닫기

글로벌이코노믹

[심층분석] 말레이시아, AI 데이터센터 허브 야망에 '에너지·물' 발목

글로벌이코노믹

[심층분석] 말레이시아, AI 데이터센터 허브 야망에 '에너지·물' 발목

구글·MS 등 빅테크 몰려든 조호르, 전력·용수 감당 능력 '한계'
싱가포르 이어 규제 나선 말레이시아…'지속가능성'이 세계 AI 산업 새 화두
말레이시아 조호르주에 들어선 한 데이터센터 전경. AI 산업의 급성장으로 조호르주는 동남아시아의 새로운 데이터센터 허브로 떠올랐지만, 전력과 용수 부족이라는 심각한 성장통을 겪고 있다. 사진=게티이미지/AFP/연합뉴스이미지 확대보기
말레이시아 조호르주에 들어선 한 데이터센터 전경. AI 산업의 급성장으로 조호르주는 동남아시아의 새로운 데이터센터 허브로 떠올랐지만, 전력과 용수 부족이라는 심각한 성장통을 겪고 있다. 사진=게티이미지/AFP/연합뉴스
인공지능(AI) 시대가 열렸지만, 그 화려한 이면에는 막대한 양의 에너지와 물을 쓰는 기반 시설의 그림자가 짙게 깔렸다. 'AI 공장'으로 통하는 데이터센터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었기 때문이다. 특히 동남아시아의 새로운 데이터센터 중심지로 떠오른 말레이시아 조호르주가 AI가 일으킨 '성장 기회'와 '자원 한계'라는 어려운 문제에 부딪히면서 전 세계가 풀어야 할 과제를 뚜렷이 보여준다고 미 경제방송 CNBC가 19일(현지시각) 보도했다.

◇ 'AI 특수' 업은 조호르, 감당 못 할 성장

인구 400만의 말레이시아 조호르주는 최근 몇 년간 세계의 주목을 한 몸에 받았다. 저렴한 토지와 자원, 금융 중심지 싱가포르와 가까운 위치, 정부의 파격적인 혜택에 이끌려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바이트댄스 같은 거대 기술 기업들이 수십억 달러 규모의 데이터센터 사업에 투자했기 때문이다.

데이터센터 시장 정보 업체 'DC 바이트'에 따르면, 조호르의 현재 데이터센터 용량은 약 580메가와트(MW)지만, 초기 사업을 포함한 총 계획 용량은 현재의 10배인 5800MW에 이른다. 에너지 정보 업체 'PK너지'의 자료를 기준으로 환산하면 시간당 최대 570만 가구가 쓸 수 있는 막대한 전력량이다.
이런 폭증세는 말레이시아 전체를 에너지 시험대에 올려놓았다. 말레이시아의 독립 투자은행 '케낭가 투자은행'은 2035년이 되면 말레이시아 데이터센터의 전력 사용량이 나라 전체 발전 용량의 20%를 차지할 것이라는 어두운 전망을 내놓았다. 이에 말레이시아 정부는 2030년까지 총 전력 소비량이 30% 늘 것으로 보고, 6~8기가와트(GW) 규모의 가스 화력 발전을 추가할 계획이다. 하지만 이는 2023년 기준 말레이시아 전체 발전량의 43%를 넘는 석탄 발전보다는 깨끗하지만, 2050년까지 '탄소중립'을 이루려는 국가 목표와는 어긋난다는 지적이 나온다.

에너지 문제만큼이나 심각한 것은 물 부족이다. 데이터센터는 과열을 막고 전기 부품을 식히려고 엄청난 양의 물을 쓴다. 보통 100MW 규모 데이터센터 하나가 하루에 쓰는 물의 양은 약 420만 리터로, 수천 가구가 하루 동안 쓰는 양과 맞먹는다. 과거에도 여러 차례 물 공급이 끊겼고 처리수의 상당량을 싱가포르에서 들여오는 현실에 직면한 조호르는, 최근 15억 달러(약 2조 863억 원)를 들여 3개의 새로운 저수지와 정수 처리장 건설에 나섰다.

