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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점] "못 미더운 달러"…때아닌 '골드러시'에 치솟는 금값 언제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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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점] "못 미더운 달러"…때아닌 '골드러시'에 치솟는 금값 언제까지?

각국 중앙은행들, 지난해 사상 최대 금 1079톤 사재기

금값이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다. 이미지 확대보기
금값이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다.
미국 국채는 안전자산의 대명사였다. 그러나 중국이 미 국채를 던지고 금을 사 모으고 있다. 또 전 세계 투자자들은 미국 국채를 외면하고 애플 같은 우량 회사 채권에 몰려들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미국의 디폴트 가능성을 우려한 투자자가 마이크로소프트나 아마존 등 미국의 일류 회사 채권을 안전한 피난처로 삼고 있다"고 보도했다.
‘페트로 달러’ 지위는 흔들리고 있다. 사우디아라비아는 달러화가 아니더라도 석유를 팔기 시작했다. 그 통화가 하필 위안화다. 중국은 달러에서 금으로 옮기고 있다. 이런 요인들이 겹쳐 금값은 천정부지다. 대체 금값 상승은 언제까지 지속될까?

철저한 보안시설로 이름난 런던 메이페어의 금고는 자동 총격을 견딜 수 있을 만큼 두꺼운 방탄유리로 된 4개의 통제실이 있다. 이곳으로 전 세계의 가장 부유한 사람들이 몰려들고 있다.

금을 보관하기 위해서다. 내부에 있는 작은 금고를 이용하려면 연간 1만2000파운드(약 1959만원)의 보관 비용이 든다. 하지만 밀려 들고 있는 고객들로 인해 연말까지 예약이 가득 차 있다.

이곳에 금고를 가진 한 기업 CEO는 "기본적으로 은행에 대한 불신, 막대한 인플레이션 및 기축통화에 대한 우려 때문에 금 보관소를 이용하고 있다"고 밝혔다.

글로벌 엘리트들의 금 사랑은 신흥시장 중앙은행들에 의해서도 확인되고 있다. 지난해 각국 중앙은행은 1079톤의 금괴를 사들였는데, 이는 기록이 시작된 1950년 이후 가장 많은 양이다.

그 결과 금값은 3월 말부터 명목상의 사상 최고치인 트로이 온스당 2072달러(귀금속의 전통적인 단위)에 근접해 있다. 많은 투기꾼들, 즉 금 사냥꾼들은 숨을 죽이고 새로운 기록이 세워지기를 기다리고 있다. 금은 격동의 시대에 오랫동안 안전한 피난처였으며 오늘날에도 마찬가지다.
코로나 바이러스, 우크라이나 전쟁, 지정학적 긴장, 인플레이션 우려, 증가하는 글로벌 부채, 고금리, 은행 위기 등으로 인해 투자자들은 안전자산을 재평가하게 되었다. 그 결과 달러를 버리고 금을 택했다.

스위스 귀금속 거래 회사인 MKS Pamp의 금속 전략 책임자인 니키 쉴즈는 “지난 10년 동안 낮은 인플레이션과 높은 성장, 세계화와 평화, 자유방임주의 경제와 보이지 않는 손, 기술의 성과로 금에 대해 긍정적인 환경이 조성되고 있다”고 말했다.

개발도상국들이 미국 달러 강세를 경계하는 지정학적 요인도 있다. 서방이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러시아에 제재를 가하면서 미국과 동맹국들은 달러, 유로, 스털링으로 표시된 3000억 달러의 외환보유고를 동결했다.

이 같은 조치는 중앙은행이 보유 자산을 다양화하고 더 많은 금을 매입하기 위해 경쟁해온 미국 달러 보유액을 가진 많은 국가들을 놀라게 했다. 런던에 상장된 금 생산업체의 CEO 세바스천 몬테소스는 "이후 금은 점차 지정학적 중심으로 변모했다"고 주장했다.

2011년 글로벌 금융위기 상황에서 당시 러시아 총리였던 블라디미르 푸틴은 러시아의 금 보유를 '안전 쿠션'이라고 표현했다. 모든 자산이 무너져도 금만은 안전하다는 의미였다.

