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싱턴 로비·펜실베이니아 현지 소통·국가안보 '황금지분'까지... 보호무역주의 속 110억 달러 투자 약속, 미·일 기업 상생 모델 탄생

외국 기업의 미국 제조업 상징인 US스틸 인수를 둘러싼 논란이 18개월 만에 결론을 냈다. 일본 최대 철강업체 일본제철이 US스틸을 인수하는 과정에서 보인 워싱턴 로비와 현지 소통이 화제가 되고 있다. 특히, 국가안보 논쟁을 극복하고 최종 합의에 도달한 점이 전 세계에 이목을 끌고 있다고 지난 25일(현지시각) 워싱턴포스트가 보도했다.
◇ 정치적 난관과 일본제철의 전략 변화
일본제철이 2023년 12월 US스틸 인수를 공식 발표했을 때, 미국 내 정치적 반발은 컸다. 특히 대선을 앞둔 해에 펜실베이니아와 같은 중요한 주에서 미국 제조업의 상징이 외국계에 넘어간다는 점이 논란이 됐다.
일본제철 경영진은 처음에는 이 같은 정치적 민감성을 과소평가한 것으로 보인다. 워싱턴포스트에 따르면, 홍보 활동에 밝은 세 명의 관계자는 "경영진이 초기 정치적 파급력을 과소평가해 이후 18개월간 직접적이고 적극적인 캠페인을 벌여야 했다"고 말했다.
일본제철은 미국 내 공식 로비 활동을 최소화해온 일본 기업의 전통적 사고방식에서 벗어나, 워싱턴의 영향력 있는 로비 회사 에이킨 검프(Akin Gump)를 고용해 2024년부터 500만 달러(약 67억 원) 이상을 지불했다.
대선 캠페인이 본격화되면서 일본제철은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과 밀접한 로비 회사 발라드 파트너스도 고용하고, 트럼프 전 국무장관 마이크 폼페이오를 고문으로 영입해 워싱턴 내 영향력 확대에 나섰다.
일본제철은 펜실베이니아 현지에서도 피츠버그 스틸러스 경기 관람, 시장과의 회의, 시청 개최 등 다양한 소통 활동을 벌였다. 일본제철의 베테랑 협상가 모리 다카히로 부회장은 지역 라디오, 무역 잡지, 시청 등에 출연해 "이번 인수가 미국에 이익이 되고 미국 일자리를 지킬 것"이라는 메시지를 꾸준히 전했다.
이런 노력 덕분에 일본제철은 펜실베이니아 주 상원의원 킴 워드(공화당) 등 지역 정치인들의 지지를 얻었고, 워드는 바이든 대통령과 샤피로 주지사(민주당)에게 서한을 보내 거래 지지를 촉구했다고 밝혔다.
◇ 국가안보 논쟁과 '황금지분' 도입
일본제철의 인수 시도는 미국 정부의 국가안보 우려로 여러 차례 난관에 부딪혔다. 바이든 대통령은 2025년 1월 국가안보를 이유로 인수를 막는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이에 대해 일본 기업계와 정부는 정치적 개입이 과도하다고 반발했다. 일본 국회의원이자 전 외무상 고노 타로는 "워싱턴은 요즘 많은 것에 국가안보를 빌미로 삼지만, 실제로는 그런 것 중 많은 것이 위협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집권하면서 상황은 반전됐다. 트럼프는 대선 기간 중 인수에 반대했지만, 집권 후 "매입이라기보다 투자"라는 명분을 내세워 협상의 문을 열었다.
결국 일본제철은 미국 정부와 국가안보협정(NSA)을 체결했고, 이 협정에 따라 미국 정부는 US스틸 이사회에 '황금지분'을 확보해 주요 경영 결정에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게 됐다.
이번 협정에는 2028년까지 110억 달러(약 14조9000억 원)의 신규 투자, 이사회와 경영진의 과반 미국인 구성, US스틸의 미국 내 본사 유지, 일자리 이전 금지 등이 포함됐다.
마침내 트럼프 대통령은 2025년 6월 13일 인수를 허용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했고, 일본제철과 미국 정부는 자정이 넘도록 협상에 임했다. 일본제철의 모리 부회장은 "자정이 넘어 걸어 나왔을 때, 드디어 진짜라고 믿었다"고 말했다.
◇ 일본의 놀라운 협상력에 세계가 찬사
이번 인수 과정은 일본 기업이 미국 시장에서 겪는 새로운 도전과 기회를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로 평가받고 있다.
도쿄에 본부를 둔 미·일 비즈니스 협의회 사와다 준 회장은 "풀뿌리 캠페인은 일본 기업이 워싱턴 밖 이해관계자와 관계를 맺는 것의 중요성을 보여줬다"며 "앞으로 전략이 바뀔 것"이라고 밝혔다.
허드슨 연구소 부소장 윌리엄 초우는 "트럼프 대통령이 인수를 '투자'로 규정한 발언이 더 큰 대화의 문을 열었다"고 평가했다.
재팬 소사이어티 조슈아 워커 회장은 "이 협상이 무산된다면 미국 내 모든 거래에 심각한 먹구름이 드리울 것이라는 점이 일본 관리와 기업 사이에서 널리 인정된다"고 말했다.
일본제철은 이번 인수를 통해 세계 4위 규모의 철강업체로 도약하게 됐다. 일본제철은 첨단 기술을 도입해 미국 철강업의 경쟁력을 높이고, 100만 개 이상의 일자리를 창출할 것이라고 밝혔다.
업계에서는 일본제철의 현지 소통과 적극적 로비, 국가안보 논쟁을 극복한 사례가 앞으로 외국계 기업의 미국 내 인수합병에 중요한 참고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일본제철의 하시모토 회장은 "인수에 완전히 몰입했다"며 "일본 CEO가 거래가 끝날 때까지 이렇게 강한 마음을 유지하는 것을 본 적이 없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번 인수는 보호무역주의와 국가안보 논쟁이 한창인 글로벌 시장에서 미국과 일본 기업이 상생할 수 있는 새로운 모델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업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일본제철과 US스틸은 "이번 합병이 미국 제조업과 지역사회에 혁신과 일자리를 가져올 것"이라고 공동으로 밝혔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