챗GPT 의존 심화, 비판·창의적 사고 능력 저하…뇌 발달 저해 우려
AI는 '토론 상대'일 뿐…스스로 검증하고 탐구하는 능력 길러야 미래 경쟁력
AI는 '토론 상대'일 뿐…스스로 검증하고 탐구하는 능력 길러야 미래 경쟁력

기술 발전이 기존 일자리를 없애고 새 일자리를 만드는 현상은 인쇄술 발명 이래 반복된 역사다. 하지만 진짜 위험은 AI에 지나치게 의존해 생각하는 법을 배우지 못하고 미래에 대비하지 못하는 젊은 세대를 낳는 데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최근 월스트리트저널(WSJ)의 경고다.
이러한 경고는 산업 현장에서도 나온다. 아마존의 앤디 재시 최고경영자(CEO)는 지난주 직원 메모를 통해 AI 시대에는 단순 반복 업무가 줄고 전략을 세우는 사고가 중요해진다고 강조했다. 그는 "오늘날 수행되는 일부 업무에는 더 적은 인력이, 다른 유형의 업무에는 더 많은 인력이 필요하게 될 것"이라며 AI가 기존 일자리를 대체할 현실을 환기시켰다.
AI를 능숙하게 활용하는 것을 넘어, 문제 해결을 위한 창의적 아이디어를 내고 모델의 한계를 명확히 탐색하는 능력이 미래 인재의 핵심 역량으로 떠오른 셈이다.
◇ AI에 '생각 외주화'…뇌 발달 멈춘다
이러한 능력은 기존 사무직 업무보다 훨씬 높은 수준의 인지 능력을 요구한다. 하지만 AI가 똑똑해지는 사이, 젊은 대졸자들은 오히려 사고 능력이 떨어지는 현상을 보이고 있다. 초기 챗GPT처럼 정보를 기계적으로 나열할 수는 있지만, 새로운 통찰을 제시하거나 여러 각도에서 문제를 분석하는 데는 어려움을 겪는다. 실제로 AI 도구를 자주 사용하는 젊은층일수록 비판하며 살피는 사고 능력이 낮다는 연구 결과가 있으며, 특히 17~25세 참가자들은 AI 의존도가 높고 스스로 생각하는 힘이 떨어지는 경향을 보였다. 최근 마이크로소프트의 한 연구는 사용자가 AI를 신뢰할수록 비판하며 살피는 사고는 줄고, 사용자 자신의 자신감이 높을수록 이런 사고를 더 많이 한다는 상관관계를 밝히기도 했다.
인간의 뇌는 20대 중반까지 계속 발달하는 기관으로, 근육처럼 꾸준한 자극과 도전을 통해 단련된다. 그러나 기억이나 문제 해결 과정을 AI 같은 외부 도구에 맡기는 '인지적 부담 전가' 현상은 뇌 발달을 심각하게 가로막을 수 있다.
실제로 관련 연구는 꾸준히 늘고 있다. 손 글씨가 학습에 핵심 역할을 하는 뇌 부위를 활성화하고 단어와 글자 인식 능력을 돕는다는 사실이 대표적이다. 손으로 직접 필기하는 행위는 정보를 스스로 종합하고 우선순위를 정하게 해 기억력 발달을 촉진한다. 반면 키보드로 정보를 입력하면 한 귀로 듣고 다른 귀로 흘려버리기 쉽다.
지난해 발표된 한 연구는 대학생들이 손 글씨와 타이핑을 할 때의 뇌 전기 활동을 분석했다. 그 결과, 손 글씨를 쓸 때 훨씬 넓은 뇌 영역에서 높은 수준의 신경 활성화가 나타났다. 연구팀은 "학습 전략에 손 글씨가 포함될 때마다 뇌가 더 많이 자극받아 더 복잡한 신경망이 형성된다"고 밝혔다. 천문학적인 교육비 지출에도 2017년부터 표준화 시험 점수가 하락하는 현상의 원인 하나로 유치원부터 고등학교까지 이어진 컴퓨터 사용의 증가를 의심해 볼 만한 대목이다.
