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엑손모빌, 셰브론, 코노코필립스, 옥시덴털 페트롤리엄 등 미국 주요 석유업체들 주가가 23일(현지시각) 초반 강세를 접고 약세로 방향을 틀었다.
이란 의회가 전날 전세계 석유 수송의 20%를 책임지는 핵심 해상수송로인 호르무즈 해협 봉쇄를 결의하면서 이들 석유 종목 주가 폭등이 예상됐지만 의외로 시장은 잠잠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1일 이란에 ‘2주 시한’을 제시하는 연막 속에 B2 스텔스 폭격기들을 동원해 포르도, 이스파한, 나탄즈등 이란 핵 시설 3곳을 폭격하며 미국을 이스라엘-이란 전쟁 한복판에 끌어들였지만 시장이 관망세를 보이면서 충격은 일단 뒤로 미뤄졌다.
호르무즈 해협 봉쇄 경고
이란은 21일 의회가 호르무즈 해협을 봉쇄하기로 결의했다고 밝혔다.
호르무즈 해협은 매일 전세계 석유 수송의 25%, 석유 소비량의 20%를 책임지는 핵심 항로로 봉쇄가 의외로 어려운 일은 아니다.
투자자들은 이란의 호르무즈 해협 봉쇄 경고에 아직 크게 반응하지 않고 있다.
호르무즈 해협은 페르시아만(걸프만)과 오만만 사이를 잇는 좁은 해협이다. 이란 북부와 오만 남부, 아랍에미리트(UAE) 등 3개국 연안으로 구성돼 있다.
해협의 가장 좁은 곳은 폭이 약 33km이고, 대형 유조선이 통과하는 항로는 폭이 약 3.2km에 불과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란이 마음만 먹으면 실제로 봉쇄가 불가능하지 않다.
“이번에도 그저 엄포(?)”
이란은 수세에 몰리면 마치 ‘전가의 보도’처럼 호르무즈 해협 봉쇄를 꺼내 들었다.
1980년대 이란-이라크 전쟁 당시 이란은 호르무즈 해협에서 유조선을 공격하는 등 봉쇄 위협을 했다.
2011년 핵 무기 개발을 이유로 미국이 이란을 제재했을 때에도 이란은 호르무즈 해협을 봉쇄하겠다고 협박했다.
그러나 단 한 번도 실제 봉쇄를 감행한 적은 없다.
지난 22일 의회에서 호르무즈 해협 봉쇄를 결정했지만 시장 반응이 비교적 차분한 것은 바로 실행에 옮겨지지 않을 것이란 예상 때문이다.
이란은 이번에도 최종 결정은 최고 국가안보회의와 최고 지도자 알리 하메네이의 몫이라며 은근슬쩍 결정을 미뤘다.
관망세
석유 종목들이 일반적인 폭등 예상과 달리 이날 외려 약세를 보인 것은 이번에도 이란의 호르무즈 봉쇄 위협이 실효성 없는 공수표에 그칠 것이라고 투자자들이 판단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형 유조선이 지나다니는 해로의 폭이 워낙 좁아 이란이 마음만 먹으면 봉쇄가 불가능한 것은 아니지만 실익이 있을지 의문이라는 지적들이 나온다.
호르무즈 해협은 페르시아만을 공유하는 사우디아라비아, 이라크, 쿠웨이트, UAE, 카타르뿐만 아니라 이란 석유 수출에도 핵심적인 관문이다.
해협 봉쇄는 전세계 해상 석유 수송에 차질을 줄 수 있는 이란이 갖고 있는 가장 강력한 카드이지만 동시에 스스로도 겨냥하는 날카로운 칼이다.
해협 봉쇄가 가뜩이나 어려운 이란 경제를 파국으로 몰아갈 위험이 높다.
정권이 붕괴 위기에 몰릴 정도만 아니라면 실제로 이란이 호르무즈 해협 봉쇄를 결행할 가능성은 낮다는 말이다.
특히 지금처럼 이스라엘과 전쟁을 하면서 막대한 군사비용을 필요로 하는 때에 해협 봉쇄로 자국의 거의 유일한 달러 수입원을 차단하는 자충수를 둘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전문가들은 판단하고 있다.
온라인 거래 플랫폼 캐피털 닷컴의 다니엘라 사빈 해손 애널리스트는 배런스에 글로벌 시장이 이런 점들 때문에 현재 관망세를 보이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렇지만 아직은 이란이 봉쇄를 결행하지 않을 것으로 단정하기는 이르다고 그는 지적했다.
이란이 만약 파국적인 결과를 빚더라도 대대적인 보복을 하려 한다면 호르무즈 해협이 실제로 봉쇄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다.
다만 이 경우에도 바레인에 주둔하고 있는 미 해군 5함대가 이란의 해협 봉쇄를 실질적으로 막을 가능성은 있다.
김미혜 글로벌이코노믹 해외통신원 LONGVIEW@g-e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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