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 달러가 지난 1973년 이후 가장 큰 낙폭을 기록하며 상반기를 마감할 것으로 보인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통상·재정 정책에 대한 투자자들의 불안이 커지면서 달러화의 투자 매력이 급격히 약화됐다는 분석이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올해 상반기 달러화가 주요 6개 통화 대비 가치를 나타내는 달러인덱스 기준으로 10% 넘게 하락했다고 30일(이하 현지시각) 보도했다. 이는 금 본위제였던 브레턴우즈 체제가 폐지된 1973년 이후 상반기 기준으로 가장 큰 하락폭이다.
ING의 프란체스코 페솔레 환율 전략가는 “달러는 트럼프 2기 정부의 불확실한 정책에 따른 희생양이 되고 있다”며 “관세 전쟁의 불확실성, 막대한 재정 적자, 미 연방준비제도의 독립성에 대한 우려가 달러의 안전자산 지위를 훼손하고 있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추진 중인 감세 법안도 시장 불안을 키우고 있다. 미 상원은 이날 트럼프 행정부가 제출한 대규모 감세·지출 법안에 대한 수정안 표결을 앞두고 있다. FT는 ‘원 빅 뷰티풀 법안(One Big Beautiful Bill)’이라 명명된 이 법안이 향후 10년간 3조2000억 달러(약 4474조원)의 재정 부담을 추가로 발생시킬 것으로 전망했다.
국채 시장에서도 미국 재정 지속 가능성에 대한 우려가 커지며 자금 이탈이 가속화되고 있다. 이와 맞물려 달러화의 하락세는 글로벌 투자자들 사이에서 안전자산으로서의 위상에 의문을 던지고 있다.
달러화 약세와 대조적으로 유로화는 13% 넘게 급등하며 1유로당 1.17달러 선을 넘어섰다. 올해 초만 해도 월가의 주요 투자은행들은 유로화가 달러와 1대1 수준까지 약세를 보일 것으로 전망했으나 오히려 달러에 대한 회피 심리가 유로화를 밀어올린 셈이다.
피멕코의 앤드루 볼스 글로벌 채권 최고투자책임자(CIO)는 “4월 트럼프 대통령이 발표한 ‘상호주의 관세’ 조치는 미국 정책 틀의 중대한 전환점이었다”고 지적하며 “이는 달러의 기축통화 지위에는 위협이 되지 않더라도 단기적으로 달러 가치 약세를 유발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중앙은행과 대형 연기금, 국부펀드 등도 달러 자산에 대한 환율 헤지 비중을 확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ING의 페솔레는 “이러한 헤지 수요는 미국 증시 반등에도 불구하고 달러 강세를 제한하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금값 역시 급등세를 이어가고 있다. 각국 중앙은행들이 보유 달러 자산 가치 하락을 우려해 금 매입을 늘린 점이 금값 상승을 이끌고 있다.
시장에서는 연준이 트럼프 대통령의 압박에 따라 향후 1년간 기준금리를 다섯 차례 이상 0.25%포인트씩 인하할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있다. 이는 달러화 약세를 더욱 부추길 수 있다는 분석이다.
FT는 “달러 약세가 지나치게 한쪽으로 쏠렸다는 지적도 있지만 지금까지의 하락 속도를 감안할 때 가까운 시일 내 반등이 뚜렷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가이 밀러 취리히보험 수석 시장전략가의 발언도 전했다.
김현철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roc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