닫기

글로벌이코노믹

‘ESG 경영’ 강조하던 첨단 기술 기업들…실천은 ‘뒷전’

글로벌이코노믹

‘ESG 경영’ 강조하던 첨단 기술 기업들…실천은 ‘뒷전’

11대 전자제품 공급망 기업 기후대응 점수 표.  사진=그린피스이미지 확대보기
11대 전자제품 공급망 기업 기후대응 점수 표. 사진=그린피스
글로벌 산업계 전반에 ‘지속가능경영(ESG)’ 개념이 도입되면서 많은 기업들이 기존의 경제적 성과는 물론 사회적, 환경적 성과도 높여 기업 가치를 제고하려는 노력을 확대하고 있다.

하지만 산업계 공급망 전반에 영향이 큰 인텔, TSMC, 삼성전자, 폭스콘 등 글로벌 기술 대기업 상당수가 지속가능성에 대한 각종 공약만 내세울 뿐, 실제로 실천하지 않거나 기대에 못 미치는 달성률을 기록한 것으로 드러나면서 그들이 주장하는 ‘지속가능성’이 공허한 메아리에 그치고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국제 환경보호단체 그린피스는 최근 동아시아 주요 전자제품 공급 업체의 기후 위기 대응 및 탈탄소화 성과를 분석하고 평가한 보고서를 공개했다. 지난해에 이어 공개한 이번 보고서는 2022년을 기준으로 반도체, 디스플레이, 최종 조립 부문 주요 11개 공급업체의 전년 대비 기후대응 진전 사항을 △기후 위기 대응 목표 수립 △재생에너지 사용 비율 증감 및 조달 방식 △재생에너지 전력 사용 및 온실가스 배출량 △정책 옹호 활동 등의 항목으로 평가했다.

그린피스는 보고서를 통해 “글로벌 공급망 기업들이 전자산업 온실가스 배출량의 약 70%를 차지한다”라고 강조하며 “1년이 지난 현재 일부 분야에서는 상당한 진전을 보였지만, 지구 온난화 상승 폭을 1.5도(℃) 이내로 억제하는 목표에 비춰보면 이들 기업들의 탈탄소화 전환 의지는 여전히 미흡하다”라고 지적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평가 대상 11개 기업 중 8곳이 오는 2050년까지 넷제로(6대 온실가스 순 배출량 ‘0’)를 달성하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당장 2030년까지 탄소배출을 50% 이상 줄이겠다고 약속한 기업은 하나도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기후변화에관한정부간협의체(IPCC)에 따르면, 파리협정의 ‘1.5도 이내’ 목표를 달성하려면 최소 2030년까지 모든 분야의 탄소 배출을 현재의 절반으로 줄여야 한다. 하지만 2022년 기준 삼성전자, 인텔, TSMC, 폭스콘, 럭스쉐어(입신정밀) 등 5개 기업은 2020년 대비 더 많은 온실가스를 배출했다.

성과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조사 대상 11개 기업의 재생에너지 전력 조달 비율 중간값(median)은 20%로, 전년의 10%에 비해 두 배나 늘었다. 특히 SK하이닉스는 전년 대비 26% 포인트 상승하며 가장 큰 증가세를 보였다.

다만, SK하이닉스를 비롯해 재생에너지 비율을 늘린 기업 대다수가 재생에너지 공급인증서(RECs) 구매처럼 실제 탄소 배출 감소나 재생에너지 전환 효과가 낮은 방식에 의존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삼성전자는 조사 대상 반도체 기업 중 가장 낮은 ‘D+’평점을 2년 연속으로 받으면서 체면을 구겼다. 그린피스는 “세계적으로 기후 대응 정보를 공개하도록 하는 기후공시가 코앞에 다가왔다”라며 “만약, 삼성전자가 진전된 기후 대응 리더십을 보이지 않는다면 투자자들로부터 외면받는 상황을 피할 수 없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반면, 반도체 기업은 물론 조사 대상 중 가장 높은 ‘C+’ 평점을 2년 연속으로 받은 인텔은 2030년까지 사용 전력 100%를 재생에너지로 전환하겠다고 약속한 유일한 기업이다. 이 회사의 2022년 재생에너지 전력 비율은 무려 93%에 달한다.

대만 파운드리(반도체 수탁 생산) 기업 TSMC는 실제 재생에너지 사용량은 삼성전자보다 적었지만, 2030년까지 전체 소비전력의 60%를 재생에너지로 충당한다는 목표를 세우고, 2022년 사용한 재생에너지 중 44.1%를 재생에너지 확산에 유리한 방식을 적용하면서 삼성보다 높은 ‘C’ 등급을 받았다.

세계 최대 OEM·ODM 제조사이며 애플 아이폰 등의 제조사로 유명한 대만 폭스콘은 최종 조립 분야에서 가장 많은 탄소 배출량과 전력 소비량을 기록했다. 또 탄소 배출 감소와 재생에너지 채택 등에서 거의 진전을 보이지 못하며 삼성전자와 더불어 2년 연속 ‘D+’ 평점을 받았다.

반면, 폭스콘의 라이벌이자 애플워치, 비전 프로 등을 제조하는 럭스쉐어는 재생에너지 확대 효과가 큰 전력 수급 계약(PPA) 방식을 70%나 도입하고, 2025년까지 전체 사용 전력의 50%를 재생에너지로 조달한다는 계획을 밝히며 전년도 대비 두 단계 상승한 ‘C+’평점을 받았다.

그린피스는 “글로벌 주요 전자제품 공급 기업들이 지구 온난화를 1.5도 이내로 억제하는 목표 달성에 걸림돌이 되지 않으려면 2030년까지 100% 재생에너지 전력으로 전환해야 한다”라고 지적하며 “PPA나 재생에너지 투자, 사업장 내 발전 등의 재생에너지 조달 방식을 우선으로 채택하고, 정부의 재생에너지 정책 옹호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함으로써 자신들의 영향력을 발휘해야 진정한 ‘지속가능성’을 실천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최용석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rpch@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