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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 대전망] 진영 대립을 거부한 중민(中民)은 오늘날 어디에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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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 대전망] 진영 대립을 거부한 중민(中民)은 오늘날 어디에 있나?

지난 8월 15일 충남 천안시 목천읍, 독립기념관에서 열린 '제80주년 광복절 경축 문화행사 겨레의 빛' 행사에 첨석한 김형석 독립기념관장. 사진=뉴시스이미지 확대보기
지난 8월 15일 충남 천안시 목천읍, 독립기념관에서 열린 '제80주년 광복절 경축 문화행사 겨레의 빛' 행사에 첨석한 김형석 독립기념관장. 사진=뉴시스
이재명 대통령은 2025년 7월 13일 서울에서 열린 28차 세계정치학대회 개막식에서 ‘빛의 혁명’이라는 은유를 사용하며 야심 찬 연설을 했다.
요지인즉, 민주주의는 고대 그리스 아테네에서 유래했다고들 말하지만 이제는 'K-민주주의'가 새로운 모범이 된다는 것이다. 이 시각을 이어받아 그는 2025년 광복 80주년 기념사에서 지난 80년 동안의 ‘눈부신 성취’를 열거했다. 산업화, 민주화, 군사력 5위, 경제력 10위권 선진 민주국가 진입을 꼽았다. “김구 선생이 염원했던 문화강국의 꿈도 현실이 되고 있다”고 했다.
이 기념사는 80년간의 지난한 과정을 빛의 혁명으로 조명한 특색이 있다. 그러면서 이재명 대통령은 “빛의 혁명의 진정한 완성”을 위해 “우리 안의 장벽을 허물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증오와 혐오, 대립과 대결로는 아무것도 해결할 수 없고 오직 분열과 배제의 어두운 에너지를 포용과 통합, 연대의 밝은 에너지로 바꿀 때 비로소 우리 사회는 더 나은 미래로 더 크게 도약할 수 있”다고 역설했다. 그러면서 그는 “이제 정치문화를 바꿔야” 한다고 강조했다.

“낡은 이념과 진영에 기초한 분열의 정치에서 탈피해 대화와 양보에 기초한 연대와 상생의 정치를 함께 만들어갈 것을 이 자리를 빌려 거듭 제안하고 촉구하는 바입니다.”

그러나 2026년의 정치사회 현실이 대통령이 제안하고 촉구했던 방향으로 나갈지 낙관적 전망을 내리기가 힘들다. 우선 집권 여당의 강성 지도부가 독불장군이다. 대통령의 철학도 무시하는 것 같다. 야당을 ‘연대와 상생’의 파트너로 대우하기는커녕 해체되어야 할 정당으로 규탄하고 있다. 집권 여당을 지지하는 조직화된 시민집단도 ‘대화와 양보’를 수용할 가능성은 희박하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는 두 가지를 깊게 음미할 필요를 느낀다. 하나는 대통령과 집권 여당이 강조하는 국민은 과연 누구를 뜻하는가? 진정한 주권자의 의지가 일상적으로 정치에 반영되는 제대로 된 민주주의를 말할 때 '진정한 주권자'란 당원 중심 정당의 그 당원을 뜻하는가, 아니면 조직화되지는 않았지만 시민사회 안의 포용적이고 광범한 시민을 가리키는가?

둘째로 따져야 할 점은 여야 정당 지도부의 대립과 갈등을 떠나 침묵하는 시민집단의 동태를 살피는 것이다. 적과 동지의 치열한 전쟁, 양보 없는 투쟁을 선호하는 정치문화가 아직도 막강하고 이를 지지하는 조직화된 집단들이 여야 정당에 갈수록 깊이 파고들고 있는 것이 우리의 숨길 수 없는 현실이다. 그렇다면 진영 대립을 거부하는 시민들이 있는지 없는지, 있다면 어디에 있고, 이들의 규모를 어떻게 측정하며 이들은 무슨 생각을 하는가?

이런 질문에 답하기 위해 2021년 9월 서울을 포함한 세계 33개 대도시 시민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를 보겠다. 설문은 다음과 같다.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지난 8월 18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김형석 독립기념관장 관련 발언을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이미지 확대보기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지난 8월 18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김형석 독립기념관장 관련 발언을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사람들은 종종 진보 또는 보수의 두 진영으로 나뉘어 싸웁니다. 이런 상황에서 정치는 어차피 적과 동지의 투쟁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양 진영 간 갈등의 배후에 있는 공통의 세계를 회복하는 것이 정치에서 중요하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우리는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위의 설문에서 적과 동지의 투쟁에 충실해야 한다는 입장은 양극 대립의 진영 논리를 지지하는 세력이고, 반대의 입장은 이재명 대통령의 표현을 빌리자면 “낡은 이념과 진영에 기초한 분열의 정치에서 탈피해 대화와 양보에 기초한 연대와 상생의 정치를 함께 만들자”는 시민으로 해석할 수 있다.

