체 규모를 보면 민간금융이 17.7조 원(72.2%), 공적금융이 6.8조 원(27.8%)으로, 민간이 주도하고 있지만 에너지 전환을 이끌기엔 절대적인 자금 규모가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다.
한국사회책임투자포럼은 신·재생에너지 투자가 부진한 원인으로, 전 정부의 비우호적인 재생에너지 정책 기조가 금융시장 전반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다고 지적했다. 보고서는 “자금 유입의 절대량이 충분하지 않아 에너지 전환 속도가 기대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며, “이러한 구조적 한계는 국가 경제의 지속가능성과 글로벌 경쟁력 측면에서도 부정적인 영향을 초래할 수 있어, 보다 적극적인 정책 지원과 금융시장 활성화 방안이 요구된다”고 제언했다.
173.7조 원에 달하는 화석연료금융, 문제는 한전에 쏠린 석탄금융
국내 금융기관의 화석연료 투자 잔액은 이미 막대한 수준에 이른 것으로 나타났다. 「2024 화석연료금융 백서」에 따르면, 2024년 6월 기준 국내 112개 금융기관이 채권, 기업대출, 프로젝트파이낸싱(PF) 등을 통해 보유한 화석연료금융 규모는 총 173.7조 원(보험 포함 372.3조 원)이며, 이 중 석탄이 77.1조 원, 천연가스 및 석유가 96.6조 원을 차지했다. 지난해 상위 5위의 화석연료금융 규모를 기록했던 우정사업본부 등이 올해는 자료 제출을 거부한 것을 고려하면, 실제 화석연료금융은 이보다 더 클 것으로 추정된다.
한국사회책임투자포럼 양춘승 상임이사는 “국내 화석연료금융은 한전 중심의 석탄화력에 과도하게 투자하며 이 구조가 고착화돼 있는 것이 핵심 문제”라고 지적했다. 실제로 화석연료금융의 잔액 중 3분의 1에 달하는 55.2조 원이 한전과 그 자회사에 집중된 것으로 조사됐다.
‘한전 쏠림’ 현상이 공적금융기관에 의해 주도되고 있다는 점에서, 책임론은 더욱 커질 전망이다. 특히 국민연금과 한국산업은행 두 기관이 공적금융의 한전 투자 중 99%에 달하는 32.5조 원을 한전 및 자회사에 투자한 것으로 나타났다.
공적금융은 산업 전환을 이끌고 자본시장에 책임 있는 투자 신호를 제시할 책무가 있음에도, 2024년 6월 기준, 국민연금은 한전에 대한 대규모 석탄금융 투자를 유지하고 있다. 이러한 가운데 2024년 말 도입된 ‘석탄 투자 제한’ 기준은 실효성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해당 기준은 석탄 매출 비중이 50%를 초과하는 기업에만 적용돼, 발전 자회사를 지배하는 한전은 적용 대상에서 제외된 것이다. 보고서는 국민연금의 현행 기준으로는 투자 제한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고, 결과적으로 한전 중심의 왜곡된 투자 구조를 고착화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국민연금이 국제 흐름에 부합하는 실효성 있는 탈석탄 전략을 조속히 마련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 정부 정책과 금융의 괴리… “기후금융의 역할 재정립해야”
한편, 이재명 정부가 추진하는 ‘2040년 석탄발전소 전면 폐쇄’ 목표와 금융기관의 현재 투자 구조가 충돌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됐다. 한국사회책임투자포럼은 “현재 대부분의 금융기관 탈석탄 선언이 신규 석탄 사업 중단에만 국한돼 있으며, 기존 금융 계약의 만기 연장에 대한 제한은 없다”며, “이로 인해 2040년 이후에도 약 11조 원 규모의 석탄금융이 잔존할 것으로 예상되며, 이는 정부의 에너지 전환 목표 달성을 가로막는 구조적 리스크로 작용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러한 한계를 해소하기 위해, 금융 부문의 탈화석연료 이행력을 높일 수 있는 제도적 기반 마련이 시급한 상황이다. 한국사회책임투자포럼은 우선 금융기관마다 제각기 적용하고 있는 ‘석탄기업’ 분류 기준을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기준으로 정비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현재처럼 기준이 상이하면 동일 기업에 대한 금융 지원 여부가 엇갈려, 시장에 일관된 탈석탄 신호를 주는 데 한계가 발생한다는 점에서 개선이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아울러 석탄에 국한하지 않고, 석유와 천연가스 등 96.6조 원 규모의 화석연료 금융도 구조적 리스크를 안고 있다고 경고했다. 특히 LNG 발전이 '전환 부문'으로 분류되어 있어 친환경 채권 등의 자금이 집중 유입되는 현 상황은, 좌초자산 우려가 큰 부문에 오히려 국내 금융이 투자를 확대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는 전 세계적인 탈화석연료 및 에너지 전환 흐름과도 상충하는 것으로, 제도적 정비와 기준 마련이 시급하다는 점을 다시 한번 강조했다.
2024 화석연료금융 백서 표지
한국사회책임투자포럼 김영호 이사장은 발간사를 통해 “새 정부가 ‘기후정부’를 표방한 만큼, 과감한 기후금융 정책 설계가 시급하다”며, “공적금융기관에 대한 금융배출량 목표관리제를 시행하고, 금융감독원이 기후리스크를 금융기관의 자산건전성 평가에 의무적으로 반영하는 등 자본의 흐름을 바꾸는 구체적인 정책 수단을 적극 고민해야 할 때”라고 제언했다.
공동으로 백서를 발간한 김현정 국회의원은 “이번 백서에서 신·재생에너지금융의 성장세가 기대만큼 뒷받침되지 못하고 있는 현실은, 에너지 전환을 위한 금융의 흐름이 여전히 본격적인 전환 국면에 진입하지 못했음을 시사한다”며, “국회에서도 ESG, 기후위기 대응이 구호에만 머무르지 않도록 입법과 예산 등 실질적인 정책 수단을 통해 끝까지 책임을 다하겠다”고 강조했다.
정준범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jjb@g-e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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