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사 후 여섯 번째 위기, 2만 명 감원·공장 7곳 폐쇄 등 고강도 처방
재무는 26년 전보다 탄탄, 그러나 '히트 신차' 부재가 재기의 발목
재무는 26년 전보다 탄탄, 그러나 '히트 신차' 부재가 재기의 발목

자동차 분석가 나카니시 다카키 씨는 "이렇게 항상 벼랑 끝을 걷는 기업은 본 적이 없다"고 했다. 실제로 제너럴 모터스(GM)는 파산 후 안정을 되찾았고, 스즈키나 스바루 같은 중소형 업체들도 자신만의 자리를 잡은 것과는 대조적이다.
◇ 곤 시절급 '축소 균형'… 2만 명 감원
지난 5월 닛산의 이반 에스피노사 신임 사장이 발표한 정상화 계획의 핵심은 '축소 균형'이다. 2027년까지 전 세계 직원의 15%에 해당하는 2만 명을 줄이고 생산 공장 7곳을 닫는 등 강도 높은 구조조정을 한다. 이를 통해 2026년까지 고정비와 변동비를 합쳐 총 5000억 엔(약 4조7458억 원)의 비용을 아끼고, 한 해 생산 능력은 250만 대로 줄인다. 곤 전 회장이 취임했던 1999년의 세계 판매 대수(253만 대)와 비슷한 수준으로, 과거 규모로 몸집을 줄여 다시 출발하겠다는 뜻이다.
◇ 재무는 '튼튼', 신차는 '부실'… 26년 전과 다른 현실
2025년 3월 말 기준 약 2조2000억 엔(약 20조8817억 원)의 현금성 자산과 3조4000억 엔(약 32조2717억 원)의 유동성을 확보해 단기간에 파산할 위험은 낮다는 평이다. 다만 북미·중국 등 주요 시장의 판매 부진과 5000억 엔(약 4조7458억 원)이 넘는 감가상각 손실, 600억 엔(약 5695억 원) 이상의 구조조정 비용이 적자를 키웠다.
닛산의 시가 도시유키 전 최고운영책임자(COO)는 "나도 지금의 어려움을 부른 주범 중 한 명"이라면서도, 과거 빚의 교훈 덕분에 돈 관리 원칙만큼은 지킬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코로나19 사태나 반도체 부족으로 생산이 어려웠던 2021년쯤 단번에 손실 처리를 하고 확장 노선과 헤어졌어야 했다"며 "당시 자금 사정이 탄탄했기 때문에 충분히 버틸 수 있었을 것"이라고 아쉬워했다.
반면 다시 일어서는 데 가장 큰 걸림돌은 신차 공급 계획이 부실한 점이다. 1999년에는 비용 절감과 더불어 '엑스트레일', '신형 스카이라인' 등 인기차가 회사를 다시 살렸다. 당시 닛산 조직에는 정식 계획에 없는 차를 기술자들이 알아서 개발하는 '부트레깅(밀주 제조)' 같은 '조직의 여유'가 있었고, '신형 페어레이디 Z' 같은 명차가 나오기도 했다.
◇ 외부 악재 속 'U자형 회복' 전망
닛산은 2025년부터 신형 리프(전기차), 신형 스카이라인, 세계 시장용 C세그먼트 SUV 등 신차를 집중적으로 내놓고, 미쓰비시·르노·혼다 등과 협력 관계를 강화해 위기를 넘는다는 구상이다. 이런 계획에도 한 분석가는 "2025년에는 신차(다마) 부족으로 반격에 나서기 어렵다. 2026년 미국에 내놓을 다목적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의 성공 여부가 재건의 열쇠를 쥐고 있다"고 내다봤다.
닛산을 둘러싼 바깥 사정도 좋지 않다. 전기차·하이브리드 경쟁이 심해진 것,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정책, 중국의 희토류 규제, 중동 불안에 따른 기름값 급등 모두 부담이다. 핵심 부품 회사 마렐리가 파산 보호를 신청한 점 또한 부품 공급망의 불안 요소다. 시장에서는 2026년 북미 시장에 내놓을 SUV 등 신차가 성공하지 못하면, 추가 구조조정이나 경쟁사인 토요타와 손잡을 가능성까지 나온다.
닛산의 에스피노사 사장은 지난 3월 "닛산의 저력은 이 정도가 아니다"라며 자신감을 보였지만, 시장에선 닛산이 과거처럼 'V자'로 회복하기는 어렵고 완만한 'U자' 회복에 그칠 것으로 보고 있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