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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이슈 24] 코로나19로 미국 지상파TV 뉴스 시청률 급등…‘크롱카이트 시대’ 재현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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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이슈 24] 코로나19로 미국 지상파TV 뉴스 시청률 급등…‘크롱카이트 시대’ 재현되나?

사진은 미국 지상파TV 뉴스의 황금시대를 이끌었던 전설적 뉴스 앵커 월터 크롱카이트.이미지 확대보기
사진은 미국 지상파TV 뉴스의 황금시대를 이끌었던 전설적 뉴스 앵커 월터 크롱카이트.

“이것은 우리에게 진주만(공격)이다, 우리의 9.11 테러다.” 지난 4월 6일 TV에서 그렇게 외친 것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아닌) ABC의 간판 캐스터 데이비드 뮤어의 ‘월드 뉴스 투나잇’에서였다. 이날 뉴욕 시내에서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코로나19) 사망자가 3,000명을 넘어 9.11 테러의 미국 전역의 희생자 수를 웃돌았다.

이날 밤의 시청자 수는 추정 1,200만 명이었으며 그 주말까지 뮤어의 프로그램은 같은 시간대에 방송된 그 어떤 프로그램보다 높은 시청률을 유지했다. 이는 전설의 뉴스캐스터 월터 크롱카이트조차 이룰 수 없었던 쾌거다. 어쨌든 모든 미 국민들은 텔레비전 뉴스에 달라붙어 있었다. ABC뿐만이 아니라 NBC의 ‘나이틀리 뉴스 위드 레스터 홀트’나 CBS의 ‘이브닝 뉴스 위드 노라 오도넬’은 대부분의 오락 프로그램보다 시청률을 올렸다.

3월 중순부터 4월 26일까지의 6개 주를 보면, ABC의 뉴스 시청률은 작년 동기 대비 48%, NBC는 37%, CBS는 24%까지 치솟았으며 CNN, FOX 뉴스, MSNBC도 최고였다. 5월에 들어서도 흐름은 계속되었다. 시청자 증가는 국가 현실을 반영하고 있다고 뮤어는 말했다. 건강에 대한 심각한 위협으로 경제가 붕괴하고, 지도자의 자질이 의심받고 있다. 좀처럼 없는 상황이므로, 모두 신뢰할 수 있는 정보원을 요구하고 있다.

TV 뉴스를 둘러싼 환경은 크롱카이트가 군림하던 시대로 일변했다(뮤어가 획득한 시청자는 1,200만 명이지만, 전성기의 크롱카이트는 그 배 이상의 시청자를 모으고 있었다). 그런데도 새로운 살인 바이러스와 공존하는 시대를 눈앞에 두고 저녁의 TV 뉴스를 복권시켜, 시대가 요구하는 보도 프로그램으로 재생시키려고 모색하는 사람들이 있다.

제임스 골드스톤 ABC뉴스 사장은 “코로나19 문제는 심각하고 그 영향이 장기화되면서 뉴스는 필수적이 되고 있다”고 뉴스위크지에 말했다. 그리고 “저녁 뉴스 프로그램은 사람들이 원하는 정보를 전달하는 효과적인 장소다. 그 어느 때보다 가치 있는 존재가 되고 있다”고 덧붙였다.

■ 뉴스의 사명은 달라진 것이 없다

그렇다고 긍정적인 요소만 있는 것은 아니다. NBC, CBS, ABC의 각각 모회사인 컴캐스트, 바이어컴 CBS, 월트디즈니의 1분기 결산을 보면 모두 광고 수입이 감소했다. 게다가 시청률이 상승하는 가운데, NBC는 돌연 NBC 뉴스를 이끄는 앤드루 랙을 해임했다. 랙은 아침 프로그램 ‘투데이’의 전 진행자 성추행 문제에 적절히 대응하지 않았고, 할리우드 거물 하비 와인스틴의 성추행 의혹에서도 보도 태도가 문제가 되기도 했다.

‘CBS 이브닝 뉴스’의 제작 총책임자 제이 셰일러는 “우리의 사명은 변하지 않았다는 것을, 모두 깨닫기 시작했다”라며 “요점은 사람들이 자기 세계를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는 것이다. 그것이 예나 지금이나 TV 뉴스의 사명”이라고 말했다.

■ 코로나19 보도에도 ‘균형이 생명’

NBC 뉴스의 자넬 로드리게스 편집 담당 부사장은 “그렇지만 환경변화에는 대응해야 한다. 기술의 진보에 신속히 대응할 수 있는 것은 증명할 수 있었다. 지금은 진행자가 집에 있어도 양질의 프로그램을 방송할 수 있다”라고 말하며 “이례적인 사태이기에 우리의 책임이 크다”고 지적했다. CBS는 ‘이브닝 뉴스’에 코로나19 관련 코너 4개를 신설했다. 치료 약이나 백신의 개발, 경제적 영향, 최전선의 대응, 그리고 ‘새로운 일상’에 대비하는 대처의 4가지다.

