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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점] 美 '조선 부흥' 정책에 닻 올린 한화…필리 조선소, 첨단기지로 탈바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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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점] 美 '조선 부흥' 정책에 닻 올린 한화…필리 조선소, 첨단기지로 탈바꿈

연 1.5척서 10척으로 생산성 도약…'K-스마트 야드' 기술 이식
미국 최초 LNG 운반선 넘어...해군 함정·잠수함 시장 정조준
펜실베이니아주 필라델피아에 위치한 최첨단 시설인 필라델피아 조선소에 건조 중인 대형 선박이 정박해 있다. 사진=한화이미지 확대보기
펜실베이니아주 필라델피아에 위치한 최첨단 시설인 필라델피아 조선소에 건조 중인 대형 선박이 정박해 있다. 사진=한화
한화그룹이 지난해 12월 1억 달러(약 1390억 원)를 투자해 미국 필라델피아 조선소(이하 필리 조선소)를 인수했다. 이번 인수는 사실상 고사했던 미국 조선업에 한국의 기술력과 자본이 수혈되는 결정적 기회로, 트럼프 행정부까지 큰 기대감을 보이고 있다.

17일(현지시각) 미 NBC보도에 따르면 필리 조선소 데이비드 김 대표는 델라웨어강 인근에 늘어선 거대한 선박을 보며 미국 조선업계에 새로운 비전을 제시했다. 그는 조선소를 안내하며 "우리가 가진 높은 수준의 경험, 기술, 노하우, 공정 전문성을 필리 조선소와 미국 해양 산업 기반에 적용한다면 현대화 역량을 높이는 데 크게 기여할 수 있다고 확신한다"고 포부를 밝혔다.

한화그룹은 이번 인수를 시작으로 앞으로 수차례 추가 투자를 단행할 예정이다. 2025년에는 1000명이 넘는 신규 인력을 고용하고 훈련할 계획을 발표했으며, 군함 건조는 물론 미국 최초의 특수 액화천연가스(LNG) 운반선 건조사로 발돋움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 '고사 직전' 美 조선업, 정부·한화가 구원투수로


현재 미국 조선업은 깊은 침체에 빠졌다. 조선 시장 분석 기관 BRS 쉽브로커스에 따르면 지난 10년간 중국이 6765척, 일본이 3120척, 한국이 2405척의 상선을 건조하는 동안 미국은 37척을 인도하는 데 그쳤다.

이러한 배경에는 제조업 부활을 내건 '메이드 인 아메리카' 정책과 함께, 2025년 발효된 '미국을 위한 선박법(SHIPS for America Act)'의 든든한 지원이 자리 잡았다. 이 법안은 앞으로 10년간 미국 조선소와 해운산업에 수십억 달러를 투자해 250척이 넘는 상선을 새로 건조하는 것을 목표로 삼는다. 미국에서 건조하고, 미국 국적을 달며, 미국 선원이 타는 선박을 우선하는 '전략상업선프로그램'을 신설하고, 조선소 현대화와 인력 양성에 보조금을 지급한다. 또한 다른 나라 선박이 운송하는 화물에 10%의 관세를 물려 미국산 선박의 수요를 이끌어내는 내용도 담았다.

김 대표는 "이 조선소에서 만드는 모든 배는 미국에서 추가로 건조되는 것"이라며 "이는 곧 새로운 일자리 창출과 협력업체들의 성장으로 이어진다"고 말했다.

◇ '사람과 로봇'의 협업… K-조선 기술로 현장을 바꾸다


현재 약 1800명의 인력을 운용하는 필리 조선소는 한화의 기술력을 발판으로 부활을 꾀한다. 한화는 '스마트 야드' 기술을 전면 적용해 현재 해마다 1.5척 수준인 건조량을 2035년까지 해마다 최대 10척까지 끌어올린다. 매출 역시 현재 4억 달러(약 5568억 원) 수준에서 10배인 40억 달러(약 5조5684억 원) 이상으로 성장시키겠다는 구체적인 계획을 세웠다. 이를 위해 자회사인 한화오션의 성공 모델인 컴퓨터 지원 설계(CAD), 용접 로봇, 가상현실(VR) 훈련 체계와 인간-로봇 협업 체계인 '코봇(Cobot)'을 현장에 빠르게 적용하고 있다. 컴퓨터 지원 제조 및 설계 코디네이터인 카일 퍼넬은 "한화가 보유한 전문성과 자원이 투입되면서 모든 일의 속도가 눈에 띄게 빨라졌다"고 현장의 변화를 전했다.

새로운 기술과 함께 새로운 인재들도 모여들고 있다. 용접, 선체 조립, 의장, 기계 조작 등을 교육하는 36개월 과정의 견습생 프로그램에는 현재 170명이 넘는 인원이 참여하고 있으며, 여러 배경의 지원자들이 몰리고 있다. 미용사 출신인 니시 즐로멕은 "한화에 온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일의 한계를 허물었다"며 "첫날부터 배의 측면을 오르기 시작했고, 그 이후 단 한 번도 멈춘 적이 없다"고 말했다.

한화의 최종 목표는 상선을 넘어 군수시장으로 확장하는 것이다. 이미 주립 상선사관학교의 훈련함 2척을 건조했으며 3척을 추가 건조 중이다. 앞으로 미 해군과 연방 정부의 함정 시장까지 사업을 넓히고, 장기적으로는 잠수함 등 다른 군수 분야로의 진출도 고려하고 있다.

한화의 필리 조선소 인수는 미국 정부의 산업 정책, 한화의 첨단 기술, 현지 인력 양성이라는 세 박자가 맞물린 상징적인 사례다. 이 세 요소의 결합은 앞으로 LNG 운반선과 군함은 물론 중대형 상선 시장에까지 활력을 불어넣고, 미국 조선업 전반의 혁신을 이끌 전망이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