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DP 대비 부채 114%로 그리스 추월…올해만 네 번째 총리 교체 위기
마크롱식 감세 후폭풍에 재정 파탄…IMF 구제금융 가능성 거론
마크롱식 감세 후폭풍에 재정 파탄…IMF 구제금융 가능성 거론

프랑수아 바이루 총리는 440억 유로(약 71조 원) 규모의 재정 적자 감축안을 두고 오는 8일 의회 신임 투표에 직면하고 있다. 정계에서는 그의 퇴진을 기정사실로 보는 시각이 우세하다. 투표에서 패할 경우 바이루 총리는 올해 들어서만 네 번째로 물러나는 총리가 된다.
잦은 총리 교체는 안정된 정치 시스템을 자랑하던 프랑스에서는 드문 일이었다. 그러나 최근 재정 건전성 악화가 정치 분열을 심화시키고, 분열된 정치가 재정난 해결을 가로막는 악순환에 빠졌다. 바이루 총리는 지난주 의회를 향해 "우리 국가의 생존 문제"라며 초당적 지지를 호소했지만, 상황은 비관적이다.
프랑스의 통치 불능 상태가 심화하자 금융 시장도 등을 돌리고 있다. 투자자들이 프랑스 국채를 매도하면서 차입 비용이 급등했고, 10년물 국채 금리는 그리스를 웃돌며 이탈리아와 비슷한 수준까지 치솟았다. 반면 2010년대 부채 위기 때 고강도 긴축을 단행했던 이탈리아는 조르자 멜로니 총리가 3년 가까이 안정적으로 집권하며 대조를 이룬다.
◇ 끝없는 정쟁…재정 개혁 '발목'
프랑스가 악순환의 고리를 끊지 못하는 까닭은 의회(하원)가 저마다 다른 재정 해법을 내세우는 여러 정파로 극심하게 나뉘어 있기 때문이다. 좌파 연합은 공공 지출의 65%를 차지하는 복지 예산 삭감에 결사반대하고,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과 바이루 총리의 중도파 및 기성 보수 세력은 증세 없는 군사비 증강을 원한다. 마린 르펜이 이끄는 극우 국민연합(RN)은 이민 통제와 유럽연합(EU) 분담금 축소를 통한 지출 감축을 주장한다.
현재의 위기는 2017년 집권한 마크롱 대통령의 정책에서 비롯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그는 대규모 감세 정책을 펴면서도 그에 걸맞은 공공 서비스 지출을 줄이지 않았다. 부유세와 주택세를 없애고 법인세를 낮췄으며, 자본 이득에 단일 세율을 도입했다. 그 결과 2023년 기준 프랑스 정부의 한 해 세수는 약 620억 유로(약 101조 원, GDP의 2.2%)나 급감했다. 프랑스 국영 경제연구소 OFCE의 자비에 팀보 경제학자는 "마크롱의 정책은 큰 불공정감을 낳았고 부자와 기업을 위한 감세로 평가받았다"고 지적했다.
감세 정책으로 프랑스가 유럽에서 가장 매력 있는 투자처로 떠오르기도 했지만, '노란 조끼' 시위, 코로나19 팬데믹, 우크라이나 전쟁에 따른 에너지 위기가 잇따라 터지면서 재정은 파탄 지경에 이르렀다. 마크롱 대통령 취임 전 2조2000억 유로(약 3586조 원)였던 국가 부채는 3조3000억 유로(약 5379조 원)로 불어났다. 올해 프랑스의 GDP 대비 부채 비율은 114.1%로 그리스(약 110%)는 물론 스페인, 포르투갈보다도 높다.
◇ 신용등급 강등·조기총선 '자충수'
경제 성장도 멈췄다. 올해 프랑스 경제성장률 전망치는 0.4~0.5%에 그치며, 실업률 역시 7.4%에서 7.6%로 다시 오를 전망이다. 설상가상으로 지난해 프랑스 정부는 재정 적자 비율(GDP 대비 5.5%) 전망치를 잇달아 수정해야 했다. 이에 국제신용평가사 S&P는 프랑스의 국가신용등급을 낮췄다.
궁지에 몰린 마크롱 대통령은 의회 해산과 조기 총선이라는 승부수를 띄웠지만, 결과는 전례 없는 의회 분열 심화였다. 총선 후 그가 임명한 보수 성향의 미셸 바르니에 초대 총리는 신임 투표의 벽을 넘지 못하고 곧바로 물러났다. 뒤를 이은 바이루 총리는 법인세를 일시 인상하는 방식으로 기한이 지난 2025년 예산안을 겨우 통과시켰다. 하지만 연금 개혁 변경을 두고 사회당과 벌인 협상이 결렬되자 정치적 지지 기반을 잃었다. 급기야 부활절 다음 월요일과 2차대전 승전 기념일인 5월 8일을 공휴일에서 빼 경제 생산성을 높이자는 방안까지 내놓아 거센 반발을 샀다. 극우 국민연합의 조르당 바르델라 대표는 이를 "우리 역사와 뿌리, 일하는 프랑스인에 대한 직접 공격"이라고 맹비난했다.
바이루 내각의 붕괴와 정책 공백이 현실화하면서, 시장에서는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 가능성마저 제기된다. 프랑스발 재정 위기가 유럽 경제 전체를 위협하는 시나리오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