ABC도 이에 뒤지지 않았다. 인트로 부분을 케이블사의 뉴스 프로그램 수준으로 길게 하는 한편 시청자에게 용기를 주는 ‘스트롱 아메리카’ 코너에도 공을 들이고 있다. 예를 들어 거동이 불편한 퇴역 군인이 푸드뱅크에서 몇 시간이나 줄을 섰는데도 아무것도 받지 못한 얘기를 흘리고 후일담으로 이 퇴역 군인에게 시청자들의 기부가 쇄도했다는 이야기도 전했다. 캐스터 뮤어는 이에 대해 “상황은 최악이지만 그래도 사람들이 연결되는 순간은 있다. 그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어쨌든 지금은 대통령이 사회분단을 부추기면서 여론이 극과 극으로 치닫고 있는 시대다. 작년 11월 여론조사에서는 민주당 지지자의 66%는 언론사를 믿었지만, 공화당 지지자는 33%였다. 하지만 이번 코로나19 위기로 조금은 상황이 바뀌고 있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조사회사 ‘스미스가이거’의 4월 조사에서는 TV 로컬 뉴스와 전국 뉴스의 지지율이 각각 75%와 61%로 어느 정부 기관보다 월등히 높았다.

남 캘리포니아대학 저널리즘 대학원 미디어센터의 크리스티나 벨란토니 소장은 “무언가 변화가 시작되고 있다. 사람들이 뉴스를 더 보게 되면 뉴스 진행자에 대한 신뢰와 충성심이 길러져 크롱카이트의 시대 같은 분위기가 돌아올지도 모른다”고 전망하기도 한다.

■ 젊은 세대도 지상파 뉴스에 주목

비영리 저널리즘 연구기관 포인터 연구소(Poynter Intsitute)의 알 톰프킨스에 의하면 “일반론으로서 위기 시대에는 텔레비전의 뉴스가 시청자의 신뢰를 얻기 쉽다(다만 지속하는 보증은 없다). TV에서 보는 코로나 위기 이야기는 믿을 수 없다고 생각되면 일단락되지만, 비상시에는 대개 TV 뉴스는 일을 잘했다는 평가를 받는 법”이라고 지적한다. 그리고 “이번에도 트럼프 대통령이 페이크를 연발하고 있지만 이에 동조하는 사람이 늘지 않고 있다. 경제 활동의 조속한 재개를 요구하는 우파 시위대도 보도가 페이크라고 말하지 않고 있다”고 덧붙였다.

ABC의 뮤어는 프로그램 제작에서 중요한 것은 서로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들도 공감할 만한 이야기를 전달하는 것이라고 한다. 그런 까닭에 휴업명령의 장기화에 항의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꺼낸다면 지나친 경제 활동 재개를 우려하는 사람들의 목소리도 반드시 전달한다고 말했다.

그는 “둘 다 싸우게 하는 게 아니다. 양쪽 사람에게 사실을 전하다. 그러면 의심은 해소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양극화된 사회에서도 공통의 우려에 제대로 답하면 시청자는 따라온다. 빨리 일터로 돌아가고 싶다, 빨리 아이를 학교에 보내고 싶다는 사람들도 속으로는 정말 안전한가 싶을 테니까”라고 말한다.

■ 케이블방송국과의 차별화 필수과제

앤드루 헤이워드 전 CBS 뉴스 사장은 “지금에 와서 미국에서 가장 믿을 수 있는 크롱카이트 시대로 돌아갈 수 없다”고 말한다. 그런데도 “지금 뉴스가 빛나는 것은 환심을 사기보다 신뢰를 쌓기 위해 노력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에 따르면 “실제로 로컬 뉴스도 열심히 하고 있다. 예전에는 신선도에만 치중해 맥락이 없었는데 지금은 아니다”라고 분석한다.

남캘리포니아대의 베란토니 교수는 “올해는 가을에 대선이 있고, 코로나19 위기가 삶에 미치는 마이너스 영향은 길게 꼬리를 내린다. 어느 쪽도 텔레비전 뉴스에 순풍이 될 수 있다”고 전망한다. 그리고 “경제 회복에는 시간이 걸리니까 다들 일자리 찾기와 고용 유지에 도움이 되는 힌트가 필요해 TV 뉴스를 볼 것이다. 타도 트럼프의 행방도 TV로 지켜보는 게 제일”이라고 얘기한다. CBS 뉴스의 쉐일러도 강경하게 “어느 쪽의 화제도 자신의 안전이나 주머니 사정, 아이의 교육이나 부모의 간호와 직결되기 때문에, 향후도 시청자는 떨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회의적인 것은 포인터 연구소의 톰프킨스로 가족이 텔레비전 앞에 모여 뉴스를 보는 광경이 부활할 것으로는 생각되지 않는다고 한다. 그는 “원래 TV를 가장 많이 보는 것도, 코로나19 바이러스에 가장 약한 것도 노인이다. 요컨대 그들은 매일 밤 TV 시청이라는 옛 습관만 되찾았을 뿐이다. 지방지의 퇴조도 지금 TV에 순풍이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전국 넷의 지상파 방송과 케이블 TV의 차이를 강조하는 것은 CBS의 헤이워드 전 사장이다. 그는 “케이블 국이라면 좌우 어느 쪽의 사람에게 뉴스를 팔아 벌면 된다. 그래서 얘기가 쉽지만, 지상파들이 균형을 잘 배려하고 신뢰할 수 있는 정보 큐레이터 역할을 철저히 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하고 “그런 지상파 뉴스에 지금은 젊은 세대도 주목하고 있다. 중요한 것은 그들을 다시는 놓치지 않는 것”이라고 말한다.


김경수 글로벌이코노믹 편집위원 ggs077@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