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에서 직장을 옮기는 근로자들이 받는 평균 급여 인상률이 10년 만에 최저 수준을 기록하며 구직자들이 기대하는 수준에 크게 못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17일(현지시각)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지난 1~2월 기존 직장에서 계속 근무한 노동자의 평균 임금 상승률은 4.6%였던 반면, 이직자의 임금 상승률은 4.8%로 불과 0.2%포인트 차이에 그쳤다. 이는 2023년초 이직자의 평균 급여 인상률이 7.7%, 기존 직장인의 인상률이 5.5%였던 것과 비교하면 상당한 격차다.
신용석 워싱턴대 경제학 교수는 WSJ와 인터뷰에서 “경기 침체는 아니지만 고용 시장 상황이 이전만큼 좋지 않다”며 “사람들이 안정성을 이유로 현 직장을 유지하려 한다”고 설명했다.
◇ 연봉 기대치 하락…美 기업들, 보수적 고용 전략
주요 미국 기업들의 채용 담당자들은 구직자들이 기대하는 연봉보다 낮은 수준에서 협상이 진행되는 경우가 많다고 밝히고 있다. 인디애나폴리스의 채용업체 인테그리티 리소스 매니지먼트를 운영하는 키스 심스는 “구직자들의 기대와 실제 제안받는 급여 간 격차가 크다”며 “많은 경우 제안이 기대보다 낮게 나오고 있다”고 전했다.
실제로 일부 직군에서는 과거보다 연봉이 줄어드는 경우도 속출하고 있다. WSJ는 42세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킴 반드릴라의 사례를 소개했다.
지난해 가을 20만 달러(약 2억9000만 원) 이상의 연봉을 받던 그는 최근 같은 직책을 찾고 있지만 대부분 14만~16만 달러(약 2억~2억3000만 원) 수준의 제안만 받고 있다. 그는 “2017년에 처음 크리에이티브 디렉터가 됐을 때도 17만5000달러(약 2억5000만 원)를 받았는데 현재 연봉 제안은 당시보다도 낮다”고 말했다.
특히 IT 업계에서 급여 인상 효과가 사라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채용 정보 플랫폼 레벨스.fyi에 따르면 지난해 하반기 소프트웨어 엔지니어, 제품 디자이너, 기술 프로그램 관리자 등의 중간 연봉이 1~2% 감소했다. 반면, 인공지능(AI) 관련 하드웨어 엔지니어 및 데이터 과학자 등 특정 직군에서만 급여 상승이 나타났다.
◇ “과거 수준으로 지급 못 해”
연봉 협상에서도 기업들이 보수적으로 대응하는 경향이 두드러진다.
고객 성공 담당자로 일했던 조시 보겔은 지난해 10월 해고된 후 5개월간 2500개 이상의 직군에 지원했지만 최종적으로 전 직장에서 받았던 17만 달러(약 2억4500만 원)보다 5만 달러(약 7200만 원) 낮은 12만 달러(약 1억7000만 원) 연봉을 받는 직장을 선택해야 했다.
그는 “기업들이 더 이상 예전처럼 후하게 지급하지 않는다”며 “연봉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대기하는 후보자들이 줄을 서 있다”고 말했다.
WSJ는 구직 시장의 위축이 자발적 이직 감소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분석했다. 미국 노동부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미국 노동자들의 자발적 이직률은 2020년 이후 최저 수준을 기록했으며 올해는 이보다 더 낮아질 가능성이 크다는 예상이다.
◇ 금융업은 예외…“경쟁적 연봉 인상”
한편 금융업계에서는 최근 몇 개월간 고액 연봉을 유지하거나 오히려 인상하는 경향이 나타나고 있다. 금융권 헤드헌팅 업체 얼라이언스 컨설팅의 폴 소르베라 대표는 “일부 대형 은행들이 사상 최대 실적을 기록하면서 경쟁적으로 인재를 영입하고 있다”며 “이익이 커지면 채용 규모도 확대하는 것이 금융업의 특성”이라고 밝혔다.
김현철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roc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