◇ 말레이시아 넘어 전 세계로 번진 '자원 전쟁'

조호르의 사례는 빙산의 한 조각일 뿐이다. 전자상거래부터 생성형 AI까지 디지털 세계의 중심인 데이터센터 수요는 전 세계에서 폭발하고 있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지난 5월 보고서에서 2023년 세계 데이터센터의 전기 사용량이 이미 독일과 프랑스를 합친 수준에 이르렀다고 밝혔다. 일부 연구에서는 2027년까지 AI 관련 기반 시설이 덴마크 전체보다 4~6배 더 많은 물을 쓸 수 있다고 내다봤다.

'DC 바이트'에 따르면, 전력 부족과 까다로운 허가 절차 때문에 데이터센터 건설 속도가 폭증하는 수요를 따라잡지 못하고 있다. 이에 각국 정부는 규제를 풀며 에너지 공급에 나서고 있지만, 환경론자들은 이것이 지구의 기후 목표를 위협할 수 있다고 강하게 경고한다.

세계 최대 데이터센터 시장인 미국이 대표 사례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2025년 '미국 AI 실행 계획'을 발표하고, AI 기반 시설 개발 속도를 높이려고 환경 규제를 없애고 허가 절차를 간소화하라고 촉구했다. 카네기 멜런 대학교와 노스캐롤라이나 주립대학교는 6월 공동 분석에서 데이터센터와 암호화폐 채굴 탓에 2030년까지 미국 가정의 전기 요금은 8%, 발전 부문의 온실가스 배출량은 30% 늘 것이라고 예측했다.

◇ '지속가능성' 모색…규제와 기술 혁신 사이

자원 한계에 부딪힌 각국은 해결책 마련에 애쓰고 있다. 말레이시아 정부는 오는 2025년 10월까지 '지속가능한 데이터센터 체계'를 발표하고, 신재생 에너지(태양광, 수력 등) 사업 승인을 늘리는 한편 원자력 에너지 활용까지 살피고 있다. 물 문제 해결을 위해 2025년 8월부터 조호르주 데이터센터에 더 높은 수도 요금을 매기기 시작했고, 산업계에 재처리한 폐수를 쓰도록 바꾸라고 요구하고 있다. 마이크로소프트(MS) 같은 일부 기업은 물을 전혀 쓰지 않는 '무급수 냉각 기술'로 바꾸는 등 여러 방면으로 노력하고 있다.

이웃 나라 싱가포르의 사례는 많은 것을 보여준다. 싱가포르는 2019년, 자원 고갈을 막으려고 3년간 새로운 데이터센터 건설을 전면 멈추는 유예 조치를 시행했다. 이 조치가 조호르로의 '풍선 효과'를 낳았지만, 싱가포르는 2022년 유예 조치를 끝냄과 동시에 에너지 효율을 최대한 높이는 '녹색 데이터센터 추진 계획'을 발표하며 지속가능한 발전의 길을 제시했다.

한 나라의 규제 강화가 규제가 느슨한 이웃 나라로 산업을 옮기는 현상을 낳자, 유엔환경계획(UNEP)을 비롯한 국제기구들은 데이터센터와 AI 기반 시설에 국제법에 따른 규제가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AI가 여는 성장 기회를 지속가능한 발전으로 연결하는 길목에서, 규제와 기술 혁신의 조화가 말레이시아를 넘어 전 세계의 공통 과제로 떠오른 셈이다.

정보 기술의 에너지와 환경 영향 분야 주요 독립 연구자인 조너선 쿠미는 CNBC와 나눈 이메일에서 근본적인 질문을 던졌다.

"피할 수 없는 AI 사용은 없으며, 우리가 탄소중립으로 나아갈지는 선택의 문제입니다. 데이터센터 기업들이 탄소 배출 없는 전력으로 AI 확장을 뒷받침하지 못할 까닭이 없습니다. AI 기업들이 확장이 시급하다고 해서 기후 목표를 포기할 까닭 또한 없습니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