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성장 둔화·디지털 전환 파고에 글로벌 강자들 '휘청'
HSBC, 부진 털어낼 유망주로 에스티 로더·아모레퍼시픽 주목
HSBC, 부진 털어낼 유망주로 에스티 로더·아모레퍼시픽 주목

지난 수년간 세계 뷰티 시장의 성적표는 화려함과는 거리가 멀었다. 코로나19 대유행 시기에는 외부 활동 감소 탓에 화장품 수요가 급감했으며, 엔데믹 이후에도 회복세는 오래가지 못했다. 높은 물가 상승률은 소비자들의 지갑을 닫게 했고, 2010년대 시장을 이끌었던 중국의 두 자릿수 수요는 이제 과거의 유물로 남았다.
이러한 격변 속에서 기업들의 희비는 극명하게 엇갈렸다. 엘프 뷰티나 울타 뷰티처럼 미국 내수 시장에 집중한 브랜드들은 지난 5년간 견조한 성장을 이어갔다. 반면 에스티 로더, 로레알, 코티 등 전통의 글로벌 강자들은 변화의 속도를 따라잡지 못했으며, 특히 아시아 지역의 여행 소매 부문이 약화하면서 일부 지역에서는 현지 토종 브랜드에 시장 점유율을 내주는 수모를 겪었다. 여기에 온라인 채널의 급부상과 '디지털 네이티브' 브랜드의 등장은 과거 오프라인 매장에서의 대면 테스트 판매로 성장해온 기존 기업들의 성공 공식을 송두리째 흔들었다.
HSBC의 제러미 피알코 애널리스트는 최신 보고서에서 현재 뷰티 산업의 성장률이 장기 평균인 4~5%를 밑도는 수준에 머물고 있다고 진단했다. 그는 보고서에서 "중국과 한국 시장이 과거의 전성기로 돌아갈 가능성은 희박해 보인다"며 "인도와 같은 다른 거대 신흥 시장 역시 아직 세계 시장의 판도를 바꿀 만큼의 영향력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미국 시장마저 변덕스러운 소비 심리와 관세를 둘러싼 불확실성이 남아있어 뚜렷한 성장 촉매를 찾기 어렵다.
혹한기 속 빛나는 '선구안'…전문가가 꼽은 반등 유망주는
시장 전체가 아닌 개별 종목의 가치를 판단하는 '선구안'이 중요해진 때다. 이러한 관점에서 피알코는 2020년 이후 최악의 부진을 겪었던 에스티 로더를 다시 주목할 때가 왔다고 강조했다. 에스티 로더는 2025년 회계연도 기준 매출이 143억 달러(약 19조 8212억 원)로 지난해 대비 8% 감소하는 등 어려운 시기를 보냈다. 이는 특히 중국을 포함한 아시아와 여행 소매 부문의 수요 약세가 큰 영향을 미쳤다. 하지만 그는 단기 매출 부진에도 불구하고, 현재 진행 중인 회사의 회복 계획이 이익률을 안정적으로 방어하고 있으며 미국, 중국, 일본 등 핵심 시장에서 점유율을 회복하는 등 긍정적 신호가 나타나는 점에 주목했다.
실제로 에스티 로더는 비용 절감과 제품 혁신으로 손익 개선을 시도하는 한편, 아마존, 쇼피, 틱톡샵 등 디지털 채널을 확장하며 신제품군을 강화하고 있다. 이러한 기대감을 반영하듯 주가는 2025년 상반기에만 연초 대비 19% 오르는 등 강한 회복세를 보였다. 그는 에스티 로더가 2025 회계연도부터 2027 회계연도 사이에 주당 순이익(EPS)을 두 배 이상 끌어올릴 잠재력이 있다고 평가하며, 목표 주가를 기존 99달러에서 105달러로 올리고 '매수' 의견을 유지했다.
그의 추천 목록에는 '코퍼톤'과 '유세린' 브랜드를 보유한 독일의 바이어스도르프도 이름을 올렸다. 팬데믹을 거치며 화장품 수요를 대체하며 급부상한 피부 관리 시장에 집중하고 있다는 점을 높이 평가했다. 특히 내년 중국 시장에 나올 노화 방지 신물질 '에피셀린' 기반 제품과 피부 미생물군 기술을 활용한 여드름 치료제 'S-바이오메딕' 제품이 새로운 성장 동력이 되리라 내다봤다. 그는 독일 증시에 상장된 이 주식의 목표주가를 135유로로 제시했다. 미국에서는 주식예탁증서(ADR) 형태로 거래된다.
업계 1위 로레알엔 '신중론'…K-뷰티는 여전히 매력적
피알코는 또한 미국 시장에서 K-뷰티의 인기가 높아지는 흐름을 활용할 가장 주목할 만한 투자처로 아모레퍼시픽을 꼽았다.
반면, 업계 1위이자 가장 친숙한 이름인 로레알에 대해서는 오히려 '비중 축소'를 권고하며 신중한 태도를 보였다. 올해 유럽과 미국 시장에서 이미 주가가 시장 평균을 웃도는 높은 성과를 거둔 만큼, 업계 전반에 드리운 역풍을 뚫고 추가 상승을 이어가기는 어려울 수 있다고 우려했다.
'아름다움은 겉모습일 뿐'이라는 격언처럼, 화려해 보이는 뷰티 산업의 이면에는 깊은 부진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 여전히 시장의 방향을 탐색하는 이 산업에서 진짜 '승자'를 가려내기 위해서는 그 어느 때보다 신중하고 깊이 있는 분석이 필요한 때다.
앞으로 업계의 승자는 디지털 전환 대응력, 제품 혁신, 핵심 시장 점유율 회복 여부에 따라 갈릴 전망이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