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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점] 호주, 중국과 안보 경제 사이 위험한 곡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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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점] 호주, 중국과 안보 경제 사이 위험한 곡예

호주 알바니스 총리의 친중국 행보가 눈길을 끌고 있다.  사진=본사 자료이미지 확대보기
호주 알바니스 총리의 친중국 행보가 눈길을 끌고 있다. 사진=본사 자료
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에 의존한다. 이른바 ‘안미경중(安美經中)’은 한국만의 과제는 아니다. 앤서니 알바니즈 총리는 지난 6일 베이징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을 만났다. 호주 총리로서 7년 반 만의 중국 방문이었다. 중국과 호주는 한동안 냉랭한 관계였다.

먼저 상대를 자극한 쪽은 호주였다. 2020년 4월 호주가 중국에 코로나19 바이러스의 기원에 대한 조사를 요구하면서 관계는 삐걱거리기 시작했다. 한때 찰떡이었던 중국과 호주의 궁합은 이혼 직전까지 악화됐다.

2015년 호주는 중국과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하고 중국 주도의 아시아 인프라 투자은행(AIIB)에도 참여했다. 2017년 1월 트럼프 전 행정부가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에서 탈퇴했을 때, 호주는 미국 대신 중국의 가입을 바란다는 뜻을 밝히기도 했다.

2017년 11월 당시 야당인 호주 노동당 소속 의원이 중국 기업으로부터 거액의 기부금을 받고 남중국해 문제에 대해 친중국 발언을 한 사실이 밝혀지면서 양국 사이에 조금씩 금이 가기 시작했다. 호주는 2018년 세계 초고속 통신 표준인 '5G' 인프라 개발에서 화웨이를 배제하는 조치를 취했다.

2020년 4월 코로나19 바이러스에 대한 조사를 중국에 요청하면서 양국 관계는 급전직하했다. 중국은 육류에서 보리, 바닷가재, 와인, 석탄 및 목재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한 호주 제품의 수입을 제한했다.

찬 바람 불던 양국 관계에 훈풍을 몰고 온 것은 지난해 5월 노동당 정권의 출범이었다. 9년 만에 재집권한 노동당에는 친중 의원들이 다수 포진해 있다.

호주 와인 관세 재검토


신임 알바니스 총리와 시진핑 주석은 지난해 11월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를 계기로 인도네시아에서 대면 회담을 가졌다.

이후 중국의 기류가 변하기 시작했다. 올해 초 중국은 석탄, 목재, 보리의 수입 규제를 점진적으로 해제했고, 10월에는 와인에 부과하던 최대 218%의 높은 관세를 재검토하겠다고 발표했다.

1973년 휘틀럼 당시 총리의 역사적인 첫 중국 방문 이후 50년이 지났다. 휘틀럼 전 총리는 호주-중국 우호의 창시자로, 중국과 외교 관계를 수립하고 비백인 이민을 제한하는 ‘백호주의’를 폐지했다.

호주의 중국 전문가는 "중국이 없었다면 호주는 무역적자를 겪었을 것이고, 제조업의 상당 부분이 위축되고 심지어 붕괴될 것이다"라고 중국 언론과의 인터뷰서 밝혔다.

호주가 중국 경제의 압력에 굴복한 것일까. 닛케이는 알바니스 정권이 친중국 노선으로 돌아선 것은 나약해서가 아니라 냉철하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중국 제재의 영향은 총 200억 호주 달러(약 16조 8960억 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실제 호주 연방정부의 자문기구인 생산성위원회(Productivity Commission)가 지난 7월 집계한 분석에 따르면 제재로 인해 국내총생산(GDP)이 2억 2500만 호주달러 감소했다.

호주 외교통상부에 따르면 호주의 수출 대비 중국 의존도는 2020년 40.5%로 정점을 찍은 후 감소하기 시작했다. 2022년 전체 수출은 높은 자원 가격의 순풍으로 인해 29.6% 증가한 반면, 대중국 수출은 2.4% 감소했고, 대중국 의존도는 29.5%로 10년 만에 처음으로 30% 아래로 떨어졌다.

중국도 호주와의 파경으로 내상을 입었다. 호주산 석탄 수입 중단과 한파가 겹치면서 중국은 2020년 겨울에 심각한 전력난을 겪었다. 중국은 2021년 TPP 가입을 신청했으나 한때 중국의 가입을 기다리겠다고 말했던 호주의 반대에 부딪혔다.

호주는 2021년 9월 미국, 영국과 함께 새로운 안보협력 프레임워크 '오커스(AUKUS)'를 만들어 중국 목을 죄었다. 남중국해와 남태평양에 대한 중국의 군사적 확장을 저지하기 위해 호주는 핵 추진 잠수함을 배치하기로 결정했다.

데라다 다카시 도시샤대학 교수는 "중국은 호주의 목을 잡았다고 생각했는데 점점 더 약해졌다"며 "이는 필리핀에 대한 오판과 비슷하다"고 설명했다. 해양 확장을 노려온 중국은 호주의 이탈로 뒷목을 부여잡았다.

노동당의 재집권으로 호주는 다시 ‘안미경중’의 줄타기에 나섰다. 알바니스 총리는 중국과의 향후 관계와 관련해 "우리는 할 수 있는 부문에서는 협력하고, 반대해야 할 부문에서는 반대하며, 국익을 위해 판단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중국을 나무 가까이도, 너무 멀리도 두지 않겠다는 속내다.

호주는 올 초 미국의 버지니아급 핵 추진 잠수함 5척을 확보했다. 미국산 기술을 활용해 영국이 설계한 핵 추진 잠수함 8척을 국내에서 건조할 예정이다. 이를 위해 향후 30년 동안 최대 3680억 호주 달러를 투자할 계획이다.

미국 정책 연구소의 필립 이바노프는 "역설적이게도 호주는 중국의 잠재적 위협을 억지하기 위한 자금을 중국과의 무역을 통해 벌려고 한다"고 비유했다.

호주가 직면한 역설은 인도-태평양의 지정학적 지형이 복잡해지는 가운데 각자도생의 길을 보여주고 있다.


성일만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texan509@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