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십 년 만의 중앙은행 매입 공식화…공급 부족 속 '가난한 자의 금' 재조명
'탈달러' 나선 브릭스, 금 대체재로 주목…역사적 저평가 매력도 부각
'탈달러' 나선 브릭스, 금 대체재로 주목…역사적 저평가 매력도 부각

올 들어 현재까지 은 가격은 30.6% 올라 27.5% 상승에 그친 금을 가뿐히 앞질렀다. 2022년 뒤로 각국 중앙은행의 적극적인 매입과 민간 투자에 힘입어 가격이 폭등했던 금의 독주에 제동이 걸리면서, 상대적으로 소외됐던 은의 가치가 재조명받는 '키 맞추기' 장세가 펼쳐지는 모양새다.
◇ 수십 년 만의 귀환… 러시아, '전략 자산' 공식화
특히 러시아가 파격적인 정책을 선언해 시장의 이목이 쏠리고 있다. 러시아 중앙은행은 2024년 말, 사상 처음으로 국가 비축자산에 은을 포함하는 방침을 공식화했다. 2025~2027년 연방예산 초안에 따르면 러시아는 금, 백금 등과 함께 은을 사들이기 위해 해마다 515억 루블(약 9136억 원)을 배정한 것으로 드러났다. 수십 년간 중앙은행들이 외면한 은을 국가 차원에서 사들이기 시작해, 이 이례적 행보는 "은 가격을 단기간에 50% 더 끌어올릴 수 있다"는 분석까지 낳는다.
이러한 움직임의 배경에는 브릭스(BRICS)의 '달러 벗어나기' 전략이 자리 잡고 있다. 브라질, 러시아, 인도, 중국 등 브릭스 회원국들은 달러 중심의 국제 무역 질서에 맞서 금을 꾸준히 모아왔다. 그러나 금 가격이 사상 최고가 수준에 머물러 막대한 비용 부담에 부딪혔고, 그 대안으로 '가난한 자의 금'으로 불리던 은이 떠오른 것이다. 이에 따라 브릭스 안에서 은 매입 논의가 활발해질 전망이다.
◇ 공급 부족에 투자 수요… 역사적 저평가 매력 커져
수급 불균형도 가격 상승을 부채질한다. 세계 은 공급은 2025년 기준 1억4900만 온스가 부족하며, 태양광과 전기차 부품 같은 산업용 수요는 사상 최대치를 갈아치우고 있다. 여기에 기관투자가와 일부 중앙은행의 '장기 실물 매수'가 더해져 오름세가 이어질 것이라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금은가격비율(金銀比)는 은의 투자 매력을 뚜렷이 보여준다. 지난 25년 평균 1온스의 금으로 약 65온스의 은을 살 수 있었지만, 2025년 7월 현재 금값은 은값의 88~90배에 이르는데, 역사적으로 은이 매우 저평가됐다는 의미다. 최근 금은비가 수년 만에 90 아래로 떨어지는 등 중요 기술적 신호도 잡히고 있다.
러시아의 공식 매입 선언은 국제 은 시장의 틀이 바뀔 것을 예고한다. 앞으로 다른 중앙은행, 특히 브릭스 신흥국들이 비슷한 행보에 동참하면 시장에 미치는 힘은 더욱 커질 전망이다. 전문가들은 금의 고평가와 달러 체제의 한계 속에서 은이 '전략적 귀금속'으로 자리를 높일 것으로 내다보면서도, 가격 변동성과 중앙은행의 추가 매입 여부 등 위험 요인도 크다고 경고한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