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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층분석] AI 데이터센터 '전력난', 엔비디아·오픈AI의 '10GW 구상' 발목 잡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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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층분석] AI 데이터센터 '전력난', 엔비디아·오픈AI의 '10GW 구상' 발목 잡다

10GW 전력 수요, 뉴욕시와 맞먹는 규모…기존 전력망 '감당 불가'
재생에너지가 유일 대안이지만 정치 장벽 높아…기술적 해법 모색 분주
엔비디아와 오픈AI가 초대형 AI 데이터센터 구축을 추진하지만, 뉴욕시 전력 수요와 맞먹는 10GW 규모의 전력난이라는 암초에 직면했다. 재생에너지가 유일한 대안으로 꼽히지만 정치적 장벽이 높아, 기술적 해법 모색이 시급하다. 사진=로이터이미지 확대보기
엔비디아와 오픈AI가 초대형 AI 데이터센터 구축을 추진하지만, 뉴욕시 전력 수요와 맞먹는 10GW 규모의 전력난이라는 암초에 직면했다. 재생에너지가 유일한 대안으로 꼽히지만 정치적 장벽이 높아, 기술적 해법 모색이 시급하다. 사진=로이터
인공지능(AI) 시대의 패권을 거머쥔 엔비디아와 오픈AI가 인류 역사상 유례없는 규모의 초대형 사업을 선언하며 기술의 새로운 지평을 예고했다. 엔비디아의 젠슨 황 최고경영자(CEO)가 직접 "기념비적인 규모"라고 언급한 이 AI 기반 시설 구축 계획은 현존하는 기술의 한계를 뛰어넘는 거대한 청사진이다.

그러나 이 담대한 구상 이면에는 그 규모만큼이나 막대한 그림자가 드리우고 있다. 바로 천문학적인 규모의 전력을 어떻게 확보할 것인가라는 근본 문제다. 'AI 제국' 건설의 원대한 꿈이 전력난이라는 거대한 암초에 부딪힐 수 있다는 경고음이 울리고 있다고 미 경제방송 CNBC가 24(현지시각) 보도했다.

젠슨 황 CEO는 "이토록 복잡하고 거대한 규모의 엔지니어링 사업이나 기술 사업은 역사상 없었다"고 단언하며 자신감을 내비쳤다. 양사가 구상하는 데이터센터의 규모는 최소 10기가와트(10GW)에 이른다. 첫 1기가와트 설비가 2026년 하반기 가동을 목표로 하고 있다는 사실 외에 구체적인 부지나 시기는 공개되지 않았으나, 계획의 윤곽만으로도 산업계는 엄청난 충격에 휩싸였다.

10기가와트라는 전력량은 일반인의 상상을 초월하는 규모다. 미국 에너지정보청(EIA)의 자료를 분석한 결과, 이는 약 800만 미국 가구의 연간 전력 소비량과 맞먹는다. 단일 도시와 비교하면 그 규모는 더욱 명확해진다. 뉴욕주 전력망을 책임지는 뉴욕 독립 시스템 운영국에 따르면, 이는 2024년 뉴욕시 전체의 여름철 기준 최대 전력 수요와 거의 같은 양이다. 하나의 사업이 세계 최대 도시 하나를 통째로 움직이는 에너지를 필요로 하는 셈이다.
단순히 전력 총량만이 문제가 아니다. AI 자료 센터가 야기하는 전력 부하의 변동성은 기존 전력망에 훨씬 심각한 위협이 된다. AI 연산에 투입되는 수만 대의 GPU는 특정 순간에 동시에 급격한 전력 증가와 감소를 반복하는데, 이는 밀리초(ms) 단위의 초고속 전력 변동으로 이어진다. 이러한 급격한 변화는 국가 전력망 전체의 주파수 안정을 뒤흔들어 최악의 경우 광역 정전 사태를 유발할 수 있는 잠재 위험 요소다.

문제는 이미 한계에 다다른 전력망이 이 엄청난 수요를 감당할 수 있느냐는 점이다. EIA에 따르면 미국 전역에서 올해 추가될 신규 전력 공급량은 총 63기가와트(63GW)로 예상된다. 엔비디아와 오픈AI가 필요로 하는 10기가와트는 2025년 미국 전체에 배치될 신규 전력량의 16%를 차지하는 막대한 비중이다. 단일 기업 연합의 계획이 국가 전체의 전력 수급 계획을 뒤흔들 수 있는 상황이다. 이처럼 막대한 전력을 어디서 조달할 것인지에 대해 양사는 명확한 해답을 아직 제시하지 않았다.