결과를 보면, 양극 대립의 진영 논리를 지지하는 시민은 소수에 불과하다. 투쟁 중심의 정치 성향을 갖는 시민은 전 세계 시민의 28%에 불과하다. 서울의 경우 21.8%에 불과하다. 이런 소수의 목소리가 진영 정치에서 지나치게 과대 반영되고 있다는 견해가 성립된다. 따라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질 수 있다. 이재명 대통령이 말한 ‘빛의 혁명’에서 그 빛을 내장하고 구현하는 주체가 정치적으로 조직되고 동원되는 투쟁적 시민에게 있는가, 아니면 양극 대립의 진영 논리를 벗어나 그 배후의 공통의 세계를 찾고자 하는 실용적이고 개혁적인 중민에게 있는가?

중민은 1980년대 중반의 전환기에 민주화 추진 세력으로 등장했던 개념으로서 사회경제적으로는 중산층에 속하면서도 의식 면에서는 민중의 정체성을 획득한 집단을 가리켰다. 그러나 그 뒤 양극적 진영 대립이 심화된 오늘의 현실에서 보면, 적과 동지의 진영 대립을 떠나 그 배후의 공통의 세계를 복원하여 공존을 지향하는 특색을 지닌다.

그 중민은 전 세계 시민의 50.4%이고 서울 시민의 경우 53.5%로 집계된다. 이렇게 볼 때 한국은 이재명 대통령이 호명한 연대와 상생의 정치를 위한 사회적 기반이 세계에서 가장 특출한 것은 아니지만 결코 취약하지는 않은 기반을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중민의 성향을 자세히 살펴보면, 이들은 정부의 관료적 통제보다 시민의 창발성을 중시하고 상대에 대해 높은 배려 윤리를 보이며, 지속가능한 복지를 선호하고 위험사회의 미래에 대해 높은 성찰성을 보인다. 중민은 적과 동지의 이분법에 의한 진영 정치를 거부할 뿐만 아니라 연대와 상생을 향한 독특한 가치관을 공유하고 있다. 따라서 이재명 대통령이 언급한 'K-민주주의'의 미래를 위해서는 이들 중민의 목소리가 정치에 보다 적극 반영되는 정치문화의 개혁이 요구된다고 할 수 있다.

이를 위한 출발점은 정당문화의 핵심인 공론장을 넓게 개방하고 활성화해 열린 소통으로 민주적 합의를 도출하는 제도를 확립하는 것이다. 민주당이 내걸고 있는 당원 중심의 정당 모델이 진영 논리에 함락되는 것을 막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재명 대통령이 강조한 연대와 상생의 정치가 성공할 것인가의 여부는 대통령을 포함한 정치 지도자들의 의지와 함께 이 글이 제시한 정치의 사회문화적 조건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상진<서울대학교 명예교수>

-글 싣는 순서-

1. 2026 지속가능발전 5대 지지대 전망
2. 진영 대립을 거부한 중민(中民)은 오늘날 어디에 있나?
3. 빚으로 숨쉬는 경제, ‘선(先) 구조개혁’으로 경쟁력 강화
4. 트럼프 시대, 대한민국 외교 안보의 ‘실용과 원칙’ 스마트 생존 전략
5. 이재명 정부의 대일 외교 과제 및 전략
6. 기술 주권과 산업 안보
7. 중국식 피지컬 AI(具身智能) 전략과 K-제조의 길
8. 글로벌 산업 대전환기, 대한민국 산업의 대도약을 위한 제언
9. 2026년 AI 트렌드 전망–피지컬 AI와 인간의 일자리 재편
10. 2026년 건설 및 엔지니어링 산업 전망
11. 집값 잡는 주택정책의 결말은 풍선효과? 버블붕괴?
12. 한국사회 20대 담론, ‘인정과 존중’
13. AI 대전환기, 혁신과 포용의 ‘K-AI시티’
14. 기후위기 시대, 돌봄과 회복의 정원도시를 위하여
15. 2026 한국 문화예술의 미래, 10대 트렌드를 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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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상진

중민재단 이사장, 중국 남경대 유학과새로운사회학 연구소장, 한국정신문화연구원장, 김대중대통령자문정책기획위원회 위원장 역임. 주요 저서: 중민의 발견과 성장, 중민이론의 탐색, 하버마스와의 대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