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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IST, 렌즈 착용만으로 망막 검진...세계 최초 무선 OLED 기술 구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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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IST, 렌즈 착용만으로 망막 검진...세계 최초 무선 OLED 기술 구현

암실·대형 장비 없이 렌즈 착용만으로 망막 기능 정밀 진단
근시 치료부터 AR 인터페이스까지...디지털 헬스케어 판도 바꿀 플랫폼 기술
국내 연구진이 개발한 OLED 콘택트렌즈. 사진=ACS 나노이미지 확대보기
국내 연구진이 개발한 OLED 콘택트렌즈. 사진=ACS 나노
국내 연구진이 세계 최초로 무선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콘택트렌즈를 이용해 시력을 검사하는 기술을 개발했다고 미라지뉴스가 12일(현지시각) 보도했다.

카이스트(KAIST, 총장 이광형)는 이날 전기전자공학부 유승협 교수 연구팀이 분당서울대학교병원, 포스텍(POSTECH),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등과 공동으로 콘택트렌즈 기반의 착용형(웨어러블) 망막 진단 플랫폼을 개발했다고 밝혔다. 이 기술은 단순한 광원 부착 렌즈를 넘어, 임상용 망막전위도(ERG) 검사와 동등한 수준의 자극과 측정이 가능한 완결형 착용 시스템이다. 앞으로 디지털 헬스케어와 차세대 증강현실(AR) 기기 분야에 폭넓게 활용될 전망이다.

◇ 머리카락보다 얇은 OLED, 무선으로 망막과 통신

망막의 기능이 정상인지를 판단하는 망막전위도(ERG) 검사는 그동안 환자에게 상당한 불편을 안겼다. 검사를 받으려면 외부 빛을 막은 암실에서 '간츠펠트(Ganzfeld)'라는 대형 장비 앞에 앉아 눈을 뜬 채 움직이지 않아야 했다. 이러한 공간 제약과 불편함 때문에, 검사받는 사람의 피로와 순응도 문제를 크게 줄일 기술 개발이 필요했다.
이번에 개발한 OLED 콘택트렌즈는 이러한 한계를 기술로 극복했다. 연구팀은 머리카락 두께의 6분의 1 수준인 약 12.5µm의 초박형 OLED를 콘택트렌즈 전극에 결합하고, 무선 전력 수신 안테나와 제어 칩을 함께 달아 스스로 작동하는 시스템을 완성했다. 안구 가까운 환경에서 전송이 안정적이고 인체에도 안전한 433MHz 주파수를 이용해 무선으로 전력을 공급하도록 했다. 또한 스마트폰과 연동하는 수면 안대 모양의 무선 조종기까지 선보이며 높은 실용성을 증명했다.

기존 스마트 콘택트렌즈 연구에 주로 쓴 무기물 LED는 한 점에서 빛을 내는 형태로 특정 부위에 열이 지나치게 몰리고 빛의 균일도에도 한계를 드러냈다. 반면 이번 연구에 쓴 OLED는 면(面)에서 빛을 내는 방식이라 망막에 자극을 더 고르게 전달하며, 유연한 기판 위의 초박막 구조로 눈 표면의 굴곡에 자연스럽게 들어맞는다.

덕분에 연구팀은 스마트폰 화면 밝기(약 300~600니트)에 한참 못 미치는 126니트(nit)의 낮은 밝기로도 기존 상용 의료기기와 같은 수준의 안정적인 망막전위도 신호를 얻는 데 성공했다. 또 동물 실험을 통해 OLED 콘택트렌즈를 낀 토끼 눈의 표면 온도가 27°C 아래로 유지되는 것을 확인하고, 각막의 열 손상 없이 안전하게 사용할 수 있음을 입증했다. 눈물과 같은 습한 환경에서도 성능을 지키는 전극 봉지(encapsulation) 구조의 방습 설계와 생체 친화적 소재 선택이 핵심 기술로 작용했다.

◇ 안과 진료 넘어 AR·광치료까지 넘본다

연구를 이끈 유승협 교수는 "초박형 OLED의 유연성과 넓게 퍼지는 빛의 특성을 콘택트렌즈에 접목한 것은 세계 최초의 시도"라며 "이번 연구는 스마트 콘택트렌즈 기술을 안구 위 광학 진단과 빛 치료 플랫폼으로 넓혀 디지털 헬스케어 기술 발전에 이바지할 수 있을 것"이라고 뜻을 밝혔다.

이번 연구 성과는 임상 현장과 관련 산업에 큰 변화를 가져올 전망이다. 우선 어린이와 노인 등 몸이 불편한 환자들이 검사받기 쉬운 이동형·재택형 망막전위도 검사의 길이 열렸다. 또 특정 파장의 빛 자극으로 근시 진행을 억제하거나 시각계 신경을 조절하는 빛 치료 기술로 넓혀갈 수 있다. 더 나아가 안구 생체 신호를 재면서 동시에 시각 정보를 주는 차세대 AR·바이오 인터페이스로 발전할 가능성도 품고 있다. 병원 운영 효율을 높이는 데도 이바지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물론 상용화까지 넘어야 할 과제도 있다. 의료기기 인허가, 광학 성능 표준화, 대량 생산을 위한 제조·포장 공정 확보, 그리고 눈 깜빡임 같은 불필요한 신호를 자동 제거하는 소프트웨어 기술 고도화 등이 과제로 꼽힌다. 연구팀의 단기 목표는 임상 시험으로 기술의 동등성을 검증하는 것이다. 중기적으로는 수면이나 야간 환경에서 장기 상태를 살피는 서비스로 넓히고, 장기적으로는 AR 디스플레이와 빛 치료 기능까지 통합한 다기능 플랫폼으로 발전시킨다는 계획이다.

이번 연구에는 카이스트 심지훈, 채현욱, 김수본 박사 과정 연구원과 (주)파이바이오메드 신상배 박사가 함께 공동 제1저자로 참여했으며, 유승협 교수, 한세광 포스텍 교수, 우세준 분당서울대병원 교수가 교신저자를 맡았다. 연구 성과는 국제 학술지 'ACS 나노(ACS Nano)' 5월 1일 자 온라인판에 실렸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