가장 먼저 거론되는 전통 에너지원인 화석 연료는 이미 한계에 부딪혔다. 트럼프 행정부는 자료 센터의 천연가스 사용을 압박하고 있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 GE 버노바와 같은 주요 가스터빈 제조사의 생산 물량은 이미 2028년까지 매진돼 신규 주문은 기약 없는 기다림에 직면해 있다. EIA는 올해 미국에 추가될 신규 가스 발전량이 4.4기가와트에 그칠 것으로 전망했다.

차세대 에너지원으로 주목받는 원자력 발전 역시 단기간에 해결하기 어렵다. 기술 업계와 백악관이 신규 원전 건설에 힘을 쏟고 있지만, 원자로가 실제 전력망에 연결되기까지는 수년에서 수십 년이 걸린다. 최근 조지아주 보글 원전의 대규모 증설 사업은 완료까지 10년 이상 걸렸다. 기술 업계가 기대를 거는 소형 첨단 원자로(SMR) 역시 상용화까지는 빨라야 2020년대 말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뾰족수 없는 전력 공급, 유일한 대안은 '재생에너지'


단기간에 엔비디아와 오픈AI의 막대한 전력 수요를 감당할 수 있는 대안은 사실상 재생 에너지뿐이다. EIA에 따르면 올해 미국에서 추가되는 신규 전력의 90% 이상이 태양광, 풍력, 그리고 배터리 저장 장치에서 나올 예정이다. 애리조나주에 본사를 둔 태양광 개발업체 아레본의 케빈 스미스 CEO는 "필요한 전력은 대부분 신에너지 부문에서 조달하거나, 그렇지 않으면 아예 공급이 불가능하다"고 단언했다.

그러나 가장 현실성 있는 대안인 재생 에너지의 앞길에는 '정치'라는 거대한 장벽이 버티고 있다. 백악관은 사실상 재생 에너지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달 연방 정부가 더 이상의 태양광과 풍력 발전을 승인하지 않을 것이라고 공언했으며, 더그 버검 내무장관실은 현재 진행 중인 모든 관련 사업의 허가를 재검토하고 있다. 이러한 기조는 미국 어류와 야생동물관리국 등 연방 기관의 허가가 필요한 사유지 사업에까지 영향을 미쳐 사업 추진에 심각한 차질을 빚게 할 수 있다.

스미스 CEO를 비롯한 대형 재생 에너지 개발업체 임원들은 지난달 CNBC를 통해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 정책, 인허가 불확실성, 주요 세액 공제 종료 등이 맞물려 앞으로 몇 년간 재생 에너지 보급 속도가 크게 둔화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는 곧 자료 센터 구축 계획에 직접 타격이 될 수 있음을 뜻한다.

강 건너 불 아닌 한국…기술로 한계 돌파 시도


이러한 전력 대란의 위기는 비단 미국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한국 역시 반도체 공장과 AI 데이터 센터의 폭발적인 증가로 전력 수요가 급증하고 있다. 특히 세계 최대 규모의 반도체 클러스터가 들어서는 경기 용인 등 신규 대규모 시설 건설 지역에서는 송배전망 확충 문제와 전력 공급의 불확실성이 아직 해소되지 않았다. 국내 전문가들은 기존의 전력 기반 시설과 공급 계획만으로는 폭증하는 AI와 반도체 산업의 수요를 완전히 충족시키기 어려울 것이라고 지속해서 경고하고 있다.

물론 산업계도 손을 놓고 있는 것만은 아니다. 전력 공급의 한계를 기술로 돌파하려는 시도가 이어지고 있다. 엔비디아는 텍사스 인스트루먼트(TI)와 협력해 자료 센터 내부의 전력 분배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800V 초고전압 직류(DC) 전력 분배 시스템을 개발 중이다. 이 기술은 전력 손실을 줄이고 막대한 양의 구리 사용량을 절감해 시스템 효율을 대폭 개선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를 모은다. 이와 함께, 전력 사용량이 몰리는 피크 시간대에 자료 센터의 연산 작업을 유연하게 조절하는 소프트웨어 해결책(솔루션)도 등장했다. 이를 통해 전력망의 부하를 완화하면서도 AI 서비스 제공의 안정성을 유지하려 시도하고 있다.

스미스 CEO는 현 상황에 대해 의미심장한 전망을 내놓았다. 그는 "데이터 센터와 AI 업계의 공황은 아마 앞으로 12개월 정도는 시작되지 않을 것이다. 그들이 데이터 센터를 건설하려는 일부 지역에서 필요한 전력을 확보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기 시작할 때쯤이면 달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그때 가보면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게 될 것이다. 가능한 모든 것을 건설해 전력을 전력망에 공급하려는 정책 전환이 있을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기술 혁신의 상징인 AI가 역설적으로 가장 기본적인 기반 시설인 '전력' 문제에 발목이 잡힌 가운데, 거대 기술 기업과 정부가 이 난제를 어떻게 풀어갈지 업계의 시선이 집중되고 있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