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지개혁법 갈등 속 미국의 원조 중단 결정으로 아프리카 주요국 관계 악화
전문가들 "자기 중심적 외교정책이 남반구 국가들을 중국으로 밀어낼 것"
전문가들 "자기 중심적 외교정책이 남반구 국가들을 중국으로 밀어낼 것"

지난 2월 7일 트럼프 대통령은 행정명령을 통해 남아공에 대한 "원조와 지원 중단"을 지시했다. 그는 남아공 지도부가 반미, 반백인 입장을 취하고 이란과 하마스 같은 "세계 무대의 나쁜 행위자들"을 지원한다고 비난했다. 이어 이달 초에는 남아공이 토지를 몰수하고 백인 아프리카너 농부들을 "끔찍하게" 대우했다는 발언으로 갈등 수위를 높였다.
이에 남아공은 트럼프의 명령을 "잘못된 정보와 선전 캠페인"으로 규정하고 "부당하고 부도덕한" 인종 차별 혐의를 부인했다. 시릴 라마포사 남아공 대통령은 "괴롭힘을 당하지 않을 것"이라고 맹세했으며, 남아공 정부는 "비생산적인 확성기 외교"에 참여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원조 중단 조치는 작년에 미국으로부터 4억 4천만 달러의 지원을 받은 남아공의 HIV 치료 프로그램에 큰 타격을 줄 것으로 예상된다. 남아공 내 800만 명의 HIV 환자들이 가장 큰 영향을 받을 전망이다.
베이징 기반 컨설팅 회사 디벨롭먼트 리매진드의 정책 분석가 오비그웨 에구에구는 이번 갈등이 단순히 토지 분배 문제가 아니라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과 이스라엘의 가자 전쟁에 대한 남아공의 최근 외교 정책 결정에 대한 워싱턴의 불만"이 표출된 것이라고 분석했다.
펜실베이니아 버크넬 대학의 지쿤 주 국제관계학 교수는 트럼프의 입장이 "불필요하게" 남아공과의 긴장을 조성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미국의 주된 관심사가 중국과의 경쟁이라면, 트럼프 행정부가 지금 하고 있는 일은 미국의 동맹국과 우방국을 포함한 많은 국가들을 중국에 더 가깝게 만들 것"이라며 역효과를 낳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한편, 중국과 남아공의 관계는 점점 더 긴밀해지고 있다. 중국은 2008년 미국을 제치고 남아공의 최대 교역 상대국이 됐으며, 남아공은 13년 연속 아프리카에서 중국의 최대 교역 상대국 지위를 유지하고 있다. 2023년 양국 무역 규모는 556억 달러에 달했으며, 중국 기업들은 광업과 자동차에서 금융과 미디어에 이르기까지 남아공 기업에 101억 달러를 투자했다.
남아공은 중국과 러시아가 주도하는 브릭스(BRICS) 그룹의 일원이며 중국의 일대일로 인프라 투자 계획의 핵심 파트너다. 2023년 시진핑 국가주석의 요하네스버그 방문 중 서명한 공동성명에서 양측은인프라, 무역, 제조업, 에너지 자원, 디지털 경제 등 다양한 분야에서 협력을 강화하기로 약속했다.
워싱턴의 중국-미국 연구소 선임 정책 전문가 수라브 굽타는 트럼프의 남아공 공격이 부분적으로 일론 머스크의 영향을 받았다고 분석했다. 그는 "남아공의 아프리카너 소수 민족에 대한 학대 혐의가 도널드 트럼프의 뇌에 불쑥 떠올랐다는 것을 상상할 수 없다"며 "이것은 트럼프가 부지불식간에 그러나 마지못해 행상하고 있는 일론 머스크의 의제"라고 말했다.
상하이 국제학연구소의 류종이 소장은 트럼프의 공격이 브릭스를 겨냥한 것일 수 있다고 분석했다. 그는 "트럼프의 주요 관심사는 브릭스 국가들, 특히 블라디미르 푸틴이 제안한 탈달러화"라고 말했다. 트럼프는 브릭스 국가들이 미국 달러를 대체하려 할 경우 100%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거듭 위협해왔다.
아프로바로미터의 조셉 아순카 대표는 미국이 앞으로 "소프트 파워는 점차 하드 파워에 자리를 내줄 것"이라며 "일단 두 강대국이 상업적 거래에만 전적으로 의존하게 된다면, 위험은 매우 커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러나 싱가포르 ISEAS-Yusof Ishak Institute의 팡 중잉 연구원은 중국이 경제적 어려움과 씨름하면서 미국과의 관계를 안정화하려 노력하고 있어 "프리토리아를 크게 지원하거나 워싱턴이 남긴 공백을 메우는 것은 상당히 어려울 것"이라고 전망했다.
워싱턴 스팀슨 센터의 윤선 책임자는 "미국이 남반구를 미국으로부터 더 많이 밀어낼수록 중국과의 협력을 추구할 가능성이 높아진다"면서도 "미국의 압도적인 힘과 영향력으로 인해 어떤 나라도 완전히 적대적이거나 미국과 반대편에 서고 싶어하지 않는다"고 분석했다. 그는 "대답은 '미국이냐 중국이냐'가 아니라 '우리는 우리 편을 들 것'"이라며 균형 잡는 행동이 나타날 것으로 예상했다.
신민철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shincm@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