그로부터 12년 후 기축통화인 달러의 지위가 흔들리자 금이 다시 옛 맹주 자리를 노리고 있다. 일부 예측가들은 석유로 인한 인플레이션과 중동의 혼란으로 금값이 치솟던 1980년대를 떠올리며 트로이 온스당 3300달러까지 오를 수 있다고 예상한다.

미국의 디폴트 우려가 커지면서 금에 대한 소요가 덩달아 높아지고 있다.
미국의 디폴트 우려가 커지면서 금에 대한 소요가 덩달아 높아지고 있다.

지금처럼 스태그플레이션, 지정학적 긴장, 탈(脫)달러화가 지속된다면 금괴는 계속해서 반짝거릴 것이다. 금 거래의 글로벌 기준과 가격 벤치마크를 설정하는 런던 불리온 마켓의 루스 크로웰은 "금으로의 전환은 지정학에 대응하여 보다 중립적인 포트폴리오를 만드는 것이다"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금값은 변덕스럽기로 유명하다. 두려움과 공황이 밀물과 썰물처럼 겹치면서 가격 급등은 일시적인 것으로 판명될 수 있다. 그리고 금의 환경적 영향에 대한 우려와 금이 다른 금속과 달리 에너지 전환에 역할이 없다는 사실도 장기적으로 금의 전망을 약화시킬 수 있다.

금값 상승은 얼마나 계속될까?

금의 부활에 대한 주요 동기는 다른 유동 자산의 신뢰성에 대한 우려 탓이다. 최근 몇 달 동안 시장의 변동성이 심해지면서 투자자들은 새롭게 금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

지난해 11월 이후 미국 지역 은행이 파산하고 UBS가 크레디트스위스를 인수한 후 금은 슬슬 상승장의 시동을 걸었다.

귀금속 데이터 제공업체인 메탈스 데일리의 CEO 로스 노먼은 “금은 금융시장에 높은 수준의 두려움이 있음을 나타낸다. 어떤 사람들에게는 이것이 세계 경제의 안보에 대한 오랜 믿음을 입증하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영국에 기반을 둔 한 식당체인 CEO는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정부가 경제를 건전하게 회복시키기 위해 돈을 인쇄한 규모를 늘리는 것을 보고 그의 투자 선택을 쉽게 결정했다고 밝혔다.

그는 “언젠가 세계는 미국이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많은 빚을 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이다. 나는 금이나 은 외에 다른 답이 없다고 본다”고 말했다.

그의 두려움은 위기와 재앙의 관점에서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 고객들을 금괴 보관소로 몰려들게 만들고 있다. 미국의 부채한도 협상이 이달 안으로 타결되지 못하면 이런 우려는 더욱 가중될 것이다.

재닛 옐런 미국 재무장관은 의회가 6월 초까지 연방 부채한도를 인상하는 데 동의하지 않으면 재무부 부채에 대한 사상 최초의 디폴트 가능성이 높아질 경우 금융 및 경제 재앙이 될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세계에서 둘째로 큰 금 생산업체인 바릭 골드(Barrick Gold)를 이끄는 마크 브리스토우는 세계 중앙은행의 선택권이 바닥나고 인플레이션의 요정은 병에서 나왔으며 신흥국은 미국 달러 부채의 악순환 위험에 직면해 있다고 경고했다.

그는 “가혹한 현실은 국내총생산(GDP)보다 더 많은 부채가 있을 때 그것을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탈출구는 글로벌 경착륙뿐이라는 점이다”라고 말했다.

금값의 상승은 부분적으로 전 세계적인 달러에서 멀어지는 세계적인 변화에 의해 주도되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달러화의 횡포를 지켜본 각국 중앙은행은 기축통화를 다양화하려는 움직임을 보였다.

글로벌 외환보유고에서 미국 통화가 차지하는 비중은 2000년 70% 이상에서 현재 60% 미만으로 떨어졌다. 이러한 구조적 변화는 러시아, 중국, 터키, 인도가 주도했다.

러시아의 경우 서방의 제재는 국내에서 채굴하는 금에 대한 의존도를 증가시켰다. 중국과 미국의 갈등은 위안화의 독자 노선을 강화해 금값 상승을 부추겼다.

금은 불확실성의 시대에서 더욱 반짝거린다. 하지만 안전자산의 기준은 지정학적 상황에 따라 급변한다. 금에 대한 수요 역시 마찬가지다. 금이 언제 우리를 배반할지 알 수 없다.


성일만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texan509@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