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비디아 인증 전 생산 돌입…시장 선점 노리나 재고 부담 위험도 공존
"HBM4 전환 전 수요 확보" 자신감…AI 메모리 시장 주도권 경쟁 치열
"HBM4 전환 전 수요 확보" 자신감…AI 메모리 시장 주도권 경쟁 치열

삼성전자는 2025년 초부터 HBM3E 12단 적층 제품의 대규모 양산을 시작해, 첫 웨이퍼를 지난 2월 생산라인에 넣었다. 이 제품은 D램 칩 12개를 수직으로 쌓아 총 36기가바이트(GB)의 큰 용량을 구현했다는 점이 특징이다.
업계에 따르면 D램 칩 제조부터 패키징, 최종 검사까지 전체 만드는 데에는 보통 5~6개월이 걸린다.
◇ '선공급, 후승인' 전략의 의미와 위험 요인
삼성의 이번 조치는 엔비디아의 정식 인증 전에 생산을 시작했다는 점에서 드문 일이다. 인증 과정에서 문제가 생기거나 늦어지면, 많은 재고 부담을 안을 위험까지 받아들이겠다는 뜻이다. 엔비디아의 제품 승인은 오는 7월쯤으로 예상하지만, 실제 시장 출하는 올해 12월이나 다음 해 1월에야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이 시기에는 엔비디아가 다음 세대 HBM4에 힘을 쏟고, 일부 고객사도 다음 세대 기술로 바꾸기 시작할 수 있다는 변수도 있다.
그런데도 삼성이 이처럼 공격 전략을 택한 바탕에는 '선공급, 후승인'이라는 내부 지침과 함께 자사 HBM3E 12단 제품의 성능과 안정성에 대한 자신감이 작용한 것으로 풀이된다. 삼성은 이 제품이 엔비디아가 요구하는 안정성과 처리량 기준을 채울 것으로 기대한다. 인증이 끝나자마자 생산 기간을 기다릴 필요 없이 바로 시장에 물량을 대어 경쟁에서 앞서겠다는 계산이다.
◇ 급변하는 메모리 시장…HBM4 전환 변수와 삼성의 노림수
메모리 시장은 기술이 바뀌는 주기가 매우 짧아 몇 달마다 새로운 판을 맞는다. 특히 인공지능(AI) 가속기 시장에서 가장 힘이 센 엔비디아의 기술 개발 계획은 새로운 메모리 표준이 언제 나올지를 정한다. 삼성전자가 HBM3E 제품군 재고를 다 팔기 전에 시장의 중심이 HBM4로 옮겨가면, 수요가 줄어 큰 타격을 입을 수도 있다. 삼성의 이번 대량 선행 생산은 시장을 먼저 차지할 기회와 재고 부담 위험을 함께 안고 있는 '양날의 칼'인 셈이다.
돈 문제로 보면 D램 공장(팹) 운영에는 많은 돈이 들어간다. 남는 재고는 돈 흐름을 어렵게 하고, 시장 상황 때문에 싸게 팔아야만 하면 수익이 나빠질 수 있다. 삼성은 대량 생산으로 기가비트당 드는 돈을 낮춰 이러한 단기 가격 변동 위험을 줄일 계획이다.
삼성의 이러한 생산 확대는 기판, 패키징, 검사 관련 협력사를 비롯한 공급망 전체에 생산 능력을 늘려야 한다는 요구로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인공지능(AI) 가속기 시장에서 메모리 공급 부족은 오랜 문제인 병목 현상으로 지적받아 왔다. 삼성의 이번 재고 확보 전략이 성공하면, 앞으로 공급 부족을 줄이고 값을 정할 때도 유리한 자리를 차지할 수 있을 것으로 업계는 본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