◇ '환각'도 못 거르는 학생들…지적 나태함의 그늘
교육 현장에서 AI의 통합은 양날의 검과 같다. 한편으로 AI는 과제 요약, 자료 조사 같은 반복 작업을 자동화해 학생들이 더 높은 차원의 사고에 집중하도록 돕는 강력한 도구가 될 수 있다. 다른 한편으로는 학생들이 AI에 지나치게 의존해 가설 수립, 결과 분석, 결론 도출 등 과학 탐구에 필수인 인지적 분투를 건너뛰게 만들어 비판하며 살피는 사고 능력을 약화시킬 위험이 있다.
최근 대학생과 고등학생 사이에서는 챗GPT 같은 거대 언어 모델을 이용해 과제를 작성하고, 수학 증명을 풀며, 컴퓨터 코드를 짜는 일이 흔하다. 스스로 생각하고, 표현하고, 자신의 주장을 방어하는 훈련 기회를 잃는 것과 같다. 이 모든 인지적 도전을 AI에 떠넘기는 셈이다.
지적인 나태함은 이미 수많은 문제를 겪는 고등 교육의 위기를 더욱 깊게 한다. 심지어 많은 학생이 AI가 생성한 결과물을 검토조차 하지 않고 그대로 낸다. 한 대규모 연구 중심 대학의 교수는 보스니아 전쟁을 다룬 학생 과제물에 "용감한 나치 병사들이 엄청난 수로 강간당했다"는 터무니없는 내용이 있었다고 전했다. 챗봇이 만들어내는 이런 환각(hallucination) 현상은 AI 사용의 명백한 증거다.
하지만 이런 오류만이 문제는 아니다. 한 교수는 타임스 고등 교육과의 인터뷰에서 AI가 쓴 글을 두고 "마치 기계가 쓴 듯 단조로운 느낌이 있다. 기술로 틀린 부분은 없지만, 그렇다고 잘 쓴 부분도 없는, 모서리가 밋밋한 에세이"라고 꼬집었다. 다른 교수는 AI 과제물에 "겉보기엔 논리 정연하지만 실제로는 공허함으로 가득 찬 문장"이 넘쳐난다고 지적했다. 더 우울한 사실은 학생들 스스로 이런 지적인 공허함을 분별할 능력이 없을 수 있다는 점이다.
◇ AI는 '보조 도구'…인간 고유 역량 키워야
과거 새로운 기술이 제조업의 효율성을 높였을 때, 수많은 노동자가 일자리를 잃었다. 일자리가 없어서가 아니라, 새로운 기술에 필요한 역량이 없었기 때문이다. AI가 대체할 수 없는 문제해결능력, 창의성, 독창성 같은 인간 고유의 역량이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 만약 지금의 젊은 세대가 지적인 활력과 호기심, 투지를 갖추지 못한다면 같은 위험에 처할 것이다.
더 낮은 비용으로, 아무런 불평 없이 단순 업무를 처리할 수 있는 봇을 두고, 생각할 줄 모르는 대졸자를 고용할 이유가 어디 있겠는가? 물론 AI를 적절히 활용하면 학습 동기와 비판하며 살피는 사고력을 높이는 좋은 효과도 있지만, 이는 AI를 '보조 도구'로 쓰며 스스로 생각하고 검증하는 훈련을 함께할 때만 가능하다. 교육자들은 AI가 답을 만들게 하는 대신, 학생들이 AI가 만든 데이터를 직접 해석하고, '이 데이터에 편향은 없는가?', '출처는 무엇인가?' 같은 질문을 던지며 사실인지 확인하도록 이끌어야 한다.
AI를 정답을 주는 해결사가 아닌, 탐구를 위한 '토론 상대'로 삼는 것이다. 기업들 역시 AI 시대의 인재상으로 '비판적 사고', '창의적인 문제 해결', '끊임없는 학습' 능력을 꼽는다. AI와 협업하면서도 스스로 생각하고 창의롭게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을 기르는 것이 앞으로 사회에서 핵심 경쟁력으로 자리 잡을 전망이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